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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역사 속 스포츠] 2월 6일 '맨유 뮌헨 참사'· 2월 7일 롯데 임수혁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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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2-04 07:37:00      수정 : 2018-02-02 15:30:50
정확히 60년 전이 1958년 2월 6일 뮌헨 리엠공항 추락현장, 쏟아지는 눈발을 무릅쓰고 무리한 이륙을 시도하다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젊은 선수 8명이 희생당했다.

[이번 주 역사 속 스포츠] 1958년 2월 6일 맨유 선수 8명 '뮌헨 리엠공항'추락사, 2010년 2월 7일 10년 투병 롯데 임수혁 사망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최악의 참사, 주전 8명 사망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메이저타이틀을 무려 22번이나 들어 올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뿐 아니라 전세계 축구팀을 대표하는 명문이다. 

1878년 창단된 맨유 역사에서 가장 아픈 순간은 1958년 2월 6일 뮌헨 참사이다.

당시 평균 연령 24세의 젊은 맨유는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유럽피언컵 8강 원정 2차전에서 홈팀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와 3-3으로 비겨 2년 연속 4강행을 확정 지은 뒤 맨체스터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탔다.

맨유 선수단을 태운 비행기는 급유를 위해 중간 기착지인 독일 뮌헨-리엠 공항에 착륙했다.

급유를 마친 비행기는 눈이 내려 미끄러운 활주로를 이륙을 두차례나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조종사는 포기치 않고 세 번째 시도에 나섰으나 그만 비행기가 활주로에서 미끄러지며 인근 민가에 추락했다. 그 때가 2월 6일 3시 4분이었다.

이 사고로 44명의 탑승객 중 21명이 현장에서, 2명은 치료 중 숨지는 등 모두 23명이 사망했다. 

유고 원정길에 나선 1958년 2월 당시 맨유 선수단. 평균 연령 24세의 젊은 팀으로 유럽을 지배하는 팀으로 떠 올랐지만 뮌헨 참사로 고통과 팀 재건에 한동안 고통을 겪었다.

사망자 중 8명은 맨유 주축선수들, 3명은 구단 스태프, 나머지 12명은 기자, 기장, 승무원, 여행사 직원 등이었다.

사망자는 풀백 제프 벤트(25), 풀백 로저 번(28), 윙 에디 콜맨(21), MF 마크 존슨(25), 윙 데이비드 퍼그(22), 스트라이커 토미 테일러(26), 쉐도우 스트라이커 빌리 윌렌(22), 수비형 MF 이자 게임 메이커 던컨 에드워즈(21)였다.

하나 하나 잉글랜드 대표급 선수들이었다.

특히 에드워즈는 반세기에 한명 탄생할까 말까라는 찬사를 받았던 특급 기대주였다.

뮌헨 참사로 21살의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떠난 맨유의 젊은 태양 에드워즈를 기리기 위해 맨유는 올드 트레포드 홈구장에 그의 동상을 세웠다. 지금도 수많은 팬들이 꽃다발을 받치며 그를 기리고 있다.

에드워즈는 1955년 4월 2일 만 18살 138일의 나이에 잉글랜드 대표로 선발 돼 최연소 대표기록을 새로 수립했다. 이 기록은 반세기 뒤 마이클 오언이 깨기까지 그의 몫으로 남을 만큼 에드워즈는 빛났던 보석이었다.

팀의 또다른 축으로 맨유 전설이자 1966런던월드컵 우승 주역 보비 찰튼은 부상으로 유고 원정에서 빠져 화를 면했다.

맨유가 팀을 추스리는데 2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지금도  매년 2월 6일이면 맨유와 팬들은 뮌헨참사를 추모하는 추도식을 열곤한다.

맨유 홈구장 올드 트래포드에는 뮌헨 참사와 희생자를 잊지 않겠다는 뜻에서 3시 4분에 멈춘 시계가 걸려있다.

▲ 경기 중 쓰러져 의식불명 10년 임수혁, 2010년 2월 7일 숨져…심폐소생술만 했어도 

임수혁(1969년 6월 17일~2010년 2월 7일)은 프로야구계의 아픈 이름이다.

2000년 4월18일 LG와의 잠실 원정경기 2회초 유격수 실책으로 출루한 임수혁은 후속타자 안타로 2루까지 진루한 뒤 갑자기 쓰러졌다.

진단결과 심장 부정맥 발작으로 뇌에 혈액 공급이 제대로 안 된 때문으로 밝혀졌다.

심장 마사지 등 심폐소생술(CPR)등 응급처치만 했어도 의식을 찾을 수 있었지만 당시만 해도 심정지에 따른 구급법을 알고 있었던 사람이 극히 적어 그저 옷 단추를 풀어 편안하게 한 뒤 들 것으로 덕아웃까지 옮겼고 수십분이 지난 뒤 병원으로 후송했을 뿐이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땐 이미 뇌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다. 

프로야구 2000시즌 초반이던 4월 18일 잠실 LG전 2회초 2루로 뛰던 임수혁이 갑자기 쓰러지자 다급한 관계자가 허리띠를 풀고 들 것을 요청하고 있다. 심폐소생술만 알았더라면, 현장 구급차와 의료요원이 있었더라면 의식을 회복시킬 수 있었지만 이후 임수혁은 9년10개월여를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있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후 임수혁은 9년 10개월여 병상에 누워 있다가 2010년 2월 7일 한림대학교 강동성심 병원에서 41살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많은 야구계 동료들과 스포츠인들이 임수혁 돕기 운동을 펼쳤으며 임수혁 사고를 계기로 모든 구장마다 구급차와 의료요원이 배치됐다.

서울고-고려대를 나온 임수혁은 1994년 롯데 입단, 쓰러질 때까지 7시즌 동안 488경기에 나와 통산 타율 0.266, 345안타, 47홈런, 257타점을 올렸던 정상급 포수였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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