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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덕에 근대국가 도약한 日… 침략에 주저함이 없었다

입력 : 2018-01-06 03:00:00 수정 : 2018-01-05 19:2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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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 요코 지음/윤현명·이승혁 옮김/서해문집/1만8000원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가토 요코 지음/윤현명·이승혁 옮김/서해문집/1만8000원


근대 일본은 전쟁을 통해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독립적인 근대 국가를 건설하는 데 성공했다. 일본이 일으킨 전쟁들은 막대한 피해를 낳은 잔인하고 비인도적인 침략전쟁이었다. 하지만 전쟁 덕분에 제국주의 경쟁 체제에 후발 주자로 편입돼 세계의 패권을 다툴 수 있게 됐다.

신간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는 근대 일본의 흥망성쇠를 전쟁을 통해 바라본다. 책은 근대 일본이 강대국과 벌인 첫 전쟁인 청일전쟁(1894~1895)부터 러일전쟁(1904~1905), 1차 세계대전(1914~1918), 만주사변(1931~1932)·중일전쟁(1937~1945), 태평양전쟁(1941~1945)까지 다섯 차례의 큰 전쟁을 재조명한다.

저자는 일본의 저명한 역사학자인 가토 요코 도쿄대학 교수로, 당시 상황을 증언하는 일본, 중국, 서구의 많은 인물과 새로 발견된 최신 사료, 연구 결과를 두루 참조한다.

독일 군사사상사 카를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정치적 수단과는 다른 수단으로 지속하는 정치”라고 말했다. 일본이 꼭 그랬다. 전쟁은 일본이 근대 국가를 만들고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주요한 정치수단이었다. 그래서 침략에 주저함이 없었고 잔혹성을 쉽게 정당화할 수 있었으며, 유리할 때도 불리할 때도 멈추지 못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중국으로부터 2억 냥의 배상금과 함께 대만, 랴오둥 반도, 펑후 제도 등을 할양받고 조선을 세력권에 편입시켰다. 뒤이은 러일전쟁에서의 승리는 만주 진출, 한국 병합과 함께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지위를 한 단계 더 끌어올렸다. 일본은 러일전쟁을 계기로 과거 열강들과 맺은 불평등조약을 바로잡고 비로소 서구의 지배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일본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승전국으로서 산둥반도의 옛 독일의 권익과 적도 이북의 독일령이던 남양군도를 얻었다. 1차 세계대전 후 결성된 국제연맹에 상임이사국으로 참여하며 제국주의 국가로서 면모를 갖췄다. 하지만 지속적인 세력 확장은 미국 등 열강의 견제를 받게 했고 이는 갈등의 불씨를 낳았다. 뒤이은 중일전쟁에서 고전하던 일본은 결국 독일, 이탈리아와 삼국동맹을 맺고 1941년 12월 하와이 진주만에 대한 기습공격을 감행함으로써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태평양전쟁 직전 미국의 국민총생산은 일본의 열두 배에 가까웠다. 이를 알면서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고, 아래위 모두가 속전속결이라면 승산이 있다는 환상에 매달렸다.

저자는 일본 내에서 지금까지 전쟁 책임 문제가 충분히 논의되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우리에게는 천황을 포함해 당시의 내각, 군 지도자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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