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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한 해의 시작을 베토벤 교향곡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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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1-19 21:32:55 수정 : 2018-01-19 22:2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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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강렬한 ‘영웅’
치밀하게 작업한 ‘운명’
‘첫 악장’에 심혈 기울여

각자 시작한 방식 달라도
멋진 끝 향한 여정 되기를
매년 1월 초에는 많은 이들이 새해 다짐을 하며 한 해를 시작한다. 비록 매년 반복되고 작심삼일로 끝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을 다지기 위한 노력을 가볍게 볼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만큼 시작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음악에서도 시작은 무척 중요하다. 시간 예술인 음악은 우리의 삶과 마찬가지로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관계로 일단 시작하면 그 시작이 끝까지 어떤 형태로도 음악의 진로에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작곡가들은 미리 계획을 세우고 치밀하게 준비하게 된다. 물론 천재형인 모차르트와 슈베르트는 그런 치밀한 계획이 순간적인 영감으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노력형인 하이든과 베토벤은 많은 수고를 들여야 했다. 특히 베토벤은 그 과정을 여러 스케치북에 남겨 놓아 시작할 때의 작고 하찮은 생각에서 어떻게 거대한 음악을 만들어내는지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베토벤이 교향곡을 시작하는 방식과 우리의 새해 시작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허영한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음악학
새해를 다짐으로 시작한 사람 중에 가족에게 그 내용을 선포하며 강렬하게 시작한 경우라면 베토벤의 영웅교향곡 제1악장에 해당한다. 이 곡은 첫 마디부터 망치로 두드리는 듯한 강력한 화음을 두 번 울리고는 곧바로 주제 선율을 낮은 음역에서 은근하지만 근엄하게 노래한다.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망치 화음은 이어지는 주제 선율에 우리의 관심을 집중하게 만든다. 마치 다짐을 선포하는 이가 주인공이 되는 영웅적인 면을 묘사하는 것과 같다. 이 주제 선율은 전체 악장을 통해 큰 변화 없이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지만 끝에 가서 곡을 마무리하는 데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그 어려움을 극복하며 교향곡 역사에 남을 명곡이 만들어진다.

그런가 하면 계획 짜는 데에 남다른 애정을 갖는 이들은 한 해의 설계를 이미 치밀하게 마쳤을 것 같다. 그들은 베토벤의 운명교향곡 제1악장처럼 시작한 셈이다. 첫 마디부터 울리는 ‘딴딴딴 따∼’ 주제는 선율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은 조각일 뿐이다. 그런데 베토벤은 그 작은 조각으로 모든 계획을 다 세워 놓았다. 이 작은 조각이 곧바로 선율로 성장하더니 전체 악장을 지배한다. 심지어 이 조각은 마지막 악장에까지 영향을 끼쳐 말 그대로 전체 교향곡을 만들어낸다. 처음부터 세운 계획이 아니었다면 이루기 힘든 음악 구조이다.

반면 새해를 아무렇지도 않게, 그 어떤 날과도 다르지 않게 시작한 이들에게는 베토벤의 전원교향곡 제1악장을 추천한다. 이 곡의 시작은 어느 음악의 중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베토벤의 시작 주제는 처음부터 강하게 드러나는 것이 보통인데 이 곡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시작하자마자 잠시 멈추면서 시작의 느낌을 약화시킨다. 그러나 이어지는 경이로운 음악은 아무렇지 않게 시작한 그 주제 선율로부터 만들어진다. 평범한 것이 비범한 것으로 변화는 마술을 부린다.

마지막으로 필자도 이 경우이지만 무슨 결심을 해야 하는지, 또 어떤 계획을 세워야 하는지 모른 체 한 해를 시작한 이들은 합창교향곡의 제1악장을 권한다. 시작했는지 안 했는지조차도 불분명하게 아주 작은 소리로 운명교향곡보다 더 작은 조각이 간간이 들릴 뿐이다. 마치 본격적인 시작을 준비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이미 시작했음을 음악이 진행되며 알게 된다. 아침 해가 떠오르며 어둠이 걷히듯이 그 조각들이 어느 새 큰 선율을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고 보니 모두 1악장을 예로 들었다. 작곡가들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이 바로 1악장이다. 첫 악장부터 청중을 사로잡아야 마지막 4악장까지 끌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새해도 첫 달의 절반이 넘어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 시작 부분이다. 각자 시작을 어느 교향곡처럼 했는지 모르지만 베토벤의 작품에서 보듯이 모든 시작은 나름대로 멋진 끝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갖고 있다. 오늘 하루가 그 멋진 끝을 향한 긴 여정의 일부가 되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허영한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음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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