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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명절날 나는 엄매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
삼춘 삼춘엄매 사춘누이 사춘동생들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 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가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뽁은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비계는 모두 선득 선득하니 찬 것들이다.
(…)
밤이 깊어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구고 홍게닭이 몇 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릇목싸움 자리싸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 든다
(…)

원은희
곧 명절이 다가온다.

백석의 고향은 평북 정주이다. 시인은 유년의 기억을 불러온다. 명절날 엄마 아빠와 나, 그리고 개까지 모두 여우난골인 큰집으로 간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계신 안방엔 모처럼 명절을 맞아 설빔을 입은 삼촌, 숙모, 사촌누이, 사촌동생, 고모와 고모의 딸과 아들이 북적북적하다. 방안엔 새 옷 냄새와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 두부와 나물 냄새가 그득하다.

밤이 깊어지면 엄마들은 아랫방에서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하며 웃음꽃을 피우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윗방에서 등잔불에 심지를 여러 번 돋우고 닭이 몇 번 울 정도인 새벽녘까지 공기놀이, 주사위 굴리기, 주발 뚜껑 돌리기, 술래 놀이, 다리 세는 놀이를 하다가 졸음이 오면 서로 아랫목을 차지하겠다며 자리싸움을 하다가 잠이 든다.

기계가 인간의 삶을 대치하는 시대가 왔다 해도 유년의 정서와 음식, 추억, 함께 한 사람들의 내음을 대신할 수 없다. 올해는 우리 모두 고향의 정서를 오롯이 지켜낼 수 있는 피붙이들과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명절이 되길 빌어본다.

박미산 시인·서울디지털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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