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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쉼없이 울부짖는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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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1-12 10:00:00 수정 : 2018-01-10 20:2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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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양양, 겨울바다 이야기 / 돌처럼 꿈쩍않던 임의 마음에 몰아쳤다가… 온갖 걱정과 잡념을 쓸어갔다가… 가슴을 훑어내는 거친 파도소리 그립다
모든 곳이 가까워지고 있다. 산을 굽이굽이 돌아가며 아래를 내려다보면 절벽이 이어지는 산길 대신 논밭을 가르며 곧게 뻗은 도로가 놓였다. 산을 휘돌아 가던 철길은 산을 뚫고 만든 터널을 통과해 곧장 바다로 향한다. 이전보다 길이 잘 닦여 참 편하게 목적지까지 갈 수 있게 됐다. 목적지에 도달하는 시간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줄었다. 하지만 목적지까지 꼭 빨리 가야 하는 여정만이 정답은 아닐 것이다. 

시간은 좀 더 걸리더라도 멀미를 유발할 정도로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며 만나는 예상치 못한 풍광이 때로는 더 큰 감동을 던져준다. 그간 여정의 피곤함을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다. 남들은 목적지에 빨리 가겠지만,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한 풍광을 만났다는 쾌감도 무시 못한다. 서울에서 강원 양양까지 고속도로가 뚫린 후로 막히지 않으면 광화문에서 2시간30분 정도면 도착한다. 과거 국도를 타고 4∼5시간 걸렸던 것과 비교하면 절반 가까이 시간이 줄었다. 속도의 매력은 크다. 고속도로가 개통하기 전 양양을 가려면 타고 넘던 한계령은 이제 가을 단풍철에만 반짝 붐비는 길이 돼버렸다.
산을 타지 않고, 차로 설악산 한계령만 지나도 겨울 설악산 매력을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다. 하늘을 찌를 듯 삐죽빼죽 뻗은 독특한 형태의 설악산 봉우리들이 구절양장처럼 꼬인 산길을 타고 온 여행객을 맞는다.

매서운 겨울 바람을 맞으며 한계령휴게소에서 차 한 잔을 마시며 뿌연 창문으로 바깥 풍광을 바라보던 추억도 나이 지긋한 이들의 옛 기억으로만 남을 듯싶다. 한겨울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산을 탈 필요는 없다. 차로 한계령만 올라도 겨울 설악산 매력을 느끼기엔 부족하지 않을 듯하다. 하늘을 찌를 듯 삐죽빼죽 뻗은 독특한 형태의 설악산 봉우리들이 구절양장처럼 꼬인 산길을 타고 온 여행객을 맞는다. 한계령휴게소에서 한숨을 돌린 뒤 올라올 때보다 더 굽이치는 산길을 타고 내려가면 동해다. 우리나라에서 풍광으로는 최고로 꼽히는 설악산의 절경을 마주한 후에는 푸른 바다와 기암괴석들이 어우러진 최고의 해안 풍광이 이어진다. 몸은 힘들지언정, 눈이 호강하는 드라이브 코스로는 제격이다.
 
◆44번 국도를 타고 겨울 설악산을 넘다

서울에서 양양고속도로를 타고 갈 때 동홍천IC에서 빠져나와 국도로 갈아탄다. 양양까지 곧게 이어진 길을 빠져나오면 왕복 2차선, 4차선이 반복되는 44번 국도다. 길을 따라 강원 인제를 지나다 보면 한계 교차로가 나온다. 왼편은 속초로 빠지는 미시령이고, 오른편이 한계령으로 향하는 길이다. 주위로 보이던 논밭의 풍광은 옥녀1교를 지나면서부터 확연히 달라진다. 강원도 고개의 진면목을 만나게 된다. 그나마 초입은 굴곡이 심하진 않은 편이다. 옥녀탕을 지나 장수대휴게소서 잠시 숨을 고르자. 해발 1519m의 가리봉과 그 반대편 대승폭포 방향으로는 1210m의 대승령이 솟아 있다. 이제부터 길들이 굽이치기 시작한다. 하지만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더 낫다. 그만큼 설악산의 위용을 조금이라도 더 감상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길을 오르면 영동과 영서, 내설악과 남설악의 분기점인 해발 1004m의 한계령에 이른다. 인제와 양양을 구분하는 경계지점으로 한계령휴게소가 있다. 통일신라 말기 마의태자 일행이 망국의 설움을 안고 경주를 떠나 방랑길에 올랐고, 지금 한계리에 도착한 때는 추위와 눈보라가 몰아치던 한겨울이었다. 그래서 ‘한계령(寒溪嶺)’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한계령휴게소는 서울월드컵경기장, 88 서울올림픽 체조경기장, 부산사직야구장 등을 설계한 건축가 류춘수의 작품이다.
설악산 한계령휴게소의 오색령 표지석. 인제에선 이곳을 한계령, 양양에선 오색령으로 부른다.

휴게소에서 양양 쪽으로 전망대가 있다. 설악산 기암 봉우리들이 이루는 장엄한 절경에 눈을 떼지 못한다. 설악산 절경 외에 휴게소 건물도 예사롭지 않다. 서울월드컵경기장, 88 서울올림픽 체조경기장, 부산사직야구장 등을 설계한 건축가 류춘수가 설계했다. 이 휴게소 건물로 그는 1982년 한국건축가협회 대상을 받았다.

휴게소에 서있는 오색령 표지석에도 눈길이 간다. 인제에선 이곳을 한계령, 양양에선 오색령으로 부른다. 한계령의 옛 이름이 오색령이었는데, 1970년대 당시 이 지역 군단장이었던 김재규의 주도로 도로 확장 공사를 하면서 한계령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후 가수 양희은이 부른 ‘한계령’ 등의 영향으로 오색령보다는 한계령에 더 익숙해졌다.

휴게소부터 양양까지 가는 길은 내리막이다. 오르막길보다 굴곡도 더 심하다. 오르막보다는 내리막이 시야는 더 낫다. 경치 감상을 하며 내려오면 어느덧 상점들이 보이며, 오색약수에 이른다. 오색이란 이름은 마을에 다섯 빛깔의 꽃이 피는 나무가 있어 생겨났다고 한다. 오색을 지나면 국도는 양양 시내로 이어진다.

◆7번 국도를 타고 겨울바다와 만나다

양양 시내까지 이어진 44번 국도는 동해와 가장 인접한 7번 국도와 만난다. 이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오르면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낙산사를 만난다. 2005년 산불로 거의 전소한 사찰이다. 대웅전 격인 원통보전이 불타고, 보물로 지정된 조선시대 동종이 녹아내려 처참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복원됐다. 오래된 건축물이라면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겠지만, 대부분 건축물이 새로 지어지고, 도색해 선명함과 생생함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강원 양양 낙산사는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지만 2005년 화재로 거의 전소했다. 대부분 건축물이 새로 지어지고, 도색해 선명함과 생생함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원통보전 정면의 7층 석탑은 화마에도 굳건히 버틴 얼마 되지 않는 흔적 중 하나다.
원통보전 정면으로 칠층석탑이 있다. 이 탑은 창건 당시 3층이던 것을 조선 세조 13년(1467) 때 7층으로 높였다. 화마에도 굳건히 버틴 얼마 되지 않는 흔적 중 하나다. 화재 후 복원된 원통보전 담장은 세조가 낙산사를 중창할 때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기와와 흙을 차례로 쌓고 곳곳에 원형 단면의 화강암을 넣었다. 조선시대 사찰의 대표적인 담장으로 평가받는다.

원통보전 부근은 화재로 대부분 탔지만, 걸어서 10여분 정도 걸리는 해수관음상과 의상대, 홍련암 등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

높이 15m, 둘레 3m 정도의 거대 불상 해수관음상의 시선은 의상대와 홍련암으로 향한다. 주변 해안이 독특하고 경관이 아름다운 의상대와 홍련암 일대는 명승으로 지정돼 있다. 해안 절벽 위에 세워진 홍련암은 의상대사가 붉은 연꽃 속 관음보살을 봤다고 해서 유래한 이름이다. 거센 파도가 치면 암자에 들이칠 정도로 바다 가까이 있어 홍련암에선 파도소리가 바닥을 울리며 몸으로 전해진다.
해수관음상이 있는 전망대에서 바라본 의상대.
의상대사는 관음보살을 만난 해안 절벽 위에 의상대를 지었다고 한다. 지금의 의상대는 1925년 만해 한용운이 낙산사에서 머물면서 해돋이를 보기 위해 복원한 것이라 전해진다.
해안 절벽 위에 세워진 홍련암은 의상대사가 붉은 연꽃 속 관음보살을 봤다고 해서 유래한 이름이다. 거센 파도가 치면 암자에 들이칠 정도로 바다 가까이 있어 홍련암에선 파도소리가 바닥을 울리며 몸으로 전해진다.

의상대 또한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을 만난 해안 절벽 위에 지었다고 한다. 지금의 의상대는 1925년 만해 한용운이 낙산사에서 머물면서 해돋이를 보기 위해 복원한 것이라 전해진다. 의상전시관에서는 의상대사와 낙산사에 얽힌 이야기뿐 아니라 녹아내린 동종 등 낙산사 화재 당시 흔적도 전시돼 있다.

낙산사에서 7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차를 타고 20분 정도 가면 하조대다. 조선의 개국공신 하륜과 조준의 성을 따와 이름 붙인 누각으로 동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명소 중 한 곳이다. 누각 자체보다 하조대에서 바라보는 기암절벽이 장관이다. 기암절벽 위 소나무 한 그루는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하듯 우뚝 서있다. 하조대 건너편의 무인등대도 바다를 조망하는 데 더할 나위 없는 곳이다.

하조대에서 나오는 길 중간에 차를 세우고 바다를 바라보면, 양양의 특징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푸른 바다와 기암괴석 위 하조대전망대가 서 있고, 그 뒤로 설악산이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뛰어난 풍광의 바다와 산을 품고 있는 양양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강원 양양은 푸른 바다와 기암괴석들이 어우러진 최고의 해안 풍광을 품고 있다. 하조대, 의상대 등 풍광이 좋은 곳도 있고, 강원도에서도 아름다운 항구 중 하나로 꼽히는 남애항 등 다양한 모습이 있어 눈이 호강하는 드라이브 코스로는 제격이다.

하조대에서 지척에 38선휴게소가 있다. 작은 등대가 있는 기사문항과 조도라 불리는 작은 섬이 바다 풍경을 아름답게 꾸며준다.

양양 현북면 잔교리에 있는 38선휴게소는 이름 그대로 한국전쟁 발발 전 남북이 갈라진 위도 38도에 위치해 있다. 당시엔 낙산사, 하조대 등이 38선을 경계로 북한 땅이었다. 이곳은 1950년 10월 1일 국군이 38선을 통해 최초로 북진을 한 곳이다. 이날을 기념해 현재 국군의 날이 10월 1일로 제정됐다.
양양 현북면 잔교리의 38선 표지석.
휴게소에서 마을 쪽으로 들어오면 38평화마을이다. 마을 가운데로 폭 2∼3m에 불과한 하천이 흐르는데, 38선 분단 시 하천을 중심으로 마을이 남북으로 갈라졌다. 같이 어울리던 마을 주민이 하루아침에 북한, 남한으로 나뉜 것이다. 하천 남쪽에 있는 우체부 조형물 등은 한 마을이었지만 분단 후 북한으로 편입돼 주민들이 편지 등 연락을 취할 수 없는 상황을 의미한다.

지어진 지 10여년 정도 된 휴휴암도 들를 만하다. 쉬고 또 쉰다는 뜻을 지닌 이 암자에선 연화대라 불리는 너럭바위, 거북의 모습을 한 거북바위, 발가락과 주먹을 닮은 발가락바위 등 오랜 세월 파도에 깎인 특이한 형태의 바위들을 둘러보는 맛이 있다.
휴휴암의 연화대라 불리는 너럭바위.
휴휴암 거북바위.
남애항은 항구 너머로 설악산 줄기가 병풍처럼 버티고 서 있어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영화 ‘고래사냥’의 촬영지다.
동해에서 포구를 둘러보는 맛도 빼놓을 수 없다. 강원도에서도 아름다운 항구 중 하나로 꼽히는 남애항이 근처다. 삼척 초곡항, 강릉 심곡항과 함께 강원도의 3대 미항으로 알려져 있다. 항구 너머로 설악산 줄기가 병풍처럼 버티고 서 있어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이 풍광은 빨간 등대가 있는 방파제에서 볼 수 있다. 특히 남애항은 30여년이 흘렀지만 명성이 여전한 영화 ‘고래사냥’의 촬영지다. 가수 송창식이 부른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한겨울 추위에도 양양 바다에서 파도를 타는 서퍼. 양양은 국내 서퍼들의 명소로 자리잡았다.
양양에서 푸른 바다와 설악산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이때나 지금이나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 자유로움을 느끼고 싶을 때 찾고 싶은 곳이 양양인가 보다. 한겨울 추위에도 양양 바다에서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바로 서퍼들이다. 날씨도 개의치 않고 해안으로 밀려드는 파도를 이용해 보드를 타는 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겨울을 잠시 잊게 된다.

양양=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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