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법으로만 배운 영어이니 외국인을 만나면 울렁증에 시달릴 수밖에.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주인공 옥분 할머니만큼이야 하겠느냐만 그 답답함이란. 써먹을 수 있는 영어가 아니라 죽은 영어를 가르친 학교 교육 탓이다. “하와유?” 하면 “파인 땡큐 앤드 유?”가 스프링처럼 튀어나오게끔 교육받았으니. 그저 “굿”, “그레잇” 하면 될걸. 미국 마트에서 계산하고 나올 때 “플라스틱 오어 페이퍼?”라는 말을 들으면 처음에 당혹스럽다. 웬 플라스틱? 비닐봉지가 ‘플라스틱 백’인 걸 모르니.
부모라면 누구나 자기 자녀만큼은 영어 벽에 눌려 살지 않길 바란다. 그 욕심의 끝은 없다. 서울 강남지역 초·중·고교에서는 미국에서 생활한 경험이 별난 자랑거리가 아니다.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 그 앞뒤 체험학습 기간을 붙여 가는 단기 미국 연수프로그램은 대기 순번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인기다. 영어 노출 연령이 유아기로 낮아진 지 오래됐다. 요즘 젊은 강남 부모들 사이에서는 원어민 수준으로 영어를 구사하는 베이비시터 구하기 경쟁이 벌어졌다고 한다.
거꾸로 정부는 조기 영어교육이 문제라며 규제하려고만 든다. 오는 3월부터 초등학교 1·2학년 방과후 영어교육이 전면 금지된다. 유치원·어린이집의 방과후 영어교육까지 금지하려다가 여론 역풍에 잠시 물러선 상태다. 정부가 제아무리 말려도 자녀 영어교육을 시킬 부모는 어떤 식으로든 다 한다. 오히려 정규 영어교육을 확 바꿀 시점이다. 정규 교육과정만 받으면 테니스 스타 정현처럼 외국인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영어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끔 말이다.
박희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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