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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선] 갈 길 먼 블라인드 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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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2-09 02:30:00 수정 : 2018-02-09 00: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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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인 지난달 26일 오후 금융감독원은 예정에 없던 보도자료를 출입기자들에게 배포했다. ‘은행권 채용비리 검사 잠정 결과 및 향후 계획’이라는 제목에 22건의 은행 채용비리 정황을 담은 자료였다.

11개 국내은행을 대상으로 두 달간 힘들여 검사한 내용을 왜 하필 금요일 오후에 공개했는지는 의문이다. 주말 조간신문의 지면과 방송 뉴스는 열독률과 시청률이 평일에 비해 낮다. 그래서 금요일 보도자료 배포는 어차피 공개는 해야 하지만 크게 주목받고 싶지 않은 바람을 담은 경우가 많다. 특별한 이유 없이 거의 매번 금요일에 공개되는 정부 고위공직자 재산등록사항이 한 예다.

이날은 특히 경남 밀양의 병원 화재, 정현의 호주 오픈 4강전 등 평소보다 굵직한 뉴스도 많은 날이었다. 하지만 금감원의 보도자료는 조용히 묻히지 않았다. 오히려 주말을 지나며 파장이 커졌다.

금감원과 심상정 정의당 의원실의 추후 설명을 종합한 은행들의 채용비리 정황은 이렇다. 국민은행의 채용과정에서는 최하위권이었던 사외이사 자녀와 최고경영진의 친·인척이 최종 합격했다. 하나은행은 면접점수를 조작해 특정대학 출신 7명을 합격시켰고, 점수가 높았던 수도권 등 다른 대학 출신 지원자 7명은 불합격 처리했다. 광주은행은 인사담당 임원이 직접 자녀의 임원 면접에 면접위원으로 참여해 자녀를 고득점으로 합격시켰다. 부산은행과 대구은행은 각각 정치인 자녀와 임직원의 자녀를 채용인원을 임의로 늘리거나 면접 점수를 높게 줘 채용했다. 정도는 덜하지만 다른 은행에서도 비리 정황이 다수 발견됐다. 이들 은행 대부분은 절차에 따라 한 것일 뿐 청탁이나 특혜채용 지시는 없었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내용은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취업을 준비하던 사람들을 허탈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은행은 취업준비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곳 중 하나로 꼽힌다. 점수 조작 때문에 2명이 불합격한 것으로 밝혀진 건국대의 학보는 ‘건국대라 죄송합니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이런 현실을 자조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몇 년 전부터 은행들은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하고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블라인드 채용은 출신 학교와 지역 등의 배경은 가리고, 능력 중심으로 평가해 공정하게 채용하자는 취지의 제도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취업준비생 입장에서는 자신이 어떤 기준에서 떨어졌는지도 알 수 없는 ‘깜깜이 채용’이 된 것이다.

백소용 경제부 차장
좋은 시스템을 도입해도 마인드가 바뀌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채용비리 문제 제기에 대해 “민간기업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은행의 항변만 봐도 그렇다. 애초에 공정한 채용제도 도입은 홍보 수단일 뿐이었던 것인가. 기업의 채용기준 자율성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다만 처음부터 회사가 원하는 인재의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고 그에 맞춰 채용한 것이 아니라 공개한 기준을 무시하거나 바꾸고 최종 결과를 조정한 것이 문제다.

금융당국은 채용비리 점검을 보험, 증권, 카드,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으로 확대할 전망이다. 특정 회사의 부도덕성을 부각하는 마녀사냥보다는 비상식적으로 이뤄졌던 관행을 돌아보고 금융권의 신뢰도 강화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백소용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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