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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원칼럼] “병졸이 없는데 어찌 싸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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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2-01 21:39:53 수정 : 2018-02-01 21:3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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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에 누더기 되는 국가안보
“병력 12만 감축·복무 3개월 단축”
약골 군대 만들기로 작정했나
그것을 국방개혁이라고 하나
선조 2년, 1569년 69세의 노신 퇴계 이황은 선조에게 마지막 진언을 했다. “태평이 끝까지 가면 반드시 난리가 일어날 징조가 나타난다. 오늘 전쟁이 없다 하여 마음을 놓으면 배는 홀연 풍파를 만나 뒤집히니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선조 7년, 1574년 율곡 이이는 상소문 ‘만언봉사(萬言封事)’를 올렸다. “흰 무지개가 해를 꿰는 것은 전란 징조다. 군정은 무너지고 사방 국경은 무방비인데, 급박한 일을 당하면 장량, 진평, 오기, 한신이라도 거느릴 병졸이 없으니 어찌 홀로 싸우겠는가.”

강호원 논설위원
선조는 두 대유(大儒)의 말을 새겨들었을까. 임진왜란은 퇴계의 진언 23년 뒤, 율곡의 상소 18년 뒤 터졌다. 정묘호란은 임진왜란 29년 뒤, 병자호란은 그로부터 9년 뒤 일어났다.

서애 유성룡이 ‘징비록’에 남긴 글. “정월 24일 적군은 서울에 남은 백성을 모두 죽이고, 집을 모두 불살랐다.” 왜란이 터진 이듬해인 1593년 평양에서 패배해 한양으로 돌아온 왜군이 저지른 살육전이다. 6년간의 왜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도륙을 당했을까. 조선군·명군 전사자 10만명. 죽어간 백성이 얼마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수십만으로 헤아릴까, 수백만으로 헤아릴까. 병자호란 때의 조선군 전사자 1만명. 역시 추정치다. 청군에 포로로 끌려간 사람은 수십만에 이른다. 최명길은 50만명, 정약용은 60만명이 넘는다고 했다.

도망한 선조와 인조. 허겁지겁 달아난 의주와 남한산성에서 눈물을 뿌렸다고? 가소로운 일이다. 버려진 백성은 파천 행렬에 침을 뱉었다. 두 왕은 역사의 죄인이다. 지금도 그 평가는 달라질 수 없다.

6·25전쟁. 희생자는 더 많다. 한국군 전사자 14만9005명, 실종자 13만2256명, 부상자 71만783명. 1사단 1만96명, 3사단 1만3981명, 5사단 1만456명…. 전체 사상자·실종자는 332만명에 이른다.

이들 전쟁사를 관통하는 화두는 무엇일까. 무비유환(無備有患). 나라 지킬 생각을 하지 않으면 백성은 어육으로 변한다.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국군 병력과 사병 복무기간을 줄이겠다고 한다. 상비 병력은 2022년까지 61만8000명에서 50만명으로, 복무기간은 21개월에서 18개월로. 육군은 48만명에서 36만명으로 줄어든다. 휴전선을 지키는 사단들이 뭉텅이로 사라질 판이다. 이런 계획에 ‘국방개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왜 한사코 병력을 줄이려 하는 걸까. 저출산에 입대할 병력 자원이 감소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복무기간을 늘려야 할 게 아닌가. 늘려도 모자랄 판에 단축하겠다니, “젊은이가 없다”는 말이 더욱 구차스럽다.

전력 손실을 첨단무기로 메우면 된다고 한다. 병력을 줄이지 않고 첨단무기로 무장할 생각은 왜 못하는가. 그러면 ‘강한 국군’이 만들어지지 않겠는가. 기술력은 가졌는가. 반도체와 스마트폰이 세계시장을 석권하니 군사기술도 최첨단을 달린다고 착각하는 걸까. 사드 같은 방어체계는 물론이요, 첨단 공격용 헬기 하나 우리 손으로 만들지 못한다. 군을 부사관 중심체제로 바꾼다고? 돈은 있는가. 설혹 부사관을 늘린다 해도 열 중 일곱은 ‘18개월짜리 사병’이다. 약골 병사가 넘친다. 북한 상비군은 120만명. 1 대 2.4로 싸워야 한다. 이길 수 없다.

‘약골 군대’를 만드는 것을 국방개혁이라고 하는가.

갑작스러운 통일을 맞는다면? 점령지를 통제하자면 인구 20명당 1명의 군사가 필요하다고 한다. 미 랜드연구소가 “한반도 유사시 150만명의 지상군이 필요하다”고 한 것은 이 때문이다. 통일을 준비하는 건가, 포기하는 건가.

한반도 정세, 사면초가(四面楚歌) 형국이다. 패권싸움이 난무한다. 북한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중국과 일본은 무슨 생각을 할까. 과거 우리 땅을 짓밟은 ‘한당(漢唐) 패권주의’를 되살리고, 제2의 한일병탄을 꿈꾸고 있다. 그러기에 누구도 군사력을 줄이겠다고 하지 않는다. 우리만 줄인다.

평화를 외치면 약골 군대를 만들어야 하나. 강군(强軍)을 만들어야 평화를 지킬 수 있는 것 아닌가. “거느릴 병졸이 없는데 어찌 싸우겠는가.” 그 아픈 역사는 보이지 않는가.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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