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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를 보았다. 빌리 엘리어트는 철의 여왕으로 불리던 영국 대처 수상 시절 파업철도 노동자의 아들인 한 소년의 꿈과 도전을 그린 내용이다. 음울한 현실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발레리노로 성공한 한 소년의 이야기는 여러 가지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대에서 날아다니는 그 생동감과 현실감으로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영화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빌리 엘리어트의 배경이 된 시대와 오늘의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 속의 빌리가 많은 사람의 도움과 아버지의 희생으로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었지만 오늘 우리 젊은이들의 현실은 그보다 좋아 보이지 않는다. ‘수저’로 대변되는 보이지 않는 계급과 그만큼 어려운 사회 진입의 기회는 젊은이들에게 꿈과 열정을 빼앗아가기에 충분하다.

빌리 엘리어트를 보면서 옛날의 나를 떠올렸다. 기약도 없는 습작 시절, 나는 우울함과 두려움과 무력감에 시달렸었다. 밤과 낮을 뒤바꿔 지내는 통에 사람을 만날 수도 없었고, 청춘의 연애를 할 기회조차 없었다. 밤이면 충혈된 눈으로 책을 읽거나 머릿속에 종횡무진 떠다니는 생각을 글로 풀어내느라 컴퓨터 앞에 붙박여 있었고, 아침이면 두꺼운 커튼으로 빛을 차단한 채 잠을 잤으니 어찌 그 생활이 정상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런 나를 보고 가족들은 한마디씩 했다. ‘정신 차리라’거나 ‘허황된 꿈을 좇지 말고 네 깜냥껏 살아라’거나. 나는 그럴 때마다 더 깊숙이 내 안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빌리 엘리어트에서 타인들이 빌리를 향해 던진 말이 내가 듣던 말과 겹쳤다. “빌리, 안 돼. 남자가 무슨 발레야.” “빌리, 우리 형편에 어떻게 로열 아카데미에서 공부할 수 있겠어.” 한데 빌리는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갔고, 나는 미련할 정도로 멈추지 않았다.

내가 작가로서 크게 성공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평생에 걸쳐 하고 있다는 데서 적어도 후회는 없다. 지나온 내 삶이 만족스럽든 아니든 그것은 온전히 내가 선택한 길이었으므로 원망이나 후회는 없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잘살았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삶을 더 많이 살아본 경험자로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그나마 삶의 후회를 줄이는 일이라는 것이다.

1만 시간의 법칙도 있다는데, 좌표를 정하고 미련하게 목적지를 향해 가다 보면 언젠가는 출발선에서 멀리 이동해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은 장거리 경주이다. 그러니 당장 눈앞의 결과를 가지고 일희일비하는 것은 금물이다. 움직이지 않으면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그러니 자신을 믿고 자신의 꿈을 좇다 보면 언젠가는 지금과는 다른 자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거창한 계획보다는 우선 자신이 좋아하는 일부터 찾아보자. 한번 시작하면 관성의 법칙으로 갈 수 있으니 아무쪼록 그대들에게 삶의 환희가 도래하기를.

은미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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