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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청심청담] 哭聲 이어지는 노브레인의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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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1-29 23:27:39 수정 : 2018-01-29 23:2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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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없는 외침·당쟁 시달리고도 / 코드인사·패거리정치 못 벗어나 / 법이 흔들리고 무책임의 일상화 / 한국 현주소는 대형 사고로 점철 노브레인(NO-BRAIN)이라는 한국 록그룹이 있다. 처음에 그 이름을 들었을 때 참 재미있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뇌가 없다’고 자처하는 유머와 재치, 펀(fun)하는 힘은 지식과 스펙을 과시하면서 ‘머리 좋은’ 체하는 사람들과는 다른 당당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노브레인은 인기 절찬리에 방송 중인 음악프로 ‘불후의 명곡’ 등 각종 대중음악 오락 프로그램에서 인기 있는 그룹이다.

사실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출 때 생각을 골똘히 할 수도 없지만 만약 공연자가 그렇게 하면 가무는 망치게 되어있다. ‘생각 반, 소리 반(공기 반)’이 적당하다. 노래와 춤은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자신의 신체(몸과 마음)가 요구하는 대로 맡기면 된다. 신체적 표현인 모든 예술의 성패는 욕심을 내려놓고 신체의 자연스러움을 최대한 발휘하는 게 비결이다.

예부터 가무의 민족으로 통해온 한민족은 예술뿐만 아니라 스포츠 등 신체를 사용하는 신체놀음에 남다른 능력을 보여 왔다. 최근 방탄소년단이 AMA(아메리칸 뮤직어워드) 무대에 한국인 최초로 초대되는 영광을 안았는데 이는 한국 K팝의 성과를 인정한 것이다. 한국 테니스의 상징인 정현 선수의 호주오픈 테니스대회 4강 신화를 들으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노브레인’이라는 말은 반대로 ‘신체적 존재’로서의 한국인을 떠올리게 했다.

여자양궁의 세계제패를 선두로 LPGA(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 투어를 휩쓸고 있는 한국 여자골퍼들의 활약,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 우승, 쇼트트랙에서의 계속된 금 사냥, 월드컵에서 4강을 이룬 남자축구 등을 들 수 있다. 대중음악과 스포츠와 대중예술 분야는 감각에 의존하는 까닭에 어쩌면 노브레인이 유리할 수도 있다. 뇌(생각)가 없어야 신바람이 나고 잘 놀 수 있다. 신체놀이에 탁월성을 보이는 한민족이 신바람이라곤 없는 지금 상태로 선진국 반열에 오를 수 있을까.

불행하게도 노브레인은 역사와 정치에서는 부정적이다. 노브레인은 합리성이 없다는 뜻일 뿐만 아니라 불법과 탈법과 위법과 부정부패로 연결되기 쉬운 약점이 있기 때문이다. 노브레인의 한국은 당파싸움과 동족상잔, 그리고 수없는 외침을 받았다. 그 사이 신(神)바람은 한(恨)이 되고 말았다. 한국인의 마음 저변에는 모두 한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니 ‘한(恨)의 하나님’이 생길 수밖에 없다. 세계사적으로 볼 때 노브레인의 나라는 모두 지구에서 사라지고 없다.

돌이켜보면 동아시아 삼국 중에서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한 나라는 한국뿐이다. 자신의 철학이 없는 나라도 한국뿐이다. 최근 한국의 정치판을 보면 노브레인이 떠올려지고 다시 남부여대하고 피란 행렬을 이루었던 ‘저주의 그림자’를 회상하게 된다. 국민 각자가 스스로 국가의 주인이라는 생각은 없고, 저마다 족벌주의에 빠져있다. 전 정권이든 현 정권이든 코드인사·패거리 정치는 여전하다. 패거리 정치는 종국에는 국가와 국민을 배신하고 민생을 도탄에 빠뜨릴 것임이 분명하다.

법을 정서에 맡겨버리고 무책임이 일상화되어있는 한국의 현주소는 정권을 집어삼킨 세월호참사에 이어 제천스포츠센터 화재사고, 밀양 세종병원 화재사고 등 대형 인명피해 사고로 점철되어있다. 이들은 모두 노브레인의 한국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는 추악한 모습들이다.

세계 각국 선수들을 초청해서 벌이는 올림픽 축제를 열흘 앞두고도 집안싸움을 하고 있으니 싸우고 있는 집에 손님으로 오는 외국 선수단들도 불편할 것이다. 국내에서도 올림픽 열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각 언론매체에서는 올림픽 광고로 분위기를 업그레이드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싸늘한 잔칫집’이 될까 걱정이다.

평창동계올림픽의 남북 단일팀 구성, 한반도기 입장과 태극기 게양 등을 두고도 여야가 대립하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평화를 코스프레(코스튬플레이)하는 올림픽이니, 평양올림픽이니 평창올림픽을 희화화하는 설전도 난무하고 있다. 이러한 댓글 홍수 속에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양분되어있는가를 실감하게 될 따름이다. 이것이 통일을 지향하는 남남갈등의 모습이다.


박정진 평화연구소장·문화평론가
노브레인은 오늘의 한국 문화상황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창조적인 문화예술·철학 분야에서 한국인의 창조력은 경제적 위치에 상응하지 못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에서 낙오하지 않고 ‘창조성장’을 이끌어가야 한다고 하지만 사회 전체적인 창조적 동력에 대해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특정 이데올로기나 기존의 지식에 얽매이거나 남의 브레인에 의지하면 결국 한국문화는 후퇴하고 말 것이다.

후기 근대의 세계 각국은 무엇보다도 여성성을 새로운 덕목으로 삼으면서 미래를 개척하고 있다. 그런데 여성성에는 ‘좋은 여성성’과 ‘나쁜 여성성’이 있다. 좋은 여성성이 ‘이타(利他)주의와 평화주의’라면 나쁜 여성성은 바로 ‘노브레인(비합리성)과 질투’이다. 시대정신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은 대체로 ‘나쁜 여성성’에 휘말리고 있다. 위선적 선비주의와 분노의 민중주의와 나쁜 여성성의 연쇄가 나라를 망하게 했던 구한말을 떠올리게 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한다. 나는 악화인가, 양화인가 반성해볼 일이다. 대형사고로 인한 곡성이 그칠 날은 언제인가.

박정진 평화연구소장·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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