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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 나누며]“전통 음식, 과거와 오늘을 이어주는 매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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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1-12 20:23:03 수정 : 2018-01-12 21:3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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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윤씨 집안 장류 제조 비법/결혼 후 시어머니로부터 전수/메주 발효해 그대로 먹는 동국장/지자체 등 도움… 수백년만에 복원/전통식품 값비싸 밀려나는 현실
/식품 명인 실질적 지원 늘려야
땅끝마을 전남 해남 황산면 ‘귀빈식품’에서 간장과 된장 등 동국장을 만들기 위해 한안자 명인이 메주를 손질하고 있다.
귀빈식품 제공
“전통 음식은 조상들의 손맛을 알게 하고, 우리의 문화와 후손의 건강을 한꺼번에 지켜줍니다.”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는 12일 한안자(79) 동국장(東國醬) 명인은 “서민들에게 옛날과 오늘을 이어주는 것으로 전통 음식만 한 게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동국장은 고조선 때부터 이어진 우리의 전통 장이다. 메주를 발효해 간장과 된장을 별도로 내지 않은 채 그대로 먹는 생장이다. 동국장엔 된장과 간장 맛이 살아 있어 일반 된장보다 양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낼 수 있다. 동국장은 조선시대까지 간헐적으로 이어진 전통의 생장 맛을 되살려낸 것이다.

국내 최초로 동국장을 선보인 한 명인을 만난 곳은 전남 해남 황산면 귀빈식품이다. 귀빈식품은 멀리는 고조선, 가깝게는 조선시대 이후 단절된 우리의 전통 맛인 동국장의 복원을 알린 곳이다. 한 명인의 전통 맛 복원은 우연히 이뤄진 게 아니다. 한 명인은 조선시대 많은 왕비를 배출한 사직촌 한씨 가문의 30대 후손으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기품있는 음식 맛을 내는 법을 지켜봤다.

전남 해남 박씨 집안에 시집을 와 시어머니로부터 해남 윤씨 집안의 장류제조 비법까지 전수해 50년간 이를 계승·발전시켰다. 그러다가 전통식품 사업에 뛰어든 것은 1992년 마늘 생산지인 해남 농민들이 중국산 저가 마늘 때문에 어려움을 겪자 해남군수가 마늘장아찌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면서부터다. 여기에 일제강점기 이후 현대사회로 넘어오면서 전통의 장맛이 사라졌다는 판단에 따라 이를 복원하기로 마음먹었다.

한 명인은 1992년 귀빈식품을 설립하고 전통 발효식품의 맛을 되살리는 일에 뛰어들었다. ‘우리의 전통 맛’에 관심을 보인 지방자치단체와 대학 연구소와 함께 전통식품 산업화에도 나섰다. 전남도와 전남대는 현대과학으로 발효식품의 전통적인 맛을 재현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 동국장은 그렇게 해서 수백년 만에 복원됐다.

노력에 대한 평가였는지 한 명인은 2010년엔 전통식품 명인 40호로 지정됐다. 동국장만이 아니다. 한 명인은 “전통 음식을 그대로 살려 장류와 장아찌 등 우리 고유의 전통 음식을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200종류에 달하는 전통 음식은 귀빈식품에서 판매된다. 동국장은 지난해 11월 한·미 정상회담 만찬 식탁에 반찬으로 올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애호하는 생선 요리인 가자미구이와 함께 한 명인의 ‘동국장 맑은국’ 등이 식탁을 채운 것이다.

한 명인은 “동국장으로 전통 한식의 깊은 맛을 청와대 만찬에서 전할 수 있어 큰 영광이었다”며 “조상들이 여러 분야에서 나라를 위한 것처럼, 나도 좋은 음식을 만들어 전통문화 유지에 공헌하고 싶다”고 밝혔다. 한 명인은 대선후보 시절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 햄버거 점심이라도 하겠다”고 했던 말을 언급하며, “다음에 남북 정상회담이나 북·미 정상회담에서 동국장이 긴장 완화의 소재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한 명인은 “느린 숨, 깊은 발효 등을 가능하게 하는 우리 전통의 맛을 우리 한국인들이 몰라주는 게 안타깝다”고 아쉬워했다. 한 명인은 높은 재료가격 등 전통식품이 처한 열악한 환경에도 눈을 돌렸다. 절임배추 등 국내 김치는 중국산보다 값이 비싸 식당 등에서 밀려나는 현실에 한 명인이 안타까워했다.

요즘 한 명인은 동국장을 만들 수 있는 전통 음식 명인의 단절을 방지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남1녀를 둔 한 명인은 외동딸 박홍령(48)씨를 후계자로 지정했다. 딸이자 후계자인 박씨는 매일 한 명인의 옆에서 동국장 제조법과 마음가짐을 배운다. 어머니가 복원한 동국장의 맛을 더 많은 이에게 알리는 일도 돕는다.

두 모녀는 식품명인 제도에 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식품명인은 전통식품 활성화를 위해 지정한다. 한 명인은 “식품명인 난립 방지책 마련과 홍보 강화, 후계자 양성 지원이 부족하다”며 “식품명인의 의견을 더 청취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전통식품 명인으로 지정되면 정부로부터 시설과 포장 개선, 전시·박람회 개최, 기능 전수를 위한 연구·교육과 도서발간 지원, 장려금 지급 등의 지원을 받는다. 일각에서는 실질적인 지원책이 없다는 의견이다. 한 명인은 “식품명인 지정 제도는 긍정적인 측면이 강하지만, 실질적인 지원책은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대부분 소규모로 운영되는 식품명인들의 자긍심 고취를 위해서는 보다 체계적인 후계자 양성과 제조비법 전수를 돕는 정부의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게 한 명인의 생각이다.

해남=한승하 기자 hsh6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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