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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규칼럼] 남북회담,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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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1-08 21:25:48 수정 : 2018-01-08 21:2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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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판문점 고위급회담 개최/北 올림픽 참가·남북관계 논의/한반도 비핵화 향한 출구 열려면/원칙을 세워 정책 실효성 높여야 고대 이탈리아 반도에서 로마와 라티움 간 전쟁 위기가 고조됐을 때의 이야기다. 라티움인들은 로마 측 요구에 따라 사절단을 보내기로 하고 사절단이 로마에 어떤 말을 할지를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라티움의 집정관 안니우스 세티누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사태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가 무슨 말을 해야 하는가보다도 오히려 무엇을 해야 하나를 생각하는 것이오. 무엇을 실행해야 하느냐는 배짱만 정하면 거기에 나가서 말을 맞춰 나가기란 지극히 간단한 일일 것이오.”

로마 역사가 티투스 리비우스가 남긴 ‘로마사’의 한 구절이다. 후대의 이탈리아 정치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로마사 논고’에서 안니우스의 말을 “참으로 적절한 조언”이라고 평가했다. “앞으로 실행하려 하는 일의 내용이 애매하고 불명확한 경우에는 그것을 말로 표현하려고 해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일단 결심해야 할 일을 결정해 버리면 거기에 적용되는 말을 찾기란 쉬운 일이다.”

박완규 수석논설위원
마키아벨리가 하고자 한 말은 “약한 국가는 항상 우유부단하다. 결단을 내리는 데 시간을 끄는 것은 항상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약한 공화국은 무슨 일이든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설사 어떤 방침을 세웠다 하더라도 이는 스스로 정했다기보다 필요에 의해 강제로 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지도자가 결단을 내리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다.

오늘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남북 고위급회담이 2년여 만에 처음 열린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평창동계올림픽 참가와 남북회담 재개 용의를 밝힌 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게 추진됐다. 우리 정부의 고위급회담 개최 제의, 판문점 연락채널 복원, 한·미 연합군사훈련 연기, 북한의 고위급회담 제안 수락, 남북한 대표단 명단 통보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남북한이 사전에 짜놓은 각본대로 움직이는 듯이 전례 없는 순발력을 보였다. 남과 북의 최고지도자가 직접 챙기니 이처럼 속도를 낼 수 있었을 것이다.

회담에서는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와 남북관계 현안들이 논의된다.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 협의는 순조로울 것이지만, 그 외에는 어느 것 하나 간단한 사안이 없다. 북한은 ‘핵무력 완성’ 선언 후 열리는 이번 회담에서 예전과는 분명히 다른 태도를 보일 것이다.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위세를 부리면서 한·미 연합훈련 중단이나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 등을 요구할지도 모르지만, 한·미동맹과 대북제재를 감안하면 실현 불가능하다. 우리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과 남북 군사회담 개최 등을 제의할 것이다. 북핵문제도 의제로 삼아야 한다. 남북관계 개선과 북핵문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안인 데다 ‘핵무력 완성’ 선언 후 북측 입장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아볼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이러니 회담 결과를 낙관하기 어렵다. 우리 정부는 이번 회담에서 치밀하게 전략적 대응을 해야 한다. 북한이 김 위원장 신년사에서부터 주도면밀하게 계산된 행보를 보이는 데 비추어 그에 걸맞은 대처를 해야 할 것이다. 예상되는 북측 요구사항에 대해 세밀한 시나리오별 대응방안을 세워두었을 것으로 믿는다. 남북회담이 자칫 북측 의도대로 진행되거나 만에 하나 결렬되면 한반도 안보 정세에 먹구름을 몰고 올 것이다. 이번 회담에선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에 집중하고 나머지 현안에 대해선 상대방 의견을 경청한 뒤 후속회담 개최에 합의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전문가들의 권고에 귀기울여야 한다.

정부가 북핵문제에 단호한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주 대한노인회 간부들과 만난 자리에서 “과거처럼 유약하게 대화만 추구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게 우리 대표단이 남북회담에 임하는 자세여야 한다. 안니우스의 말을 유념할 때다. 무엇을 말할지가 아니라 무엇을 할지가 중요하다. 그것을 정해야 원칙을 확고히 세워 정책의 실효성과 일관성을 높일 수 있다.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한반도 비핵화로 향하는 출구를 뚫으려면 반드시 그래야 한다.

박완규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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