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4년차 회사원 김모(34·여)씨는 설을 보름여 앞둔 이달 초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명절 보이콧’을 선언했다. 남편과 지난해 추석을 지낸 후 크게 다툰 탓이다. 당시 ‘긴 연휴이니 더 있다 가라’는 시부모 권유에 남편이 처가에 갈 계획을 미룬 게 발단이었다. 이 일은 지금껏 김씨에게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 그는 “시댁에서는 싫어하시겠지만 가정의 평화를 위해 명절 때 시댁에 가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며 “대신 미리 다녀왔다”고 말했다.
흩어져 사는 가족이 오랜만에 모여 정을 나누는 명절에 대한 기대와 설렘은 여전하다. 그렇다고 모든 가족이 그런 것만은 아니다. ‘부부 불화’와 ‘고부갈등’의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아예 시댁이나 처가 방문을 꺼리는 부부가 적지 않다. 설 명절에 여성들이 겪는 고충을 담은 영화가 인기를 끄는 자체가 예사롭지 않다. ‘며느리의 의무’를 유독 강조하는 명절 문화의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귀향 기간을 최대한 줄이거나 피하려는 이들 중에는 명절마다 반복해 온 시댁 가족과의 갈등을 피하려는 여성이 적지 않다.
결혼 4년차인 황모(32)씨는 설 연휴를 활용해 해외 여행을 가기로 했다. 황씨는 “명절마다 아이를 빨리 갖지 않는다고 시부모님은 물론 몇 번 본 적 없는 시가 친척에게까지 시달렸다”며 “이번에도 상황이 다를 것 같지 않아 두 달 전에 비행기표를 예매해 놨다”고 말했다.
‘B급 며느리’를 자처한 여성들에게 직장은 오히려 탈출구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결혼 2년차 간호사 A(31)씨는 이번 설 연휴에 근무를 한다. 그는 “7∼8시간 차를 타고 가 전을 부치고 설거지를 하는 것보다 평소처럼 근무하는 게 훨씬 속이 편하다”고 털어놨다.
당직 근무를 자원한 결혼 4년차 직장인 B(30·여)씨도 “명절에는 다른 날보다 업무량도 적고, 당직근무 하루만 고생하면 시댁에 가지 않고 연휴를 즐길 수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개인의 권리와 자아, 여성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생긴 현상이라며 시댁과 만남을 피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서울가정문제상담소 김미영 소장은 “무조건 피할 것은 아니다”며 “남편의 중재가 가장 중요하고, ‘명령’과 ‘복종’의 화법을 ‘권유’와 ‘물음’으로 바꿔야 갈등을 줄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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