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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택, 공개 사과…연극계 “피해자에게 2차 가해”

입력 : 2018-02-19 19:42:10 수정 : 2018-02-19 22: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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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 진정성 논란/李 “법적 책임 포함 벌 달게 받을 것”/피해자 안 찾고 일방적 발표 지적/성폭행 대해선 끝까지 인정 안 해/다른 성폭행 피해자 주장도 나와/연극단체 제명·퇴출조치 줄이어/연희단거리패 극단 해체도 발표 과거 성폭력 사실이 연이어 폭로된 연극 연출가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19일 “법적 책임을 포함해 어떤 벌도 달게 받겠다”며 공개 사과했다. 이윤택은 성추행은 인정하면서도 성폭행 의혹에 대해선 ‘성관계는 했지만 폭력적·물리적 성폭행은 아니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기자회견 후 또다른 성폭행 고발이 이어졌고, 연극계에서는 그의 사과에 대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성폭행 고발을 부인하기 위한 기자회견’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연극단체들은 속속 이윤택을 회원에서 제명했다. 연희단거리패는 이날 극단 해체를 발표했다.

“죄송합니다” 성추행 파문을 일으킨 연극 연출가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이윤택은 서울 명륜동 30스튜디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피해를 본 당사자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한다”면서 “가능한 한 직접 (피해자들을) 만나서 사과하겠고 공소시효가 지났다면 다른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책임지겠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안마와 발성연습을 빙자한 성추행은 인정하면서도 성폭행은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진위는 법적 절차가 진행된다면 성실히 수사에 임해서 밝히겠다”며 “성관계는 했지만 강제가 아닌… 상호간에 믿고 존중하는 관계였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배우 김모씨가 2005년부터 약 5년간, 다른 피해자가 2002년부터 약 8년간 이윤택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주장이 새로 제기됐다. 현장에서 회견을 지켜본 김씨는 이날 페이스북에 연희단거리패 단원 시절 이윤택을 안마하다가 성폭행을 당했으며 이로 인해 2005년 낙태했다고 고발했다.

김씨는 “낙태 사실을 아신 선생님께선 제게 200만원인가를 건네시며 미안하단 말씀을 하셨다”며 “그 사건이 잊혀져 갈 때쯤 또다시 절 성폭행하시기 시작했다. 자신의 아이를 임신했던 아이이기에 자신의 사람이란 말씀을 하시면서”라고 털어놓았다. 극단을 나온 김씨는 공황장애 판정을 받았다. 그는 이윤택이 진정한 사죄를 한다면 상처가 치유되리란 생각에 기자회견장에 갔으나 ‘성폭행이 강제성이 없었다’는 말에 회견장을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앞서 17일 연희단거리패 전 단원은 2001년 19살, 극단을 나온 2002년 20살 때 두 번에 걸쳐 이윤택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글을 인터넷 커뮤니티인 연극·뮤지컬 갤러리에 올렸다.

이윤택은 2016년 발성을 가르쳐 준다는 빌미로 국립극단 ‘미스 줄리’에 출연한 여배우를 성추행한 의혹에 대해서는 “발성을 가르치다가 자칫 불가피하게 가슴이나 척추를 터치하게 되는데… 그 배우가 저한테 성추행을 당했다고 생각했음을 지금에야 알았다”며 “사죄하겠다”고 말했다.

전체 성폭력 피해자 숫자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이윤택은 “극단 내에서 18년 가까이 진행된, 생활에서 관습적으로 일어난 아주 나쁜 행태라고 생각한다”며 “제가 어떤 때는 이게 나쁜 죄인지 모르고 저질렀을 수 있고, 어떤 때는 죄의식을 가지면서도 제 더러운 욕망을 억제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연극계는 이날 이윤택의 공개 사과에 공분을 표했다. 배우 홍예원은 “기자회견 자체가 폭력적”이라며 “피해 당사자에게 사과하지 않은 채 기자들을 불러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 자체가 2차 가해”라고 지적했다. 김소연 연극평론가는 “이건 사과가 아니라 성폭행 고발을 부인하기 위한 기자회견”이라고 질타했다. 박상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는 “아직 진심으로 뉘우친 것 같지 않다”, 나희경 페미씨어터 대표는 “사과는 자신의 잘못을 명시하고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일인데 이윤택은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말하지 않고 잘못했다고만 한다”고 꼬집었다. 이해성 극단 고래 대표도 “성행위는 있었지만 성폭행이 아니라니…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를 하는 것”이라며 착잡해했다. 한 30대 연출가는 “위압이나 폭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해서 성폭행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며 “이윤택이 가진 권력과 입지만으로도 피해 당사자에게는 폭력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길 바란다”고 말했다.

성추행 파문을 일으킨 연극연출가 이윤택의 기자회견이 열린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한 여성이 '사죄는 당사자에게 자수는 경찰에게'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연극 단체들의 이윤택 퇴출 조치도 줄을 이었다. 서울연극협회와 한국연극협회는 그를 제명했다.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한국본부도 이날 성명서를 내고 이윤택 연출과 연희단거리패의 회원 자격을 박탈한다고 발표했다. 한국연극연출가협회도 이윤택을 영구제명했다. 연극연출가협회는 “이번 사태가 표면화되기 오래전부터 여러 피해자들이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음에도 적극 행동에 나서지 않았던 점, 연극계 부당한 권력과 잘못된 문화가 존재하도록 방치한 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깊이 반성하고 사과한다”고 밝혔다. 한국여성연극협회도 이윤택의 연극계 영구 제명·그가 수상한 모든 상의 취소·진정성 있는 참회와 사과·사법 절차 병행 등을 요구했다.

연희단거리패 김소희 대표는 이날 “우리가 노력해서 풀릴 문제가 아닌 것 같아 오늘 극단을 해체한다”고 발표했다. 김 대표는 “4, 5년 전 안마와 ‘터치’가 문제가 돼 두 번 정도 (이윤택) 선생님에게 공개사과를 요구해 모든 단원 앞에서 사과했다”며 “신고하자는 논의는 있었지만 실행이 안 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게 법적인 문제이고 가해자와 피해자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이윤택) 선생님과 우리 후배들 사이에서 둘 다 상처받지 않는 방법을 어리석게 계속 찾아나갔다”며 “(성폭력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고 시인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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