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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연국칼럼] 사자의 몸이 썩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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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1-25 21:05:33 수정 : 2018-01-25 21: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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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인조는 ‘反正 개혁’ 추진하다
나라 혼란 키웠다고 훗날 자책
적폐청산이 정치적 금도 넘으면
안보 불안, 국론 분열 부추길 것
끝내 우려했던 사태가 터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측근들에 대한 사정수사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으로 규정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분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노무현 수사가 참여정부에 대한 적대감에서 시작된 정치보복”이라고 비난했던 문 대통령은 보복 논란을 부르는 당사자로 입장이 바뀌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돌고 돈다.

신구 정권 정면충돌의 다음 수순은 짐작이 어렵지 않다. 전 대통령에 이어 전전 대통령이 포토라인에 서고 국론은 완전히 찢어질 것이다. 자칫 생존한 전직 대통령 4명 모두 전과자로 추락하는 부끄러운 역사를 후대에 물려줄 판이다. 대통령 스스로 6·25전쟁 이후 최대 안보위기라는 상황에서 바람직한 현상으로 보기 어렵다. 안보의 가장 큰 위협은 내부 분열이다.

배연국 논설실장
불교 ‘법구경’에 사자신중충(獅子身中蟲)이라는 말이 있다. 사자의 몸에서 생겨난 벌레가 사자의 살을 파먹어간다는 뜻이다. ‘백수의 제왕‘인 사자도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생겨난 작은 적에 의해 무너진다는 경구다.

국가 역시 마찬가지다. 망국에는 외부 공격보다 내부 갈등이 더 큰 화근으로 작용한다. 강력한 고구려는 망하기 전 내분으로 나라가 쪼개졌다. 국가 권력을 장악한 연개소문이 죽자 세 아들이 군권을 차지하려고 서로 싸웠다. 수나라 백만 대군을 물리쳤던 강대국은 적전분열 끝에 나당 연합군에 무릎을 꿇었다. 후삼국에서 가장 강성했던 견훤의 후백제가 후발 주자 고려에 망한 것 역시 부자간의 권력 다툼이 원인이었다.

오늘 대한민국이라고 다를 것인가. 문재인정부가 적폐청산의 깃발을 내건 이래 국민 사이의 반목과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우리와는 달리 북한은 빈곤에 허덕이지만 국론만큼은 하나로 뭉쳐 있다. 그들의 손에는 핵과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까지 쥐어져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먼저 내부 단합을 도모하는 것이 지도자의 책무다. 전전 대통령과 험구를 주고받는 현직 대통령의 모습은 보기에 민망하다. 물론 곪은 상처는 덧나기 전에 고쳐야 한다. 그러나 수술에도 금도가 있는 법. 명심할 점은 과거 정권의 책임자들을 단죄할지라도 그들은 우리가 제거할 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대한민국호에 함께 타고 있는 승객이자, 종국에는 나라를 위해 힘을 합쳐야 할 다같은 국민이다. 서로 총부리를 맞댄 북한과 테이블에 마주 앉으면서 우리 내부의 신구 정권끼리 대화하지 못할 이유가 있는가.

조선의 인조는 청나라에 항복한 뒤 맹자의 말을 인용해 “나라는 반드시 자신이 해친 뒤에야 남이 해치는 법”이라고 탄식했다. 사실 광해군의 패륜과 실정을 명분으로 반정에 성공한 인조는 각종 개혁을 추진했다. 외교도 광해군의 중립정책을 지양하고 반금친명으로 전환했다. 어찌 보면 현 정부의 적폐청산과 외교정책 변화와 유사한 측면이 없지 않다. 이를 두고 훗날 인조는 “합당한 정치를 펴려다가 도리어 혼란으로 몰고 갔으니 대군이 몰려오기도 전에 나라는 이미 병들었다”고 땅을 쳤다. 역사에 천추의 한을 남기지 않으려면 현 정부가 깊이 유념할 대목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2017년 5월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되는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그간 재임 261일은 “저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 한분 한분도 저의 국민”이라던 약속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통령에겐 아직 1565일의 시간이 남았다. ‘약속을 지키는 솔직한 대통령’의 다짐이 빈말이 되게 해선 안 된다.

올해는 정부 수립 70년을 맞는 뜻 깊은 해이다. 평창 동계올릭픽 개최로 하계와 동계를 모두 여는 9번째 나라로 등극하고,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에 진입한다. 1960년 1인당 소득은 북한(135달러)의 절반 수준인 76달러였다. 오줌을 수거해 수출품 원료로 사용했던 가난한 나라가 최첨단 반도체 1위 국가로 올라선 것은 기적이다. 그런 기적의 나라에서 우리끼리 드잡이하느라 국력을 탕진하고 있다. 정상이 아니다. 대한민국이란 ‘사자’가 국론분열의 ‘벌레’ 따위에 무너지는 일은 결단코 없어야 한다.

배연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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