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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초대석] “점진적 임금인상으로 수요 창출 … 경제 살리고 기업엔 활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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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1-23 19:03:49 수정 : 2018-01-24 19: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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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준 와세다대 교수 / 中企 살려야 실업 해결 / 대기업 대비 中企 임금 / 일본 80% vs 한국 60% / 정부 정책만으론 한계 / ‘동반 성장’ 마인드 필요 / 고용 불안 땐 소비 위축 / →불황→저출산 악순환 / 日 경제 ‘잃어버린 20년’ / 인구 감소·정책 실패 탓 / 한국, 같은 실수 말아야
박상준 와세다대 교수가 지난 17일 도쿄 신주쿠에 있는 대학 캠퍼스 내 연구실에서 한국과 일본의 경제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청년실업 문제로 고민하는 한국과 달리 일본에는 일자리가 넘쳐난다. 일본의 유효구인배율은 지난해 11월 기준 1.56배였다. 구직자가 100명이라면 일자리는 156개 있었다는 뜻이다.

올봄 졸업을 앞둔 일본 대학생의 86%는 지난해 12월1일 기준으로 이미 취업이 결정됐을 정도다. 일본의 주요 대기업은 최근 수년간 사상 최대 실적 기록을 잇달아 갈아치우고 있다. 일본 정부는 자국의 경기에 대해 그동안 ‘완만한 회복 기조가 계속되고 있다’고 판단해 왔으나 이달 들어 ‘완만하게 회복되고 있다’로 표현을 격상하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1990년대 초반부터 20년 가까이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장기 침체에 빠졌던 일본 경제가 어떻게 해서 지금처럼 살아났을까. 한국 경제가 참고할 만한 부분은 없을까. 그 궁금증을 풀어보려고 도쿄 신주쿠에 있는 와세다(早稻田)대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박상준(53) 교수의 연구실을 지난 17일 찾았다. 박 교수는 “일본의 경제가 몇 가지 불안 요인이 있지만 현재 매우 좋은 상황인 것만은 분명하다”며 “한국은 일본의 과거 실패 사례를 참고해 실수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인 경제학자로는 가장 오래 현지에 머무르면서 일본 경제를 연구해 온 전문가로 알려졌는데.

“한국 상황이 좋지 않아 잠깐 피하려고 외국으로 나왔다가 눌러앉은 것인데, 올해로 일본 생활 20년째가 됐다. 1997년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그해 9월1일 한국산업연구원에 처음 출근했다. 그런데 불과 두 달 뒤인 11월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사태가 벌어졌다. 해외 일자리를 알아보다 일본 니가타현에 있는 고쿠사이(國際)대의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했고, 1999년 3월 일본에 오게 됐다. 그때는 일본어를 전혀 몰라 강의도 생활도 영어로만 했다. 그러다 2005년 지금 일하는 와세다대로 옮겼다. 시간이 흐르다 보니 일본에서는 한국 경제 전문가로, 한국에서는 일본 경제 전문가로 생각해 주더라.”

―한국과 달리 일본은 일자리가 풍족하다. 하지만 경기가 좋아져서가 아니라 인구구조 때문에 벌어진 착시현상이라는 견해도 있지 않나.

“인구만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일본에서 15∼64세 노동가능인구가 줄어든 것은 1996년부터다. 그런데 청년실업률이 가장 높았던 것은 한참 뒤인 2002년이고, 이후 하락하다 2009년과 2010년 다시 높아졌다. 그러다 일손 부족 얘기가 나온 것은 불과 3년 정도 전이다. 은퇴세대당 청년의 비중은 최근 5∼6년 동안 큰 변화가 없었다. 경기가 좋아져서 기업의 일자리가 많아진 것이다.”

―일본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막대한 돈을 풀었기 때문에 나중에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일본 정부가 금융완화 정책을 펴면서 ‘엔저’(엔화 약세)라는 환율 효과가 기업의 영업이익을 늘린 측면도 있다. 따라서 엔화가 강세로 돌아서면 단기적으로는 영업이익이 악화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일본 기업의 부채비율이 1990년대 초반의 ‘버블기’ 이후 계속 낮아져 2010년대에는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게 일본의 경제 상황을 좋게 만드는 중요한 원인이다. 물론 인구감소는 고질병이고, 과도한 국가부채는 언제 얼마나 강력하게 터질지 모르는 지진 같은 문제다. 그런 불안 요인을 안고 있기는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 일본 경제는 매우 좋다고 본다.”

―한국에선 청년 일자리 문제가 시급한 과제로 꼽히는데.

“국내 일자리가 없다면 해외로도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고시원 같은 데서 능력을 썩히면 안 된다. 외국에 나가서 일하게 되면 한국에서 얻지 못하는 지식을 얻을 수 있고, 나중에 한국에 반드시 도움이 될 것이다. 나도 그런 사례 중 하나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으려면 청년 일자리 문제의 이면을 잘 살펴야 한다. 한국 경제는 대기업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취약점을 갖고 있는데, 이는 중소기업이 약하다는 얘기와 같다. 중소기업을 어떻게 살릴지가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큰 과제다. 정부 정책에는 한계가 있고, 결국 대기업의 마인드가 개선돼야 한다.”

―한국의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성장을 막고 있다는 얘기인가.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너무 심하게 압박했을 수도 있고, 중소기업의 사정을 봐줄 여유가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기업이 돈을 많이 쌓아두고 있는 것을 보면 여력이 없는 것은 아닌 듯하다. 중소기업과 노동자에게 가야 할 돈이 고여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의 임금 수준이 일본은 80%, 한국은 60% 정도라고 한다. 그게 두 나라의 대기업과 중소기업 관계의 차이가 아닐까. 졸업하고 사회인이 된 제자들이나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도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압박하는 문화는 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그 압박이 견딜 만하다고 하더라. 한국은 압박이 훨씬 심하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대기업에 납품해 먹고사는 중소기업이 많다. 같이 성장하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

―일본에선 정부가 임금 인상을 주도하고 대기업도 이를 잘 따르는 것 같다.

“일본 정부가 20년의 실패 경험을 살펴보고 얻은 결론인 듯하다. 임금이나 고용이 안정되지 않으면 국민이 지갑을 닫는다. 그러면 국가 전체로는 경제가 안 돌아가게 되고 결국 개인에게도 해가 된다. 임금을 올리는 것이 국가를 살리는 일이고, 그래야 기업도 좋아진다. 일본은 내수시장이 워낙 크다. 수출이 20% 정도밖에 안 된다. 그래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임금 인상을 주도하는 것이고, 기업들도 어느 정도 납득하는 것 같다. 일본 정부의 환율 정책에 따른 이익을 수출 위주 대기업이 대부분 챙겼는데, 그 혜택을 중소기업과 소비자에게도 나눠줘야 한다는 논리가 일본에서는 통하는 것 같다.”

―우리 경제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따라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데.

“일본 경제가 20년 동안 장기 불황에 빠졌던 것은 인구 감소와 정책 실패 때문이었다. 사람이 줄면 소비도 감소하고 기업 경영도 어려워진다. 일본도 출산율을 높이려고 우리나라처럼 양육수당도 줘봤지만 성과가 없었다. 그런데 유럽의 사례를 봤더니 노동시간이 적고, 육아휴직 제도가 잘 운영되고, 여성의 경력단절이 없는 나라가 출산율 회복에 성공했다. 현재 일본도 이 정책을 따라하고 있다. 더 일찍 했어야 한다. 우리나라도 서둘러야 한다. 또 일본 정부가 불황 때 시행한 금융·재정 정책 가운데 완화·긴축 타이밍 등을 오판한 부분을 참고해 우리 정부는 같은 실수를 피해야 한다.”

―문재인정부가 부동산 규제 정책을 펴는 것은 어떻게 보는지.

“사람이 모이는 것을 막을 게 아니라 모일 만한 곳을 더 만드는 게 효율적이다. 일본을 보면 도쿄, 수도권, 대도시는 부동산 가격이 오르지만 다른 곳은 떨어진다. 인구가 줄어들면 인기 있는 곳으로 가려고 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외곽은 사람이 빠져나가면서 상가도 철수하고 점점 황폐해진다. 한국도 비슷한 상황이 진행되는 듯하다. 인구가 줄면 자동차도 감소할 텐데 굳이 시골에 길을 닦을 필요는 없다. 재원은 한정돼 있다.”

―최근 인공지능(AI), 로봇, 가상화폐 등 새로운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느 정도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해 왔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처럼 미래가 보이지 않는 시기는 없었던 것 같다. AI, 로봇, 가상화폐가 우리의 삶을 얼마나 바꿔놓을지 모르겠다. 가상화폐는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이 동시에 부각되고 있는데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다. AI와 로봇은 일손이 부족한 일본에서는 사활을 걸고 개발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나처럼 노동력을 팔아서 먹고사는 사람에게는 일자리를 빼앗는 위협이 될 수도 있다. 로봇을 가진 자산가들의 세상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정부 차원에서 대비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바뀌면 정부 조직도 바뀌는 경향이 있는데, 정권이 바뀌어도 미래를 대비하는 태스크포스(TF)는 흔들림없이 계속 연구할 수 있게 육성해야 한다.”

도쿄=글·사진 우상규 특파원 skwoo@segye.com

박상준 와세다대 교수는
●1965년(53) ●대구영진고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 ●한국산업연구원 연구원 ●일본 고쿠사이대 교수 ●일본 와세다대 교수 ●저서 ‘불황터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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