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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배용칼럼] 추사의 ‘세한도’와 역지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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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1-22 00:04:20 수정 : 2018-01-22 00: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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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서 유배생활 하던 추사
제자 의리에 ‘불후 명작’ 그려줘
이기심으로 각박해진 세상에
‘따뜻한 동행’의 가르침 안겨줘
우리 역사에서 유배지에서 고난을 극복하고 상생의 시대를 연 위대한 인물이 많지만 그중 대표적인 인물을 든다면 단연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이다. 그 고난의 시절 다산은 강진에서 18년 동안 사회현실을 직시하고 개혁론을 집대성했다. 추사는 제주도에서 9년의 유배생활 동안 자아를 발견하고 심오한 예술의 세계로 승화시켰다.

추사는 1786년 예산에서 태어났다. 증조할아버지가 조선왕조 21대 임금인 영조의 사위로 아주 번성한 가문에서 성장했고 학문도 뛰어나 24세에 사마시, 34세에 대과에 합격했다. 1809년에는 동지부사로 중국 연경에 사신으로 가는 아버지를 따라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완원, 옹방강 등의 대학자를 만나 청조 고증학의 성과를 직접 보고 배우고 돌아왔다. 그는 독특한 서예체로도 유명하지만 고증적 실사구시파의 태두로 우리나라 금석학을 개척한 대학자이다. 북한산비가 진흥왕 순수비임을 고증한 ‘예당금석과안록’(?堂金石過眼錄)을 저술했다.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 영산대 석좌교수
학자로서 제자를 키우고 학문을 무르익혀 갈 즈음 1840년 정치적 음모에 연루돼 제주도 서귀포 대정리로 유배가 위리안치됐다. 고생 모르고 지내다 갑자기 닥친 유배생활은 추사에게 큰 괴로움을 안겨 주었다. 음식, 옷가지 모두가 불편한 가운데 그 고통을 예산에 있는 아내에게 하소연함으로써 울분을 달랠 수 있었는데 그 사랑하는 아내가 1842년에 세상을 떠났다. 더구나 추사가 가장 힘든 것은 학자이기에 책을 제대로 구해볼 수 없는 괴로움이었다. 그래도 스승인 추사를 생각하는 제자 이상적이 있었다. 그는 중국을 왕래하는 통역관이자 외교관이었다.

1843년 이상적이 중국에서 구입한 새로 나온 ‘만학집’(8권)과 ‘대운산방문고’(6권 2책) 신간서적을 보내더니 또 이듬해에 ‘황조경세문편’이라는 책을 보내주었다. 이 책은 자그마치 총 120권, 79책이었으니 양으로도 방대했다. 이상적의 지극한 정성에 감격해 그에게 그려준 그림이 ‘세한도’(歲寒圖·국보 제180호)이다. 이 그림은 손으로 재주로만 그린 것은 아니라 사무치는 고마움에 가슴으로 그린 불후의 명작이라고 생각한다.

두 그루의 소나무와 두 그루의 잣나무 사이에 소박한 집 한 채가 그려져 있다. 꼭 집을 감싸 안을 것 같은 가지가 휘어진 고목의 소나무는 스승 추사 같고, 꼿꼿이 뻗어 올라가는 소나무는 제자 이상적 같이 기개가 드높다. 건너편에 있는 두 그루의 잣나무는 가지와 잎이 모두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희망을 보여주는 느낌이다.

더욱이 발문에 보면 “이 책들은 세상에 흔한 것도 아니고 천 리 만 리의 먼 곳에서 사와야 하며, 또한 여러 해가 걸려야 비로소 구할 수 있는 것으로 쉽게 손에 넣기 어려운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도도한 물살처럼 오직 권세와 이익이 있는 곳에 수없이 찾아가서 잘 보이려고 하는데, 이 늙고 초라한 남쪽 끝에 떨어진 노인에게 보내는 너의 마음은 흡사 공자 말씀에 날이 차가워진 연휴에야 소나무, 잣나무가 한결같이 늘 푸르다는 것은 그제서야 느낀다. 그대가 나에게 한 일이 전이라고 더함도 없고 후라고 덜함도 없다”고 하며 제자의 한결같은 마음가짐을 칭찬했다.

이것을 받아든 이상적은 스승에게 제자로서 할 도리를 한 것뿐인데 이렇게 귀한 그림을 그려주시니까 감격으로 자랑하고 싶어서 중국 연경에 가 유학자들의 환영 연회에서 펼쳐 놓는다. 이 그림을 감상한 16명의 중국 유학자들이 제와 찬을 붙여서 칭송했다. 추사의 꿋꿋한 소나무 같은 절개, 제자의 스승을 존경하고 끝까지 받드는 의리, 변치 않는 소나무, 잣나무의 고고한 늘 푸르른 모습에서 내일을 기약하며 희망과 용기를 얻는 인간사를 배운다는 것이다.

전통시대의 선비 정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최고의 덕목은 공동체정신과 의리심이다. 요즘 이웃 간에 이사를 와도 떡 돌리는 것을 싫어해 전하지도 못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세상은 이기심으로 각박해지고, 스승의 권위는 이미 무너진 지 오래이다. 옛날에는 정도 많고 의리를 지키는 미풍양속이 사회 공동체질서를 지켜주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기쁠 때는 축하해줄 줄 알고 슬플 때는 위로해줄 줄 아는 따뜻한 동행, 바로 ‘세한도’가 가르쳐 주는 역지사지의 마음이다.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 영산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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