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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제작된 론 하워드 감독의 ‘분노의 역류’는 소방관의 애환을 얘기할 때마다 회자하는 미국영화다. 황소(bull)라는 별명의 소방관 커트 러셀은 화재 진압 중 건물이 무너져 추락하던 동료의 손을 붙잡았다. 이때 명대사가 나온다. “네가 가면, 우리도 간다.” 둘은 함께 추락해 죽고 만다.

소방관은 영어로 firefighter다. 말 그대로 불과 사투를 벌인다. 미국은 매년 100여명 소방관이 순직한다. 9·11 테러 땐 343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래도 소방관은 존경받는 직업 1위다. 순직하면 영웅 대접을 받고 유족 생계도 걱정이 없다. 돈이 직업을 평가하는 척도는 아니지만 9·11 테러에 희생된 소방관에겐 46억원의 보상금이 지급됐다.

우리나라도 소방관에 대한 신뢰가 높다. 33개 직업군 중 신뢰도 1위다. 대학생들이 가장 존경하는 직업 1위다. 하지만 당사자들이 느끼는 직업 만족도는 최하위권이다. 제천 화재 참사와 그 후의 일을 보면 왜 그런지 알 수 있다. 지난달 제천 화재 진화에 나섰던 소방관들이 요즘 고개를 못 들고 있다고 한다. 참사에 대한 책임으로 경찰 조사와 징계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화재 당시 “유리창을 깨달라”는 구조 요청을 받고도 진입하지 않은 점이나 비상구 위치조차 파악하지 못한 소방관들의 책임은 가볍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참사를 소방관들의 책임으로만 모는 것은 과한 듯싶다. 부족한 진화인력, 미흡한 소방법규 등 참사 원인은 한둘이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제쳐놓고 소방관만 처벌하려는 것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제천 소방관을 처벌 말라는 청원에 약 3만명이 참여했다. 청원인은 “완벽하지 않은 현장 대응의 책임을 물어 처벌하는 선례는 소방공무원들에게는 작두날이 될 것”이라고 했다. 지역 언론도 “초기 화재 현장을 봤으면 소방대원들이 직무유기를 했다는 소리를 못할 것”이라고 처벌에 반대했다. 일부 소방관은 “죽더라도 건물로 뛰어들걸”이라고 자책한다. 고개 떨군 소방관들에게 책임을 묻기보다는 인재의 재발을 막는 근본 대책을 세우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박태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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