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입양아동 학대·사망사건 후 정책변화와 과제’ 토론회에 참석한 한 입양인이 이같이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금태섭·이재정 의원과 국민의당 김삼화 의원, 국회 여성·아동·인권정책포럼 공동 주최한 당시 토론회는 ‘은비 사건’과 ‘포천 입양아 사망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 나타난 입양과 절차의 문제점을 제시하고 입양 제도가 보다 아동의 인권을 중심으로 운용될 수 있도록 법 개정안을 제안하기 위한 자리였다.
입양 절차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만큼 제정 8주년을 맞이하는 입양특례법 개정 방향에 대한 내용을 빼고서는 성립될 수 없는 자리였다. 해외입양과 국내입양을 모두 포괄하는 제도인 만큼 토론회에는 입양기관과 입양부모는 물론 해외입양인, 국회·정부 관계자 등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총출동했다. 2시간을 예정했던 토론회가 결국 3시간을 훌쩍 넘겨 마무리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헤이그국제입양협약의 비준을 위해 추진 중인 입양특례법 개정과 관련해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을 짚어본다.
정부는 2013년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 당시 “국제입양 아동의 안전과 인권을 책임지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국내외에 밝힌다”는 공표와 함께 헤이그협약에 서명하며 2년 내 비준을 약속했다. 비준을 위해서는 입양특례법뿐 아니라 민법과 아동복지법, 가족관계 등록법 등 입양절차 및 아동복지와 관련된 제도 전반을 국제수준에 맞추도록 끌어올리기 위해 대대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그러나 관련 논의가 지지부진하며 5년이 다 돼가도록 감감무소식인 탓에 아직 한국은 헤이그협약의 정식 가입국이 아닌 상황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의 반열에 오른 한국에 이같은 모순적 상황에 빠진 데에는 1950년대 6·25 전쟁 이후 ‘먹고살기도 급급하다’는 핑계로 구석으로 밀어놓았던 아동복지와 아동인권에 대해 여태 제대로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폐허 속에 급증한 전쟁고아들을 정부 차원에서 신경 쓸 틈이 없었고 그 사이 홀트아동복지회를 필두로 민간에서 이를 대행해 해결하기 시작했다. 원래 취지대로라면 보육원이 우후죽순 들어서고 해외입양이 급증한 상황은 1970년대 이후 경제가 발전하며 한풀 꺾여야 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1970년대 급증한 해외입양은 1985년에 급증했기 때문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국제적 비난 여론이 비등하자 정부 차원에서 급하게 이를 축소하기 위한 강경책이 쏟아졌다. 이후 감소세에 접어들었고 2011년 입양특례법이 제정된 이후 더욱 줄었지만, 저출산으로 온 나라가 신음하는 최근에도 여전히 매년 수백명의 아동이 해외로 입양되고 있는 현실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이 정도 규모로 해외입양을 진행 중인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이토록 한국이 아동인권을 외면하자 국내에서는 잠잠했지만 유엔 및 해외 선진국에서 비난의 목소리는 계속됐다. 헤이그협약의 비준에 대한 압박이 끊이지 않았던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결국 2013년에 이르러서야 복지부 장관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서명한 것이다.
헤이그협약의 전체 이름을 살펴보면 ‘Convention on Protection of Children and Co-operation in Respect of Intercountry Adoption(Concluded 29 May 1993)’이다. 번역해보면 ‘1993년 5월29일에 체결된 아동의 보호와 국제입양의 존중에 대한 협약’으로 출발선은 아동보호 및 인권을 국제입양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하기 위한 취지임을 확인할 수 있다.
대명제는 입양의 대상이 되는 아동 또한 보통의 아동과 다름없이 ‘자신의 인성을 온전하고 조화롭게 발전시키기 위해 행복과 사랑의 분위기가 조성된 가정환경에서 자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원가정의 보호 하에 아동이 성장할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하고 해외입양은 자국에서 적절한 가정을 찾을 수 없을 경우에 한해 ‘영구적인 가정의 이점을 제공할 수 있도록’ 행해진다고 명시했다. 입양이라는 절차가 아동의 정체성과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입양가정이 새로운 원가정이 될 수 있도록 입양의 절차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는 아동이 안정적으로 자라게 할 수 있도록 원가정 보호의 의무를 기본적으로 해야 한다. 한부모가정, 조손가정, 저소득가정, 장애인아동을 키우는 가정 등 취약 가정에 대해서는 아이를 포기하지 않도록 최대한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취지에 따라 아동복지가 제대로 확립된 선진국에서는 친척도 없는 상황에서 부모가 사망하거나, 부모가 장기간 교도소에 수감되는 등의 극히 일부 상황을 제외하고는 아동이 가정에서 분리되는 경우가 좀처럼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경제난 가중으로 가계가 어려워지거나 이혼 등으로 가정 위기가 고조될 경우 별다른 제재 없이 아동을 보육시설에 맡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매년 수천명의 요보호아동이 발생하고 있지만 정부는 보육원이나 아동보호시설에 대한 지원을 확대할 뿐 원가정 보호에 대해서는 별다른 정책적 토대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하반기 도입되는 아동수당 또한 이러한 측면에서 우려를 키운다. 선진국에서는 아동복지를 비롯한 전반적인 복지체계를 확립한 이후 아동수당을 도입했기 때문에 정책적 효과가 모든 가정에 비교적 골고루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취약가구에 대한 복지 지원의 정비를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상황에서 아동수당이 먼저 도입됐다. 기존의 여유가 있는 가구의 경우라면 여윳돈으로 아동의 각종 발전을 위해 쓸 수 있게 되지만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가구라면 그 돈을 가계에 투입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대로라면 두 계층간 격차는 더 벌어지게 되는 상황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헤이그협약, 입양 막기 위한 것?
이러한 가운데 일각에서 ‘입양의 절차를 까다롭게 하고 결과적으로 입양을 막을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입양기관을 중심으로 반대 목소리가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그렇다면 헤이그협약은 정말 입양을 막기 위한 것일까.
문제는 이 두 나라의 입양 절차가 정부 및 국제적 절차에 따라 이뤄지기보다는 민간기관의 중개서비스 제공 형태로 이뤄지면서 아동의 인권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사례들이 빈번히 보고됐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된 아동 중 미국 시민권을 받지 못해 추방 위기에 놓인 아동이 2만여명에 달하고, 사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탓에 파양의 상황에 놓여 아동복지시설을 떠도는 아동의 사례, 학대로 사망하는 아동에 대한 보고가 끊이지 않는 것이 이 때문이다.
최근 이를 위해 입법안을 추진하는 의원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남인순 의원(더불어민주당·서울 송파병)이 대표적이다. 남 의원이 마련한 개정안(초안)은 ‘민간 중심으로 행해지던 입양절차의 컨트롤타워를 지방자치단체로 하는 등 공공적 절차를 강화하는 것’과 ‘입양기관의 역할은 사후 서비스제공 및 상담 등으로 축소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내용이다.
사실 남 의원이 마련한 개정안은 처음 나온 이야기는 아니다. 지난 19대 국회 당시 새누리당 김승희 의원 또한 별도의 ‘국제입양에 관한 법률(가칭)’ 제정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제외하면 큰 틀에서 비슷한 내용의 입양특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 의원의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아동의 입양적격성을 지방자치단체에서 판단하도록 하는 등 입양절차 전반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관여와 책임을 강화한다’는 내용이 눈에 띈다. 이를 위해 중앙입양원의 권한 및 역량을 강화하는 내용도 담겨있다. 결과적으로 입양기관의 역할은 ‘국내입양 활성화 사업, 사후서비스 제공 또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등으로부터 위탁받은 사업’ 등으로 국한되고 그 업무수행 내용 또한 매년 정부에 보고해야 한다.
◆해외입양, 최후의 수단이다 vs 아니다
남 의원 중심으로 입양특례법 개정 움직임이 일자 입양기관과 일부 입양부모들을 주축으로 이를 막기 위한 ‘입양가족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발족했다. 비대위가 제기하는 우려로 우선 ‘국제입양을 최후의 수단으로 보는 시각은 헤이그협약을 오독한 것이다’는 부분이 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헤이그협약에서 원가정 보호의 원칙을 강조한 이유는 ‘(일반적으로) 아동이 최대한 원가정에서 분리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전제 때문이다. 이 때문에 보육원이나 아동복지시설의 역할은 요보호아동을 원가정에 복귀시키기 위한 일시보호 시설의 역할에 국한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부모가 중병으로 장기간 치료가 필요하거나 정부에 일시보호를 요청할 정도로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최대한 원가정을 지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원가정 복귀가 정말 힘들고, 오히려 아동에게 해가 된다면 당연히 새로운 원가정을 찾아주는 입양이 행해지는 것이 마땅하다. 제2의 원가정을 마련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신중하고 제대로 이뤄져야 하는 것 또한 당연하다. 여러 입양특례법 개정안들이 나왔지만 입양 절차를 까다롭게 하는 방향으로 추진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비해서 절차가 복잡해지고 장기화되는 측면은 분명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기존의 입양 절차가 민간 중심이었기 때문에 사례별 편차가 컸고 보호 장치가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입양제도 정비와 함께 원가정 보호 노력도 이뤄져야
인류사를 살펴보면 과거의 입양이란 가문을 잇기 힘들어졌을 때에만 예외적으로 행해지는 친양자 입양이 전부였다. 가족의 형태와 사회의 형태가 다른 탓도 있었지만 입양에 대한 수요 자체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던 셈이다.
입양이 급증하게 된 이유를 살펴보면 먼저 전쟁 및 대규모 재난으로 인해 요보호아동이 급증하는 상황을 들 수 있다. 아동 보호 및 복지제도가 제대로 갖춰진 상황이라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개발도상국이나 극빈국가 등에서는 자국에서 수용할 수 없기 때문에 국제입양의 형태로까지 이를 해결하기 시작한 것이다.
두 번째로 선진국을 중심으로 심화하고 있는 인구구조의 변화, 이른바 저출산·고령화 추세가 있다. 불임·난임부부가 증가하고 있지만 아동 수 자체가 줄어들고, 아동복지체계가 공고해지면서 요보호아동(입양 대상 아동) 또한 급감한 것이다. 이에 대한 수요를 해결하기 위해 선진국에서는 자연스럽게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무리 입양에 대한 수요가 폭증한다고 해도 이에 대한 사실을 대놓고 이야기하는 정부는 없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측면에서 입양을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인권유린적인 것인지를 모두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저출산을 극복하지 않는 한 해결이 쉽지 않다. 그렇다고 대놓고 “우리나라에 아이 좀 많이 보내달라”고 요청할 수도 없다. 각국 정부 관계자들이 눈에 띄지 않게 개발도상국 등 입양아동이 발생하는 나라에서 활동하는 모습이 눈에 띄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국무부 관계자가 수시로 방한해 헤이그협약 비준을 독려하면서도 한국의 입양 실천에 대해 칭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내에서 입양과 관련한 세미나 등 각종 행사가 이뤄질 때마다 여러 선진국 대사관 및 정부 관계자들이 눈에 띄는 것 또한 같은 차원이다.
결국 입양 문제라는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동복지, 취약계층 지원 등 지엽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국가체계는 물론 국민적 인식 전반이 달라져야 하는 셈이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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