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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더 피곤하고 박탈감만…” 연휴가 괴로운 직장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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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2-17 18:02:57 수정 : 2018-02-17 23: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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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 때는 좀 다같이 쉬었으면 좋겠어요….”

울산에 사는 직장인 이모(34)씨는 이번 설 연휴, 그에게 주어진 48시간 중 21시간가량 운전대를 잡았다. 17일 새벽 출근 전까지 조부모님 댁이 있는 서울에 갔다와야했기 때문. 친척들과의 정을 나누기는커녕 차례가 끝나자마자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자리에서 급히 일어났다. 극도의 피로감에 눈이 어질어질했지만 출근 시간을 맞추기 위해선 별수 없었다.

그는 “설이나 추석 ‘연휴’라는 표현을 들을 때마다 박탈감이 크다”며 “2∼3일 연휴답게 쉬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그나마 이번 설은 당일이라도 쉬어서 다행”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제주도가 고향인 직장 3년차 강모(30)씨는 고향길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자는 시간을 쪼개가면서까지 일을 마무리하려 했지만 도무지 줄지 않는 업무들에 시간을 낼 엄두가 나지 않아서였다. 그렇다고 수당을 받는 것도 아니다. 포괄임금제가 적용되는 업종인 데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어서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 설 당일 하루 종일 출근한 그는 이튿날 오전 4시쯤 비로소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강씨는 “이번 설을 겪으며 올 상반기에 회사를 그만둘 결심을 굳혔다”며 “일과 여가의 균형이 붕괴됐다. 다 정리하고 고향에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고 털어놨다.

이번 설에도 어김없이 연휴가 괴로운 직장인들이 나타나고 있다. ‘연휴(連休)’는커녕 산더미같이 쌓인 업무와 직장 상사의 ‘눈칫밥’에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출근해야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지난해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란 단어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크게 각광받았지만 평범한 직장인들에겐 그저 ‘박탈감’의 다른 이름일 따름이다.

◆직장인 44% 알바생 62% 설 연휴 출근

연휴마다 찾아오는 이런 박탈감은 일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17일 취업포털 잡코리아와 아르바이트포털 알바몬이 이번 설을 앞두고 시민 1737명(직장인 1081명·알바생 65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의 절반이 넘는 51.3%가 ‘설 연휴에도 출근한다’고 응답했다. 직장인 44.5%, 알바생 62.5%가 ‘하루 이상 출근한다’고 밝혔다.

직무별로는 전문·특수직에서 근무하는 경우가 60.5%로 가장 많았고, 영업·고객상담(55.1%), 생산·제조(53.6%) 등이 뒤를 이었다. 알바생의 경우는 매장관리(77.2%), 서비스(60.0%), 생산노무(53.1%) 등 순이었다.

실제 출근을 하진 않더라도 휴일 동안 업무에 시달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한 유통업체에 다니는 직장인 이모(29·여)씨는 “구체적으로 연휴에 일을 하라는 지시는 없어도 쉬는 동안 거래처에서 업무 관련 메일을 보내면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며 “쉴 때도 쉬는 것 같지가 않다”고 말했다.

그나마 휴일 수당이라도 받을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제대로 된 처우를 받는 것은 요원하다. 앞선 조사에서 설 연휴 출근에 ‘수당이 있다’는 응답은 직장인 30.6%, 알바생 18.5%에 그쳤다. 수당 대신 휴일에 근무하는 조건으로 다른 날 대신 쉴 수 있도록 하는 대체 휴일 관련해선 직장인의 75.7%, 알바생 83.9%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답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지난해 추석 때 벌인 조사에서도 ‘추석 연휴 근무시 휴일근무수당을 가산해서 받느냐’는 질문에 ‘받는다’(20%)는 응답은 ‘못 받는다’(61.7%), ‘모른다’(15%)보다 3배 이상 적었다. 이 단체 관계자는 “남들이 쉬는 연휴에 박탈감을 느끼며 일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단체행동 나선 유통계, “우리도 세배하고 싶어요”

명절마다 되풀이되는 무휴식 고강도 노동에 직장인들의 시름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특히 ‘휴일이 없는’ 유통업계의 호소는 더욱 절박하다.

전국서비스산업노조와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등은 설 연휴를 앞둔 지난 13일 서울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형마트, 백화점, 면세점은 설 당일을 의무휴일로 지정하라”고 주장했다. 설을 앞두고 대다수 백화점 및 대형마트 직원들이 과도한 업무량을 호소하면서 단체 행동에 나선 것이다.

이 시기 밀려드는 업무에 비해 일손이 부족한 탓에 각 백화점과 대형마트 본사 직원들까지 나서서 직접 고객의 집으로 배송을 다니는 것은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김태훈 전국가맹점주협의회연석회의 사무국장은 “우리 모두 자식이고 남편이고 아들인 만큼 명절엔 세배도 드리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며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도 자율영업을 하면서 명절 당일 단 하루라도 쉬고 싶다”고 호소했다.

일각에서는 연휴 근무가 뿌리깊은 관행인 만큼 정부가 대책마련에 적극 나서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6년 발표에 따르면 OECD 회원국 월평균 노동시간은 147시간으로, 우리나라 172시간보다 25시간이나 적다. 연 평균으로 따지면 우리나라(2069시간)는 OECD평균(1764시간)보다 무려 300시간이나 더 일하고 있다. 이런 통계의 근간에는 직장인들이 연휴와 연차를 맘껏 활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고용관행이 자리잡고 있다는 지적이 강하다.

◆獨 노동계, “주 28시간 노동 보장하라”

반면 유로존 전체 생산량의 3분의1을 차지하는 독일의 노동자들은 지난달 현행 주 35시간인 노동시간을 주 28시간까지 줄일 것(노인과 자녀, 친척을 돌봐야할 경우)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섰다. 독일 최대 노조인 금속노조(IG 메탈)는 임금 6% 인상안과 함께 일시적으로 이처럼 노동시간을 줄이되 2년 뒤 풀타임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독일은 2016년 기준 OECD 연간 노동시간이 1363시간으로 회원국 중에서 가장 적은 나라임에도 노동계 전반에서 노동과 삶의 균형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적은 노동 시간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독일의 경제 성장률은 2.4%를 기록했고, 2013년 5.2%를 기록한 실업률은 지난해 11월 3.6%까지 떨어졌다.

물론 기술력과 경제 구조가 달라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고강도 장시간 노동이 고착화된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는 평가다. 정부는 이런 문제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빠른 시일 내 대책 마련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앞선 신년 기자회견에서 “노동시간 문제는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며 ‘노동시간 단축’을 4번이나 언급한 바 있다.

노동단체 한 관계자는 “정부가 2011년 노동시간 단축을 골자로 한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을 비준했는데 최단 노동시간의 독일조차도 비준하지 못한 협약이 우리나라에서 통과된 것은 무척 우스운 일”이라며 “정부와 기업들은 ILO 기본협약에 준해 명절·연휴 근무 등 고착화된 노동관행을 깨는데 적극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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