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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끝 눈이 생긴 소년… 명랑·발칙한 성장 판타지

입력 : 2018-02-08 20:54:43 수정 : 2018-02-08 20:5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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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융 장편소설 ‘손가락이 간질간질’
열아홉 살 고교 야구선수 ‘유아이’는 결승전 9회말 투아웃 마지막 투구 순간, 손가락이 간질간질해서 제대로 공을 던질 수가 없다. 어렵사리 던진 볼에 타자가 어이없이 범타를 치는 바람에 간신히 우승을 했지만 아이는 결국 손가락 때문에 야구를 그만두고 만다. 어지럽고 가려워서 힘들었는데 가운뎃손가락 끝에 콩알만 한 눈이 생겨난 것이다. 아이는 아픔을 극복해가며 어렵게 연습하여 ‘손가락눈’을 깜박거리는 경지까지 간다. 슬로베니아에서 류블랴나대학 아시아학과 교수로 살고 있는 소설가 강병융(43)의 신작 장편 ‘손가락이 간질간질’(한겨레출판·사진) 이야기다.

“제가 원래 긍정적인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생각해버렸어요. 그래도 눈이 없어져버린 것보다는 하나 더 생긴 것이 훨씬 낫다고요. 등짝, 옆구리, 다리에 생긴 것보다 훨씬 좋잖아요. 똥구멍, 귓구멍, 콧구멍은 상상만 해도 불편하네요. 그런 데가 아니라 기왕이면 손가락 끝에 생겨서 얼마나 다행이냐는 생각도 들었어요. 사용하기도, 감추기도 편하잖아요. 부정적인 생각들은 지우고 되도록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다루기 편한 곳에 적당한 크기의 눈이 새로 생겼구나.”

강병융
아이는 짐짓 긍정적으로 손가락눈을 받아들이기로 했지만 그 특별함을 밝히기까지는 마음고생이 심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자연스럽게 사랑할 수 있었던 ‘백이’와 제대로 만날 수 없는 처지에서 ‘아이 커밍아웃’ 이후 만난 소녀와 백이를 묶고 있는 설명할 수 없는 끈을 다시 느끼게 되는 아이. 이 아이의 브라더와 같이 사는 시스터, 저질 농담을 즐기는 야구감독, 아이의 또 다른 친구 WILL 등이 이야기를 채워나간다.

아이의 특별한 성장소설처럼 읽히는 이야기의 틈틈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허전함을 느끼네./ 내 안에 숨겨둔 마음을 너는 알고 있을까?” 같은 ‘언니네 이발관’의 노래가 끼어들어 어둡지 않은 상큼한 분위기를 끌어낸다. 보여줄 수 없는, 상처라고 여겼던 ‘눈’들이 알고 보니 아이뿐 아니라 백이나 WILL, 시스터나 감독과 소녀에게도 있었다. 등짝에, 다리에, 옆구리에, 귓속에. 백이는 등짝에 길고 늘씬하게 쭉 뻗은 아름다운 흉터 같은 눈을 보여주며 속삭인다. ‘맞지? 너랑 온전히 같은 사람.’ 마지막에 돌아보게 되는 아이의 성별도 타성 같은 편견을 일깨운다. 기발한 착상으로 모두가 안고 있는 상처 같은 ‘특별함’을 명랑하게 사유케 하는 소설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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