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못한 원소와 조조가 황궁으로 군대를 몰아 정원 풀숲에 머리를 싸매고 숨어있던 십상시를 모두 처단하고 나서야 이들의 만행을 그칠 수 있었다. 온갖 횡포를 일삼던 지난날이 부메랑이 돼 목숨을 잃은 십상시의 역사는 ‘분수에 맞지 않는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교훈적으로 보여준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비선실세` 최순실 씨가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
다만 옛사람 10명이 하던 일을 혼자서 장기간 소화해 낸 점이라든가, 아무리 큰 범죄를 저질러도 법질서의 테두리 내에서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받는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다는 점은 다르다. 누구보다 이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는 최씨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발언권을 행사하기 위해 노력했다.
최씨는 2016년 10월 독일 현지에서 세계일보와 가진 단독인터뷰에서 “제 인생을 범죄자로 만드니까 내일이라도 죽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로 송환돼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는 자신을 ‘기획된 국정농단의 피해자’라며 특검과 검찰을 상대로 줄곧 공격성을 드러냈다.
특히 지난해 1월 서울 대치동 특검 사무실에 소환되는 과정에서 취재진을 향해 “여기는 자유민주주의 특검이 아닙니다. 박 전 대통령과 경제공동체임을 밝히라고 자백을 강요하고 있어요”라고 외친 건 유명한 일화다.
최씨는 서울남부구치소 수감 생활의 어려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재판받는 과정에서 발언권을 얻고는 “1평도 안 되는 방에서 폐쇄회로(CC)TV를 설치해 감시하고 화장실도 다 열려 있어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을 감내하며 재판에 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최씨가 어느 때보다 차분한 태도로 십상시와 다른 면모를 보인 적도 있다. 지난해 5월 박 전 대통령과 나란히 법정에 선 날이다. 그는 “40여년 지켜본 박 전 대통령을 법정에 나오게 한 제가 죄인이다. 박 전 대통령이 뇌물이나 이런 범죄를 했다고 보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박 전 대통령이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의리’를 최소한 법정에서만큼은 지킨 것이다.
최씨가 받고 있는 18개 혐의 중 강요, 특가법상 뇌물 등 대부분이 박 전 대통령과 공모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판가름났다. 최씨의 1심 판결이 박 전 대통령의 형량을 예측할 수 있는 가늠자로 평가받는 이유다. 박 전 대통령을 위해서라도 본인의 결백을 입증받으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최씨는 14일 항소장을 냈다. 국정농단 재판은 이렇게 2라운드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다.
배민영 기자 goodpoin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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