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설계와 묵은 고민을 떨쳐내고 새롭게 시작하고자 떠나온 여행이었는데, 어머니는 생의 종말을 향한 수렁으로 미끄러져 들어간 것이다. 뭐 그리 유난을 떨며 새해를 맞이하겠다고 어머니를 두고 왔을까, 반성과 함께 나를 책망했다. 그 자책 속에 마음은 그저 바쁘기만 했다. 가족들은 황망해했다. 우리는 아버지를 그렇게 잃었던 것이다.
귀국 날짜를 앞당겨 돌아온 나는 어머니를 보러 한달음에 병원으로 달려갔다. 어머니는 독한 항생제와 진통제로 힘겨워하셨다. “나를 놓아두고 가더니 이렇게 됐다”며 비몽사몽 가운데 나를 향한 원망도 날것으로 뱉으셨다. 그 연세로는 견디기 힘든 수술을 받고 난 어머니의 얼굴이 퉁퉁 부어 무섭기까지 했다. 어머니는 삶과 죽음 양쪽에 각각 한발을 담근 채 힘겨운 투쟁을 벌이고 계셨다. 나는 어머니가 좀 더 사셔 주기만을 바랐다.
게다가 나는 아직 어머니의 부재를 감당할 만한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했다. 헌데 가만 생각해보면 나도 그랬었다. 누군가를 위로할 때, 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거나 공감하지 못하고 그저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위로했었다. 그것이 진정한 위로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뻔하디 뻔한 말은 성의나 진정성이 없다고 여겼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건넨 위로의 말은 위로가 아니었다.
정말 힘들 때 필요한 것은 따듯한 말이었다. 공감을 전제로 한 그런 위로. 어머니는 곧 나아지실 거라고, 그러니 힘내라는 그런 위로 말이다. 상대의 아픔을 진심으로 공감한다면 굳이 말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 아픔의 전이로 진짜 함께 아파할지도 모른다. 그것만큼 또 큰 위로가 어디 있을까. 이 시간에도 타인의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 있을 터, 그들에게 따듯한 마음을 보낸다. 혼자가 아니라고, 그러니 조금만 더 견뎌보자고 손을 내민다.
은미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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