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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타워] ‘보왕삼매론’과 21세기 베네수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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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2-12 00:14:44 수정 : 2018-02-12 00: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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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묘협 스님의 ‘보왕삼매론’ / ‘탈욕심’·‘탈미련’이 근간 / 대권욕에 국가 부도 위기 방치 / 베네수엘라 마두로 곱씹을 가르침 중국 원나라 말기부터 명나라 초기까지 살다간 묘협 스님의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살면서 10가지의 ‘바라서는 안 될 것’을 압축적으로 나열하고 있다. 수백년 전 일종의 ‘인생지침서’이자 ‘자기계발서’이다.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세상살이 어려운 일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공부하는 데 장애가 없길 바라지 마라’, ‘일을 도모함에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마라’ 등 과한 욕심이 생겨나도 모르게 ‘오버’할 조짐이 보이면,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한 번씩 되뇔 만한 글들로 채워져 있다. 보왕삼매론의 근간은 ‘탈욕심’이고 ‘탈미련’이다. 욕심만 추구하며 인간성을 잃어가는 세태에 대한 경고이자, 미련에 집착하고 손해를 안 보려는 세태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현이다.

욕심이 과하면 결과는 항상 비참했다. 특히나 정치인들의 욕심은 자신도 모른 채 스스로 제 무덤을 넓고 깊게 팠다. 33년간 예멘을 철권통치한 알리 압둘라 살레(75) 전 대통령이 최근 한때 동지였던 반군에 살해됐다. 1999년 첫 직선제 대선에서 무려 96%의 지지율로 당선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그 끝이 처참하다. 42년 동안 리비아를 통치했던 무아마르 카다피 전 국가원수도 2011년 고향에서 반군에게 붙잡혀 굴욕적으로 살해됐다. 수십 년 장기집권을 통해 축적한 막대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형성한 독재체제가 거센 국민적 반발을 산 것이다. 장기집권의 화신 로버트 무가베(90) 전 짐바브웨 대통령도 부부 세습을 노리다 집권 37년 만에 불명예스럽게 권좌에서 미끄러졌다. 이외에 지나친 욕심으로 비참한 말로를 보여준 지도자 때문에 국민이 고통받은 나라는 부지기수다.

최근 암울한 소식으로 연일 외신을 장식하는 나라는 단연 남미의 자원 부국 베네수엘라이다. 중남미 좌파 벨트의 맏형을 자처하는 이 나라는 현재 사실상 국가부도 상태다. 특단의 조치가 취해져도 해법은 없어보인다. 2000%가 넘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과 식료품 및 의약품 부족으로 죽어가는 국민 등 베네수엘라는 좀처럼 비극의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약을 못 구해 33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출신 선수의 소식은 이 나라의 처참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베네수엘라의 물가상승률이 1만3000%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한 시간마다 물가가 1.5%씩 오른다는 의미다. 국제신용평가회사 피치는 채무불이행 위기에 놓인 베네수엘라의 국가신용등급을 ‘제한적 디폴트’(RD·Restricted Default)로 강등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베네수엘라의 장기 외화표시 국가신용등급을 ‘선택적 디폴트’(SD·Selective Default)로 내렸다. 베네수엘라의 총부채는 1500억달러(약 164조원)인데 보유 외환은 고작 100억달러다.

정치·경제적 혼란을 피해 국경을 넘는 베네수엘라인이 늘어나면서, 인접 브라질 북부 지역 도시의 인구 구성에도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브라질 북부 호라이마 주의 주도인 보아 비스타 시에 체류하는 베네수엘라인이 4만명이나 되는데, 이는 시 전체 인구 33만명의 10%를 넘는 규모다.

이상혁 국제부 선임기자
문제는 상황이 전혀 개선될 조짐이 안 보이는데 이 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4월 대선을 향한 욕심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는 점이다. 반정부 시위는 연일 벌어지고 있는데도 마두로의 귀와 눈은 막혀 있다. 마두로 대통령은 자신의 당선을 위해 경제상황이 더 악화하기 전에 대선 일정을 앞당기는 등 온갖 꼼수를 쏟아내고 있다. 사법당국까지 동원, 경쟁자들의 대선 출마까지 봉쇄했다. 국제사회는 마두로 대통령과 그 측근들에게 잇따라 제재를 가하고 있지만, 돌아오는 것은 ‘콧방귀’다. 막장으로 치닫는 상황을 끝내려면 마두로 대통령의 구국의 결단과 국민 인식의 반전밖에 방법이 없어 보인다.

묘협 스님의 보왕삼매론에는 ‘이익을 추구할 때 분에 넘치는 것을 바라지 마라. 이익이 분에 넘치면 어리석은 마음이 반드시 움직이게 된다(見利不求霑分, 利霑分則癡心必動)’라는 글이 있다. 백척간두에 서있는 베네수엘라가 곱씹어야 할 가르침이다.

이상혁 국제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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