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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재외 공관장은 폼 잡는 자리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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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1-17 23:29:56 수정 : 2018-01-17 23:2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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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 대사 이어 공관장도 ‘캠코더’
준비도 없이 국익 지켜낼지 의문
특임공관장 30%로 높인다는데
낙하산 임명에 외교경험 사장돼
어느 재외공관에서 있었던 일이다. 공관장 A씨는 직업 외교관이 아닌 공직자 출신이었다. 그는 늘 영사들한테서 극진한 대우를 받길 바랐다. 그의 지시는 부당해도 절대로 거스를 수 없었다. 가끔 A씨의 비위를 맞추는 아부성 발언도 필요했다. 타 부처 파견 영사들은 처세에 능했다. 외교부 소속 2명은 정작 외교적이지 못했다. 공관장은 외교부 소속 1명을 유독 괴롭혔다. 그 영사가 멀리 휴가를 떠났을 때 비서를 시켜 돌아오게 해 놓고선 “휴가 중인데 왜 왔느냐”고 되묻는 식이었다. 외교에 미숙했으나 괴롭힘에는 능숙했다.

이달 초 정부의 재외 공관장 인사 발표를 보고 문득 A씨가 떠올랐다. 공관장 39명 중 11명이 비외교관 출신으로 채워져서다. ‘특임공관장’인 이들의 면면을 보면 더불어민주당과 대선 캠프에서 활동했거나 문재인정부와 코드가 맞는 ‘캠코더’ 인사들이다. 직업외교관이라면 30년 이상 경력을 쌓아야 노려볼 수 있는 자리다. 특임공관장 상당수는 어학시험도 생략한 채 임명했다고 한다. 논공행상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들이 A씨처럼 갑질이나 하지는 않겠지만 외교전사로서 솔직히 미덥지가 않다.

박희준 논설위원
미국·중국·일본·러시아 4강 대사 인선도 그랬다. 정권과 코드가 맞는 학자(미·일)나 정치인(중·러)을 기용했다. 외교경력이라고는 전혀 없다. 조윤제 주미대사를 제외하고 주재국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도 못한다. 대접이나 받고 폼이나 잡는 자리라면 모를까 외교 현장은 총성 없는 전쟁터다. 적과 맞서 싸울 준비도 되지 않은 채 외교 현장에 투입되어 어떻게 우리 국익을 지켜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통역을 쓰니 언어는 별 문제가 되지 않다고 할 텐가. 막전에서 이뤄지는 공식적인 업무야 그럴지 모르겠다. 막후에서는 외교 고수들 간에 피를 튀기는 싸움이 벌어진다. 2008년 7월 미국 지명위원회가 독도를 우리 영토가 아니라 한·일 간 분쟁지역으로 분류하려고 했다. 일본과의 싸움에서 패하기 직전이었다. 당시 이태식 대사는 한 행사장에서 연설을 마치고 나서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뒤쫓아갔다. 경호원들이 제지하자 외교적 결례를 무릅쓴 채 부시 대통령을 불러 세워 사안의 중대성을 설명하고 표기를 바로잡았다.

우리 외교부 인사가 미국을 따라가는 모양새다. 정부는 외교부 순혈주의를 개혁하기 위해 비외교관 출신의 특임공관장 비율을 30%까지 늘릴 방침이다. 미국이 대사의 30%가량을 정치적으로 임명하고 있다. 대선 기간에 거액의 정치 후원금을 낸 기업가 등에게 보은 차원에서 대사직을 준다.

미국에서 대통령 당선자가 대사직을 전리품으로 싹쓸이하던 시절이 있었다. 1829년 취임한 앤드루 잭슨 대통령이 “공직은 기득권층 전유물이 아니라 일반적인 교양 수준이 있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고 선언하고 대사직마저 엽관제·정실제로 운영했다. 그 결과 매관매직이 횡행했고 자리 배분에 불만을 품고 암살하는 일도 벌어졌다. 100년가량 지나 결국 직업외교관제로 선회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행정부 때 43.8%이던 정치적 임명 대사 비율은 계속 낮아져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 이르러 최저인 29.2%까지 떨어졌다.

우리와 미국의 외교 환경은 너무나 다르다. 미국 외교관은 어느 국가에서든 후광효과를 업고 한 수 깔고 들어간다. 영어가 모국어니 외교 무대에서 언어 소통에도 아무 문제가 없다. 웬만한 미 대사관에는 수십명이 근무하고 있어 어떤 인사가 대사로 가든 조직이 흔들리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미 국무부 한국과장 출신인 데이비드 스트라우브는 “정치적으로 임명된 이들은 현지어도 못하고 외교도 모르면서 문제나 일으킨다”고 비난한다. 우리는 미국처럼 힘센 나라가 아니다. 4강과 주요 국가를 빼면 직원도 10인 미만으로 구멍가게 수준으로 운영하고 있다.

대사와 공관장을 낙하산 인사들이 차지하면서 정작 외교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들의 소중한 경험은 사장되고 있다. 유럽 등 선진국도 대사나 재외 공관장을 정치적 임명직으로 채우는 비율이 우리 목표치보다 낮다는 사실을 문재인정부는 아는지 모르겠다.

박희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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