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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타워] 국세청, 상명하복 문화 깨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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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2-18 20:48:54 수정 : 2018-02-18 20:4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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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같은 국세청’ 분위기에서
윗선 압력 맞설 수 있을지 의문
정말로 개혁할 의지가 있다면
젊은 직원들 목소리 경청해야
대통령 권력에 기대어 호가호위했던 최순실씨조차 치를 떨었던 게 있다. 국세청의 세무조사다. 최씨는 법정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자신의 집안이)세무조사를 당했다”고 핏대를 세웠다. 국가기록원 자료를 보면 1996년 최씨와 전 남편 정윤회씨, 모친 임선이씨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3국의 세무조사를 받고 거액을 추징당했다.

세무조사의 위력을 잘 알았기 때문일까. 그가 비선실세로 주연한 국정농단 사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보복성 세무조사 의혹이다.

이천종 경제부 차장
국세행정 개혁 태스크포스(TF)가 지난해 공개한 ‘조사권 남용 세무조사’ 사례 중에는 최씨 단골 성형외과의 중동 진출에 부정적 의견을 제출한 이현주 DW커리어 대표 일가에 대한 세무조사가 포함됐다. TF의 남용 사례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보복성 세무조사라는 칼을 휘두른 의혹이 짙은 사례는 더 있었다.

국세청은 행정조직상으로 보면 기획재정부 소속 외청(外廳)이고, 기관장인 국세청장은 차관급 정무직 공무원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검찰과 국정원, 경찰과 함께 ‘4대 권력기관’으로 불린다. 권력의 원천은 세무조사다.

예전에는 세무조사를 나갈 때 직원들끼리 은어로 ‘염(殮)하러 간다’고 말하곤 했다. ‘국세청의 중수부’로 불리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의 별칭이 ‘재계의 저승사자’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리 틀린 말도 아니었다. 1980년대 초반 잘나가던 명성그룹은 세무조사 후에 운명을 달리했고, 5공 때 전두환의 눈 밖에 난 국제그룹은 세무조사로 공중분해됐다.

요즘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세무조사의 위력은 막강하다.

중소기업인 A씨는 “기업 입장에서는 검찰 수사보다 무서운 게 세무조사”라고 했고, 검찰 고위간부 출신으로 로펌을 연 B씨는 “개업해보니 가장 무서운 게 세무조사”라고 털어놨다.

세무조사는 그러나 양날의 칼이다.

권력자의 뒤를 봐주며 휘두른 칼에는 제 손도 베이는 법이다. 역대 국세청장의 운명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지난 13일 이현동 전 국세청장이 구속 수감됐다. 이명박(MB)정부 시절 국가정보원 대북공작금을 받아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뒷조사한 혐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대한민국에서 역대 기관장이 가장 감옥에 많이 가는 데가 농협중앙회와 국세청”이라고 일갈했는데 쓴웃음만 나온다.

문재인정부 들어 국세청의 변신 행보가 그 어느 때보다 발 빠르다.

입 밖에 내는 것조차 꺼리던 ‘정치적 세무조사’ 의혹을 순순히 자인했다. 수장인 한승희 국세청장은 과거 정치적으로 이뤄졌던 세무조사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기까지 했다.

최근에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의 인력과 특별세무조사를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전체 세무조사에서 비정기 세무조사(옛 특별세무조사)가 차지하는 비중도 단계적으로 축소하기로 했다. 조사4국의 인력 축소는 개청 이래 사실상 처음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조사4국은 국세청 내부 조직 중에서도 심층·기획 세무조사를 담당하는 핵심 부서다. 정권의 철학과 궤를 맞추는 세무조사는 대체로 조사4국에서 이뤄지곤 했다.

어깨에 힘을 빼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국세청의 변신 행보는 옳다.

세무조사는 권력자의 칼이 아니라 국민의 칼이다. 과세정의를 위해서만 활용돼야 한다. 시장경제에서 정치적 세무조사는 그 어떤 명분으로도 용납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혁의 실천은 수직적 조직 문화의 개선 없이는 요원하다.

군대 못지않은 상명하복 문화가 만연한 국세청 직원들이 윗선의 압력에 강단있게 맞설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앞으로 국세공무원이 세무조사와 관련해 부당한 지시를 받을 경우 감사관실에 신고하도록 의무화했지만 직원들은 회의적이다. 일선 직원이 윗선의 부당한 지시에 맞서 선뜻 신고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국세청이 개혁 의지가 있다면 자율성·개별성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 직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군대 같은 국세청’이라는 오명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이천종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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