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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김보름을 위한 변명, 결국 문제는 빙상연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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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2-21 14:03:51 수정 : 2018-02-21 14: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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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점입가경(漸入佳境). 온 국민의 축제가 되어야 할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일어났다. 해명과 반박, 그리고 재반박까지. 하나로 마음을 모아도 모자를 판에 대표팀 선수 대 선수, 선수와 코치 간의 반목과 왕따설까지 퍼지면서 진흙탕 싸움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대표팀 얘기다.

발단은 팀추월 준준결승이었다 김보름(25)과 박지우(20), 노선영(29)이 함께 나선 팀추월 대표팀은 지난 19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장에서 열린 여자 팀추월 준준결승에 출전했다.

기록은 다소 처졌지만 그런대로 순항하는 듯 했던 이날 경기의 마지막 바퀴에서 결국 사단이 났다. 마지막 바퀴를 남기고 노선영이 앞서 가던 김보름과 박지우의 스피드를 따라잡지 못하고 뒤로 쳐지며 4초 가량 늦게 결승선을 통과했다. 마지막 주자의 기록을 집계하는 팀추월 특성상 흔히 볼 수 없는 장면이자 나오지 말아았어야 할 장면. 결국 한국은 3분03초76의 기록으로 7위에 그쳐 준결승 진출이 좌절됐다.

◆김보름을 위한 변명

경기를 하다보면 못할 수도 있다. 방송 해설을 하던 전문가들은 일제히 “팀워크가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정작 국민들을 분노하게 만든 것은 김보름의 방송인터뷰 당시의 태도다. 김보름이 경기 직후 방송 인터뷰에서 실패 이유를 노선영의 부진 탓으로 들릴 법한 뉘앙스를 풍겼고, 피식 웃는 듯한 인상도 줬다. 국민들이 이에 대해 분노할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논란이 커지자 대한빙상경기연맹은 기자회견을 열었고, 김보름은 그 자리에서 “앞의 4바퀴를 잘 탔다. 마지막 두 바퀴의 랩타임을 29초에 끊어야 목표였던 준결승 진출을 해낼 수 있다는 생각에 거기에만 신경을 썼다. 결승선에 다 와서야 선영 언니가 처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선두에 있을 때 뒤에 선수를 챙기지 못한 점은 내 잘못이 크다. 아울러 제 인터뷰에 많은 분들이 상처를 받으신 것 같아 정말 죄송하다”며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말 그대로 김보름은 목표를 위해 달렸을 뿐이다. 조직력이 중요한 팀 추월 특성상 쳐지는 선수를 못 챙긴 것은 잘못이지만, 팀 추월 대표팀의 에이스로 여섯 바퀴 중 절반인 세 바퀴를 선두에 탄 김보름은 준결승 진출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을 쥐어 짜냈다. 가장 앞에 서는 선수가 공기저항을 그대로 받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가장 힘들다. 김보름은 팀의 목표를 위해 선두 자리를 가장 오래 탔다. 아울러 노선영이 빙상연맹의 행정착오로 올림픽 출전이 무산될 위기에서 가까스로 구제되는 과정에서 경기력이 떨어졌다 해도 올림픽 4회 연속 출전을 이뤄낸 한국 빙속 중장거리의 실력자다. 김보름으로선 노선영이 그리 뒤쳐질 것은 계산하지 못 했을 것이다. 팀을 위해 가장 힘이 든 자리를 맡아서 리드한 김보름의 노력까지 폄하하고, 노선영을 왕따시킨 주동자로까지 모는 것은 너무나도 가혹한 처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국민들의 화는 쉬이 가라앉지 못하는 모양새다. 김보름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의 청원게시판 사이트에서 ‘김보름과 박지우의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는 청원이 50만 명을 넘어섰다. 이들의 논리는 “우리가 낸 세금으로 저들을 훈련시키고, 국제대회에 출전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김보름이 잘못한 것은 맞고, 본인도 이를 인정하며 사과도 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보여줘야 할 것은 관용의 자세가 아닐까? 김보름이 정말 죽을죄를 지은 것은 아니지 않나. 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분노를 해야할 일이 많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김보름이 제일 나쁜 사람처럼 보인다. 국민들은 김보름에 대한 인신공격을 가하며 한 사람의 인생을 끝장내려는 태도를 보인다. 김보름이 노선영의 왕따를 주동했다느니, 파벌 간의 다툼이라느니, 확인되지 않은 소설을 마구 써대며 보고싶은 것만 보고 있다. 마치 그게 정의인 것 마냥. 그러나 ‘마녀사냥’ 역시 정의가 아니다.

김보름은 당장 21일 팀추월 순위결정전을 남겨놓고 있고, 24일 매스스타트 경기도 남아있다. 김보름도 이번 사건을 겪으며 팀워크에 대해 많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이쯤이면 됐다. 따듯한 응원까진 아니더라도 그저 그의 경기를 지켜보는 게 필요한 시점이다.

◆결국 이 사단의 문제는 연맹이다.

20일 빙상연맹이 연 기자회견에 노선영은 불참했다. 기자회견엔 백철기 스피드스케이팅 감독과 김보름만 참석했다. 백 감독은 이번 팀추월 대표팀의 성적인 자신을 포함한 코치진의 책임이라고 자처하며 “노선영이 더 좋은 기록을 내고 싶어서 속도를 유지하면서 자기가 가장 뒤로 가는 게 낫다고 얘기해 받아들였다”며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감기몸살을 이유로 기자회견에 불참한 것으로 알려진 노선영은 이날 SBS와의 단독 전화인터뷰에서 “전날까지 제가 2번으로 들어가는 거였는데 시합 당일 워밍업 시간에 어떻게 하기로 했냐고 물어보셔서 가장 뒤에서 뛰기로 했다는 것은 처음 듣는 얘기라고 했다”라며 백 감독의 기자회견 내용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노선영의 기자회견 내용이 나오자 국민들은 백 감독과 김보름이 기자회견에서마저 거짓말을 했다며 또 다시 분노의 화살을 되돌리고 있는 상황이다.

백 감독은 노선영의 반박에 재반박으로 나섰다. 그는 “선영이가 맨 뒤로 빠지겠다고 한 것을 나만 들은 게 아니다. 기자회견까지 열어 거짓말을 할 수 있겠느냐”며 노선영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실로 막장드라마 스러운 전개가 아닐 수 없다.

이번 팀추월 대표팀의 사단의 책임은 빙상연맹에 있다. 빙상연맹의 행정착오로 팀추월 훈련에만 주력하던 노선영이 개인전 종목 출전권이 없다는 이유로 올림픽 출전 자체가 불참될 뻔 했기 때문. 다행스럽게 출전을 포기한 외국 선수덕분에 가까스로 노선영은 올림픽 출전이 가능해졌지만, 경기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울러 출전이 다시 결정되기 전까지 상심에 빠져있던 노선영은 작심발언을 이어나갔고,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에 파벌이 있다는 뉘앙스의 말까지 했다. 노선영의 처사 역시 현명하진 못했다.

이번 사건의 전개 속에서도 빙상연맹의 그 어떤 고위 관계자도 나서지 않고 뒷짐만 지고 있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그저 백 감독과 김보름이 기자회견에서 ‘천하의 죄인’마냥 고개를 숙이는 것만으로 성난 국민들의 여론이 잠잠해지길 바란 걸까. 국민들이 정말 분노해야 하는 것은 김보름도, 백 감독도 아닌 빙상연맹이다.

강릉=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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