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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맛이 없으면 입맛으로 먹고, 입맛이 없으면 밥맛으로 먹는다”는 말을 하곤 했다. 밥맛과 입맛을 굳이 구분할 필요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밥맛과 입맛의 느낌이 다르기는 하다. 입맛은 말 그대로 입으로 느끼는 맛인데, 밥맛은 그냥 밥에서 느껴지는 맛만을 표현하지 않는다. 몸의 상태뿐만 아니라 기분을 나타내기도 한다. 입맛을 따질 여유도 없이 오로지 끼니 걱정에 매달린 간난의 세월을 겪으며 밥을 소중하게 여긴 농자천하지대본의 정신을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 “밥심으로 산다”는 말도 그런 맥락에서 생겼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순위를 따지면 입맛보다 밥맛이 먼저였던 셈이다.

먹고사는 형편이 나아지면서 밥맛이 입맛에 밀리는 시대가 됐다. 밥맛보다 입맛을 더 느끼며 사는 세상이다. 밥을 먹지 않아 쌀이 남아돈다. 창고에 쌓인 묵은 쌀이 220만t이나 된다. 재고 쌀을 관리하는 데 드는 돈만 해도 1년에 1000억원이 넘는다. 쌀 소비 촉진 운동을 벌여도 한 번 잃어버린 밥맛을 되돌리지 못하고 있다. 없어서 못 먹던 쌀이 남아돌기 시작한 것은 생산량이 높은 ‘통일벼’ 품종이 농가에 보급되기 시작한 1972년부터라고 한다.

멀쩡한 쌀을 썩히느니 끼니 해결이 어려운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면 했는데, 마침내 방도를 찾았다. 정부가 예멘, 시리아, 케냐, 에티오피아, 우간다 5개국에 쌀 5만t(460억원 규모)을 지원하기로 했다. 재고 관리 비용보다 더 많은 돈이 들지만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일이다. 특히 에티오피아는 6·25전쟁 때 도움을 주었던 나라여서 의미가 더 크다. 캄보디아, 미얀마 등에 쌀을 지원한 적이 있으나 대량 지원은 이번이 처음이다. 쌀 품질도 2016년 생산된 정부관리양곡 중 ‘상’ 등급이라 하니 이들에게 내미는 우리의 손이 부끄러울까 하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싶다. 받는 이들에게도 기쁜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한다는 속담은 옛말이 됐다. 국민을 굶주리게 하는 지도자는 자격이 없다. 어쩔 수 없이 북한에 눈길이 간다. 대북 쌀 지원이 남북관계 악화로 2010년 이후 끊겼다.

김기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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