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피켓 대신 티켓 들고 돌아온 386

입력 : 2018-01-21 21:45:59 수정 : 2018-01-21 21:50:51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영화 ‘1987’·뮤지컬 ‘광화문 연가’ 등/강의실 박차고 나가던 시대상 그려/중년 관객 사회변화 열망 강해지고/창작자들 80년대 청춘 향수도 한몫/일각선 “반성 없이 자기만족” 꼬집어 “나보다 데모가 중요해?” 뮤지컬 ‘광화문연가’에서 84학번 신입생 명우는 여자친구 수아에게 이렇게 툭 던진다. 명우는 최루탄 연기 자욱한 거리로 나서는 수아가 걱정스럽다. 함께하지 못하는 자괴감에 마음 한편이 괴롭다. 수아는 수아대로 힘겹다. ‘사람들이 맞고 끌려가는데’ 달콤한 사랑놀음에 빠지는 건 사치 같기만 하다. 뮤지컬 ‘모래시계’의 혜린 역시 대학가에서 유신헌법 철폐를 외친다. 혜린은 반대의견을 묵살하는 운동권 선배들을 향해 ‘독재 정권과 다를 게 뭐냐’고 일갈한다. 그는 재벌 아버지를 뒀지만 기층민중에 다가가려 군수공장에 위장 취업한다.

‘사랑보다 데모’가 중요했던 세대, 강의실 문을 박차고 거리로 공장으로 나선 세대, ‘386’이 문화계로 돌아왔다. ‘386’이란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 대학에 다니면서 학생운동과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세대를 일컫는 말이다.

스크린과 무대에서는 1970·80년대 민주화운동을 다룬 작품들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객석 역시 이제는 중년이 된 386세대들이 채우고 있다. 주요 창작자들도 40·50대다. 중년 관객이 늘고 사회변화에 대한 열망이 강해지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풀이된다. 최근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문화상품들은 역사 재조명이나 추억 마케팅이라는 점에서 1990년대 후일담 문학과 구별된다. 이런 현상에 대해 한편에서는 ‘헬조선’을 초래한 ‘386’의 자기반성 없는 회고라는 비판도 나온다.

영화 ‘1987’
◆민주화운동, 영화로 뮤지컬로

영화 ‘1987’은 민주화운동을 다룬 대표적 작품이다. 최근 6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택시운전사’도 1200만 관객을 기록했다. 공연계에서는 뮤지컬 ‘광화문연가’ ‘모래시계’, 연극 ‘더헬멧’ 등이 민주화운동을 끌어안았다.

‘386세대’의 티켓 파워는 이런 현상을 초래한 주 요인이다. 영화예매 사이트 맥스무비에 따르면 ‘1987’ 예매자 중 40대는 37.1%로 비중이 가장 크다. 50대 이상은 21.4%로 두 그룹을 합하면 전체의 절반이 넘는다. 반면 30대는 28.5%, 20대는 12%에 그쳤다. ‘택시운전사’ 역시 40대 예매자가 37.7%, 50대 이상이 22%에 달했다.

강성률 영화평론가는 “과거 10·20대였던 영화 관객 주도층이 최근 40대로 넘어갔다”며 “이 층이 재밌는 게 자기가 좋으면 가족을 다 데려간다. 티켓 파워가 크다”고 설명했다. 극장가보다는 덜하지만 공연계에서도 40대 관객이 부상하고 있다. 공연예매 사이트 인터파크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관객 중 40대는 17.3%, 50대 이상은 6%로 나타났다.

뮤지컬 ‘광화문 연가’
◆사회 변화 열망… 중년 관객 노린 추억 마케팅도

관객 구성뿐 아니라 사회변화에 대한 열망 역시 민주화운동을 재조명하게 만들고 있다. 시대 흐름에 민감한 영화에서 이런 특징이 두드러진다. 강 평론가는 “영화가 1000만을 넘기려면 사회현상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택시운전사’ ‘1987’ 모두 박근혜정부 때 기획됐고, 정부의 ‘불통’과 반민주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는 가운데 나왔기에 흥행 요소가 많았다”고 진단했다.

반면 뮤지컬에서의 민주화운동은 추억 소환에 더 무게가 실린다. 뮤지컬을 보며 사회문제에 울분을 토하기보다 일상 탈출을 원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또 뮤지컬은 10년, 20년씩 재공연을 노리기에 보편적 정서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는 “뮤지컬은 티켓 값이 비싸기에 그 돈 내고 심각한 현실 얘기를 보고 싶어하는 관객이 많지 않다”며 “뮤지컬에서의 1980년대는 노스탤지어, 복고 마케팅과 통한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부정·부패의 민낯이 드러난 것도 추억 자극에 영향을 미쳤다. 원 교수는 “‘광화문연가’의 운동권 선배가 ‘양키 고 홈’을 외치다가 미국차를 팔 듯 386세대는 결국 타협했다”며 “지금 생활이 젊은 시절 그리던 것과 다를 수밖에 없기에 향수·복고가 먹힌다”고 봤다.

뮤지컬에서의 이런 흐름은 대중문화에서 민주화운동이 보편적 소재가 됐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조용신 뮤지컬 평론가는 “뮤지컬은 공연 기간에 어떻게든 관객을 끌어와야 하고 관객의 가격 저항도 높다”며 “그러려면 익숙한 소재가 필수여서 대중문화에서 흥행하고 검증된 소재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개인화·파편화돼 무대로 옮기기 힘든 1990년대와 달리 갈등 전선이 명확한 1980년대는 대극장 뮤지컬의 대립 구도에도 어울린다.

주요 창작자들이 1980년대에 청춘을 보낸 점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택시운전사’의 장훈(52) 감독, ‘1987’의 장준환(48) 감독, 뮤지컬 ‘광화문연가’의 고선웅(50) 작가 모두 386세대로 분류된다. 강 평론가는 “한 감독은 ‘이건 특정 세대의 노골적 포르노’라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원 교수는 “이들이 의도하지 않아도 과거 얘기를 쓰다 보면 자연스레 그 시대가 소환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반성 없는 자기 위로’ 비판도

최근 민주화운동을 조명하는 흐름은 1990년대 ‘후일담 문학’에서 1980년대를 다룬 방식과 차이가 있다. 강 평론가는 “후일담 문학이 패배주의가 강했다면 지금은 민주화 투쟁에 대한 역사적 재현 성격이 강하다”며 “또 외국인·운전사의 시선으로 광주를 본 ‘택시운전사’나 강동원이 나오는 ‘1987’처럼 대중성을 가미해 20·30세대도 쉽게 빠질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1980년대를 엄숙하게 돌아볼 수밖에 없던 1990년대와 달리 이제는 민주화운동을 거리 두고 볼 수 있게 된 셈이다. 강 평론가는 그러나 “386세대들이 이런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싸웠어’라고 얘기하는데 결국 그들이 신자유주의, 강남 패권, 사교육 열풍을 불러오고 자식 세대에 ‘헬조선’을 물려주지 않았는가”라며 “영화가 이들이 열망했던 사회변화로 연결되기보다 386세대의 자기 만족에 그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