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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혁명기 대문호, 프롤레타리아에 비추는 따뜻한 시선

입력 : 2018-02-22 21:21:50 수정 : 2018-02-22 21: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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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키 산문집 ‘가난한 사람들’
“열정은 그의 타고난 성격이었다. 그렇지만 그 열정은 이익에 눈이 먼 도박꾼의 열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레닌에게 자신의 사명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진 사람, 세상과의 관계를 폭넓고 깊게 느끼며 혼돈에 찬 세계 안에서 자신의 역할, 즉 혼돈에 맞서는 대항자로서의 역할을 철두철미하게 이해한 사람만이 지닌 남다른 영혼의 활력으로서 나타났다.”

혁명 후 막심 고리키(1868~1936)가 소비에트 정부의 정책과 사회상에 대한 비판의 글을 멈추지 않자 레닌은 그를 폐결핵 치료를 명목으로 유럽으로 보냈다. 해외를 떠돌던 고리키는 자신을 추방했던 레닌이 죽자 애정 어린 추도사를 썼다.

고리키가 베를린에서 발간하던 잡지에 기고한 산문에서 가려 뽑은 ‘가난한 사람들’(오관기 옮김, 민음사)에는 국내 처음으로 삭제되지 않은 원문 ‘블라디미르 레닌이 죽었다’가 부록으로 첨부됐다.

이 산문집은 혁명기 러시아의 다양한 밑바닥 사람들을 흥미롭게 묘사한 글들이 중심을 이룬다. 

이중에는 당대의 문호 레프 톨스토이와 안톤 체호프에 대한 인물평도 있어 흥미롭다.

이를테면 체호프는 환한 웃음을 지을 수 있었던 맑은 영혼의 소유자였다. 고리키는 “웃을 때면 그의 눈은 환해졌고 웃음 그 자체를 더없이 즐거워하며, 기쁨에 가득했다”면서 “그와 같이, 말하자면 ‘영적으로’ 웃을 수 있는 사람을 나는 알지 못한다”고 기록했다.

“톨스토이 곁에 있으면 늘 경탄하게 되고, 결코 싫증을 느낄 새가 없으나, 그를 자주 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고, 그와 한 방에 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한 집에 사는 것도 나로선 어려운 일일 테다. 그것은 마치 태양이 모든 것을 말라 죽이는 사막에 있는 것과 같다. 게다가 태양이 자신까지 남김없이 태워 버려서 영원한 검은 밤이 올 것 같은 위협을 느끼게 한다.”

고리키에게 톨스토이는 분명 명민하고 뛰어난 영혼이었지만 그와 가까이 있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러시아 문호들을 가까이에서 소개한 글들은 이 책의 부분일 따름이다.

가난한 시골 노인, 성공한 기업가, 무덤 파는 인부, 불을 좋아하는 인간 등 다양한 러시아인들이 고리키의 범상치 않은 관찰력과 흥미로운 묘사에 힘입어 생생하게 소개된다.

이를테면 ‘용감한 정원사’는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며 혁명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자신이 관리하는 잔디밭에 들어온 병사에게 “전쟁은 딴 데 가서 실컷 하라고. 여긴 나 혼자 알아서 할 테니!”라고 호통 친다.

다양한 모순을 안은 인간들이지만 그들에 대한 낙관적인 애정이 묻어나는 고리키 특유의 산문들이 싱싱하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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