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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고리 이제 끊자] 사실상 보호자 없는 아이 5천명… 지원책은 쪼개져 ‘밑빠진 독’

입력 : 2018-01-10 06:00:00 수정 : 2018-01-10 16:5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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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정책서 소외된 요보호 아동 / 모든 학대 불씨는 ‘가정 불화’… 아동학대·이혼·미혼부모 가정이 70% / 90% 보육시설 등 보내… 나머지는 입양 / 성인돼서도 경제·정서적 불안 시달려 / “보편적 아동복지정책 필요” / 정작 지원 필요한 아이들 소외된 채 9월 아동수당 도입… 사각지대 여전 / 전문가 “땜질보다 통합적 정책 필요”
우리나라 아동학대 대응체계에 큰 변화를 가져온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2014년 제정·시행된 계기는 전년도 울산시 울주에서 발생한 ‘서현이 사건’이었다.

“소풍을 가고 싶다”고 말한 8세 여아가 계모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해 갈비뼈가 부러지며 숨진 사건이었다. 다른 아동학대 사건처럼 묻히는 듯했지만 인터넷에서 ‘하늘로 소풍 간 아이를 위한 모임’이 결성됐고 이후 법원 앞 1인 시위, 법 제정 탄원서 제출, 진상조사·제도개선 위원회 출범 등의 과정이 이어지며 공론화와 함께 제도 개선으로 ‘열매’를 맺었다.

2015년 12월 말에 전국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진행된 장기결석 및 미취학 아동 전수조사는 ‘인천 여아 맨발 탈출 사건’이 결정적인 방아쇠가 됐다. 세탁실에 갇혀 있던 박양(당시 11세)이 맨발로 가스 배관을 타고 탈출해 인근 슈퍼마켓에서 과자를 훔쳐 먹다가 주민 신고로 구조된 사건이었다. 조사 결과 아버지와 계모는 카드빚에 시달려 모텔을 전전한 탓에 박양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감금한 채 굶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 밖에 계모가 3개월간 화장실에 가둔 아이가 옷에 대변을 봤다는 이유로 옷을 벗기고 찬물을 부어 방치해 숨지게 한 ‘원영이 사건’, 아버지와 계모의 폭행으로 숨진 여중생 시신이 11개월 만에 미라 상태로 발견된 ‘부천 여중생 사망 사건’, 최근 아버지와 내연녀 및 내연녀 모친 등이 연루된 ‘준희 사건’에 이르기까지 사회를 놀라게 이들 사건의 공통분모는 가정파괴가 아동 학대 및 사망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겉으로는 아동학대 사건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 이면에는 이혼이나 가정불화, 경제난, 실직, 정신건강 등 다양한 가정 문제가 작용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방치하면 학대피해 아동이 이혼 가정과 아동복지시설을 맴도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저출산 심각한데 매년 수천명 버려져

9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6년 발생한 요보호아동은 총 4592명이다. 2012년 6926명에서 2015년 4503명으로 줄어드는 듯했지만 다시 늘었다. 요보호아동이란 보호자가 없거나 보호자로부터 이탈된 아동, 보호자가 아동을 양육하기에 부적당하거나 양육할 능력이 없는 경우의 아동을 뜻한다.

요보호아동의 발생원인을 살펴보면 아동학대가 1540명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이 부모 이혼 등 906명, 미혼부모 가정 856명으로 이 3가지가 70% 이상을 차지했다.

이밖에 △비행·가출·부랑 314명 △부모 빈곤·실직 290명 △부모 사망 286명 △유기 264명 △부모 질병 126명 등이 뒤를 이었다. 요보호아동 발생원인 중 학대나 가출, 부랑, 유기 등의 항목을 다시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결국 부모 이혼이나 빈곤·실직, 질병 등이 대표적으로 작용한다.

이렇게 발생한 요보호아동의 60%는 보육시설로 보내지고 30% 정도는 가정위탁, 나머지는 입양 수순을 밟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번 요보호아동 체계에 편입된 아동은 좀처럼 가정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탓에 ‘퇴소청소년’의 낙인이 찍힌 채 사회에 내몰린다. 부모와 가정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어린 시절로 인해 성인이 돼서도 경제적·정서적 불안을 떠안고 살아가는 셈이다.

A지역의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요보호아동 등 각종 복지 사각지대 문제가 대두될수록 큰 틀에서 통합적인 복지정책 수립 및 시행이 필요한데, 분야별로 너무 쪼개져 있다 보니 예산과 인력을 아무리 투입해도 그에 대한 효과가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땜질식’ 탈피해 보편적 아동정책 필요

상황이 이렇지만 아동학대의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원인과 직결된 요보호아동은 국가 정책 전반에서 아직도 소외되고 ‘사각지대 땜질’에만 치중하는 모습이다.

올해 9월부터 지급하는 아동수당 또한 이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아동수당은 아동을 양육하는 모든 가정에 지급하는 ‘보편적 아동복지’의 대표적인 정책이다.

주요 선진국의 상황을 살펴보면 요보호아동 및 미혼모, 한부모, 조손 가정 등 아동복지와 관련한 복지 사각지대 문제를 해결한 뒤에 아동수당이 도입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전반적인 불평등이 어느 정도 해결된 뒤에 모두에게 추가로 얹어지는 정부의 지원이기 때문에 정책 효과가 모든 가정에 비교적 골고루 돌아가는 셈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정반대 상황으로 치달았다. 아동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정책 마련은커녕 전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동수당이 먼저 도입된 셈이다. 새 정부가 야심차게 밀어붙였지만 이마저도 상위 10%가 제외돼 ‘최초의 보편적 복지’ 타이틀은 저만치 물 건너가고 말았다. 아동이라면 누구나 혜택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복지 수혜의 대상을 정하고 재단해야 한다는 시각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

숭실대 노혜련 교수(사회복지학)는 “아동학대는 학교폭력, 가정폭력 등 다른 사회문제와 마찬가지로 그 자체의 문제도 심각하지만 다양한 가정·사회 문제와 얽혀 있다는 점에서 더 큰 틀의 해결책이 필요하다”며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 없이 처벌만 강화한다면 아동학대를 더 드러나지 않게 숨기는 폐해만 발생할 것”고 지적했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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