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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눈] 조물주도 두 손 들 ‘축사 적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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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1-23 20:38:05 수정 : 2018-01-23 20:3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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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축사에까지 복잡한 잣대
상당수 축산농가 생존권 위협
가축분뇨법 유예기간 연장해
무허가 축사들 연착륙시켜야
상당수 축산농가가 생존권을 잃을 위기에 놓여 있다. 무허가 축사에 사용중지나 폐쇄명령을 내릴 수 있는 가축분뇨법이 오는 3월25일부터 적용된다. 3년간 유예를 거쳤으나 무허가 축사 적법화율은 지난해 말 기준 13.4%(8066호)에 불과하다. 무허가 축사 형태는 입지제한지역에 위치하거나, 측량 잘못으로 일부 축사가 국유지를 침범한 경우 등 다양하다. 가축분뇨 처리시설을 갖추지 않아서 무허가 축사가 된 게 아니다. 무허가 축사를 포함한 모든 축사는 가축분뇨법에 따라 적정한 처리를 한다. 가축분뇨 중 90%가량은 자원화(퇴비·액비)하고, 나머지는 정화 처리한다. 가축분뇨를 무단 방류하면 처벌을 받는다.

무허가 축사 적법화가 더딘 것은 정부 책임이 크다. 정부는 2014년 3월24일 가축분뇨법을 개정했다. 2015년 3월24일 시행된 이 법은 ‘신규’로 축산을 하려는 농가에 축사의 신고·허가를 받도록 규정했다. 다만 1단계로 대농가는 2018년 3월24일까지, 2단계로 중농가는 2019년 3월24일까지, 3단계로 소농가는 2024년 3월24일까지 적법화를 밟도록 유예했다. 여기까지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적법화를 진행하려면 무허가 축사 신고·허가 행정절차가 필요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법 시행 후 7개월여 동안 이를 마련하지 않았다. 정부는 2015년 11월11일에야 ‘무허가 축사 개선 세부실시요령’을 발표했다. 그리고는 다시 한 달도 안 된 2015년 12월1일 느닷없이 ‘기존’ 축산농가까지 축사사용허가를 받도록 했다. 졸속 추진이 아닐 수 없다. 이해당사자인 축산농가의 의견을 수렴하는 기회는 턱없이 부족했다. 대다수 농가가 이 법의 적용대상인 줄 몰랐다.

박찬준 사회2부장
정부는 법 개정에 앞서 실태조사도 하지 않았다. 2016년 10월 부랴부랴 조사에 나선 정부는 무허가 축사 농가가 6만190호라고 발표했다. 이마저도 지난해 6월 4만77호라고 수정한 데 이어 5개월 뒤인 지난해 11월에는 4만5303호라고 다시 바꿨다. 농촌 현장에서는 이 수치가 엉터리라고 아우성이다. 무허가 축사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고서 어떻게 관련 법을 개정했고, 사후관리를 한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축산농가들은 적법화하는 데 적게는 1000만원, 많게는 3000만원을 들인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시청이나 군청의 축산, 환경, 건축 등 여러 담당 부서를 찾아다녀야 한다. 축사의 입지 금지나 건축 제한 등과 관련한 법률이 무려 26개나 되기 때문이다. 축산분뇨가 방사성 물질이라도 되듯 정부는 축산에 까다롭고 복잡한 잣대를 들이댄다. 특히 가축분뇨법은 다른 법률에 저촉되면 무허가 축사를 적법화할 수 없도록 규정한다. ‘초슈퍼 법’이다. 축산농가들 사이에서는 “목장주가 조물주라도 적법화에는 두 손을 들 것”이라는 자조 섞인 농담이 나돌 정도다.

지방자치단체는 민원을 핑계로 적법화에 소극적이다. 정부가 지난해 11월에야 전국 지자체장에게 협조 서신을 발송했지만,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는 게 축산인들의 전언이다. 축산농가의 발목을 잡은 당사자는 정부다. 이제라도 적법화 유예기간을 연장한 뒤 무허가 축사 실태와 원인을 현장 조사해 적법화를 연착륙시키는 게 옳다.

경기도 양주시에서 30년 넘게 돼지를 키워온 한 농가는 축사가 무허가라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적법화할 수 없다. 몇 년 전 인근에 대학이 들어서면서 졸지에 학교정화구역에 포함돼서다. 이렇게 입지제한지역 지정 이전부터 축산을 해온 ‘선량한 축사’는 구제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가축분뇨의 적정처리에 규제방향을 맞추고, 최소한의 행정절차로 적법화에 드는 시간과 비용 부담도 덜어주자. GPS 측량이 도입되면서 축사 일부가 타인 토지에 있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난 축사의 경우 적법화할 길을 터줘야 한다. “정부가 가축분뇨를 잘 처리해서 환경오염을 막자는 것이 아니라 축사를 없애서 환경을 깨끗이 하려는 것 같다.” 축산농가의 이런 의심이 사실이라고 믿고 싶지 않다. 문재인정부의 ‘규제 샌드박스’가 불합리한 무허가 축사 적법화·현대화에도 도입되길 기대한다.

박찬준 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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