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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산의마음을여는시] 골목이라는 말 속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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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1-22 23:53:14 수정 : 2018-01-22 23:5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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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헌
원은희
골목이라는 말은 얼마나 따뜻한가/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누군가 내다버린 연탄재처럼/다친 무릎에 빨간약 발라주던

무뚝뚝한/아버지처럼//

골목이라는 말 속엔 기다림이 있다/벚나무 아래 작은 의자 하나 누군가를

기다리는/어둠이 먹물처럼 번지는 시각/생 무를 깎아먹는지/

창밖으로 도란도란 들리는 목소리//

골목이라는 말 속엔 아이들이 있다/너무 늙어버린 골목이지만/

여전히 몽환 같은 밤을 낳아/ 여자들은 열심히 아이들을 낳고/그 아이들이 쑥쑥 커서/

누군가의 애인이 되어 역사를 이어가는/골목의 불멸//

사소한 것들이 모여 사랑이 이루어지듯/때론 박애주의자 같은 달빛이/

뒷모습까지 알몸으로 보여 주는/절망과 희망이 번갈아 다녀가는 골목


나는 사람 냄새 풍기는 골목길을 좋아한다.

골목길은 딱지치기, 팽이치기, 구슬치기, 술래잡기로 시간이 가는 줄 몰랐던 아이들이 있었다. 아이들이 집에 다 들어가고 나면 텅 빈 골목 그 자리에는 어둠이 먹물처럼 스며든다. 곧이어 어둠이 깊어지면 집집이 불 켜진 창문 밖으로 정겨운 이야기 소리가 들려온다, 마치 생무를 깎아 먹는 소리처럼 도란도란,

밤이 더 깊어 몽환적인 달빛이 내려오면 여자들은 열심히 아이들을 낳고 그 아이들이 쑥쑥 커서 또 아이를 낳아 역사를 이루는 곳이 골목이다.

하얀 연탄재, 발그레 불빛이 남아있는 연탄재, 쓰레기, 벚나무, 감나무, 패랭이꽃 등 사소한 것들이 어울려 있는 곳도 골목이다. 평상에 앉아 화투를 치다가 싸움을 하는 곳도 담 없는 이웃들끼리 한잔하며 절망과 희망을 말하던 곳도 골목이다.

골목이 너무 늙어버렸는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벚나무 아래 작은 의자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리움이 있는, 생각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행복해지는 골목이 그립다.

박미산 시인·서울디지털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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