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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식의세계속으로] 케이프타운, 상수도 공급 중단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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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2-20 00:01:31 수정 : 2019-03-26 16:3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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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연속 극심한 가뭄으로 저수량 바닥 / 부자들은 마당에 물탱크 마련… 폭동 위험

아프리카 남단의 미항(美港)이자 남아공 제2의 도시 케이프타운이 ‘데이 제로’, 즉 상수도 공급의 중단이라는 위기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 세계에서 인구 400만명 규모의 대도시가 수도꼭지를 완전히 잠근 사례는 전무하다. 케이프타운의 물은 주변 6개 댐에서 공급하고 있는데 지난 3년간 강우량이 급격하게 감소하는 가뭄으로 현재 물은 수용량의 26% 수준에 불과하다. 이것이 13.5% 수준까지 내려가면 ‘데이 제로’를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역시 기후 변화다. 이번 겨울 한국이 체험하는 강추위나 프랑스 센강의 범람, 그리고 남아프리카의 가뭄은 모두 매우 드문 이상 기후 현상이다. 아이러니는 케이프타운이 2014년에 세계 디자인 수도로 지정됐고, 그 이듬해에는 환경친화부문 국제상을 받을 정도로 ‘잘나가는’ 도시였다는 사실이다. 도시의 미관과 시정이 모두 우수하다는 평가 덕분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다가오는 3년의 혹독한 가뭄을 예측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실제 준비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제 6월 4일로 예측되는 ‘데이 제로’를 최대한 연기하면서 남반부의 겨울비를 고대해야 한다. 시 정부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절제와 참여를 독촉하는 중이다. 하루 1인당 물 사용의 기준을 지난달 87L에서 50L로 줄였다. 이는 3분간 샤워를 할 수 있는 양이다. 호텔조차 4일에 한 번만 수건이나 침대시트를 갈아주고, 욕실에는 물통이 있어 샤워할 때 흐르는 물을 받아 재활용한다. 도시 곳곳의 공중화장실에서도 꼭 필요한 경우에만 물을 내리도록 하며, 손 씻기는 세정제 사용을 강요한다. 그러나 아직 인구의 절반만이 이를 지킨다.

 

위기의 또 다른 원인은 정치다. 케이프타운시는 야당인 민주동맹(DA)이 운영하는데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중앙정부와 대립으로 지하수 개발이나 담수처리공장 설립 등 적절한 대책 마련에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로비가 강한 농업 부문에 용수를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느라 시민이 사용할 수 있는 물을 낭비한 측면도 있다.

 

일단 ‘데이 제로’가 시작되면 일반 수도는 끊긴다. 관광을 위한 도심지역과 병원, 학교 등 특수 시설만이 예외다. 그리고 시의 200여 배급소에서 물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면 1인당 하루 25L의 물만 나눠준다. 원활한 배급을 위해 군대를 동원해 치안을 유지한다. 하지만 사회 불평등이 심각한 남아공에서 소요나 폭동의 위험은 여전하다. 부호들은 이미 마당에 물탱크를 마련하고 있지만 빈민촌에는 배급받은 물을 나르기도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물부족은 추가로 전염병의 확산과 같은 치명적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

 

얼마 전 필자가 케이프타운에 머문 동안 여름 더위가 한창이었지만 샤워하기도 미안한 상황이었다. ‘데이 제로’라는 무시무시한 단어를 떠올리며 내 생전 이렇게 물을 소중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이 도시를 떠나는 날 새벽, 쏟아지는 소나기에 흠뻑 젖어도 기분이 좋았고 덕분에 방문객의 죄책감은 약간 줄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제이컵 주마 부패 대통령의 사임 소식이 전해졌다. 정치의 새로운 시대와 함께 물을 아끼는 시민의 공동 노력, 그리고 풍성한 남반부의 겨울비로 아름다운 도시 케이프타운이 ‘데이 제로’를 피하기를 바란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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