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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들, 아끼던 물건에 마음을 새기다

입력 : 2018-02-08 20:56:01 수정 : 2018-02-08 21:5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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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번역원 ‘명, 사물에 새긴…’ 펴내 / ‘안일은 곤경을, 사념은 재앙의 원천’ / 실학자 다산 정약용, 게으른 삶 경계 / 벼루·붓 등 일상생활속의 물건 통해 / 삶의 본질을 깨닫고 자신을 돌아봐 “안일이란 곤경을 맞닥뜨리는 근본이고/ 사념이란 재앙을 불러들이는 원천이라/ 꿈속에서 옛 성철을 보았으니/ 네 정신 어둡지 않음을 알겠구나.”(정약용 ‘다산시문집’)

게으름은 언제나 인류의 경계 대상이었다. 유가의 학자도 불가의 승려도 곡식을 가꾸는 농사꾼도 늘 잠을 경계했다. 자연광에 의존해 살아야 했던 옛날에는 아침잠 때문에 때를 놓치면 하루 일과가 흐트러졌을 것이다. 아침형 인간이 되어야만 하루 할 일을 마칠 수 있는 여건이었다.

다산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마저 “내가 굶어 죽은 사람들을 보니 게으른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하늘은 게으른 사람을 미워해서 벌을 내린다”며 부지런함을 강조했다.
문화재청 제공
조선 후기의 실학자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에게도 부지런함은 중요한 덕목이었다.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마저 “내가 굶어 죽은 사람들을 보니 게으른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하늘은 게으른 사람을 미워해서 벌을 내린다”며 부지런함을 강조했다.

다산시문집에 수록된 ‘침명’(枕銘)을 보면, 정약용은 꿈속에서 성철을 만났다. 그는 잠에서 깨어 베개를 쓰다듬으며 꿈을 되새겼다. 베개 하나도 허투루 바라보지 않았던 이의 치열한 삶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고전번역원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선비들의 명(銘)을 모은 책 ‘명(銘), 사물에 새긴 선비의 마음’을 펴냈다. ‘명’은 본래 ‘새기다’는 뜻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물건에 대한 내력과 단상, 물건을 통해 얻은 각성을 기록한 글로 의미가 확대됐다. 온갖 물건이 쏟아져 나오는 풍요와 소비의 시대에 저자는 옛 선비들이 남긴 명을 곱씹으며 주변의 것들을 천천히 돌아보고 음미할 것을 권유한다.

다산의 하피첩.
문화재청 제공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1168∼1241)에게는 유독 애착이 가는 벼루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시문집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수록된 ‘소연명’(小硯銘)에서 “벼루야, 나는 너랑 함께 돌아갈 것이니/ 죽는 것도 사는 것도 함께하자꾸나”라고 고백했다. 벼루는 물이 고이는 웅덩이가 비록 한 치(3㎝)에 불과했지만, 이규보는 “너의 작음은 수치로 여길 것이 아니다”라며 “나의 무궁한 생각을 쏟아내게 한다”고 예찬했다.

18세기 남인의 영수였던 채제공(1720∼1799)은 ‘붓’의 양면성에 주목했다. 그는 붓에 대해 “너를 잘 사용하면/ 천인성명과 같은 심원한 이치/ 모두 묘사할 수 있지”라면서도 “너를 잘 사용하지 못하면/ 충의와 사악, 흑과 백 같은 양극단/ 모두 뒤바뀌고도 남지”라고 적었다. 그는 모든 분쟁이 붓 끝에서 시작됐다고 봤다. 붓으로 쓴 문서 때문에 붕당이 갈리고, 선과 악에 대한 판단이 순식간에 뒤집히는 모습을 보면서 염증을 느꼈던 듯싶다.

책은 이 밖에도 선비들이 사물의 특성을 간결하게 표현하거나 사물을 향한 애틋함과 고마움을 표시한 글들을 실었다. 한국고전번역원 전문위원으로 일했던 임자헌씨가 글을 썼고, 정민주씨가 그림을 그렸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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