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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원칼럼] ‘정조 탕평’ 돌아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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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1-04 22:29:36 수정 : 2018-01-04 22:2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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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벌과 색목을 가리지 말라”
탕평이 사라진 정치
들끓는 현대판 당쟁
국민의 힘은 무엇으로 모으나
탕평(蕩平). 싸움·시비·논쟁에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역사적인 의미는 좀 다르다. 씻을 탕, 평평할 평. 과거 행적과 원망을 씻어 차별을 두지 않는다는 뜻을 갖는다. 탕탕평평. 씻고 또 씻어 절대 차별하지 않음을 강조한 말이다.

정조대왕. 사화와 끝없는 당쟁에 난장판이 된 정치를 다시 일으켰다. 무슨 힘으로 일으켰을까. 탕평이 그 힘이다. 본립도생(本立道生). 근본을 바로 세우면 도(道)는 저절로 움튼다. 나라의 근본인 정치를 바로 세우는데 위민(爲民) 정신이 사그라들 턱이 없다. 틀에 박힌 주자학적 사고를 벗어나 개혁을 부르짖는 실학이 꽃핀 것은 이런 역사를 배경으로 한다.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외친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정약용…. 걸출한 인물이 쏟아진 것은 바로 이때다. ‘예송 논쟁’이나 벌이던 이전 시대와는 달랐다. 정조의 시호 뒤에 ‘대왕’ 호칭을 붙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강호원 논설위원
‘정조 탕평’의 씨앗은 무엇일까. 세자 때 홍대용과 가진 경연(經筵)에서 싹을 보게 된다.

세자는 말했다. “함양(涵養)과 치지(致知·지극한 이치를 깨달음)를 구하지 않고 오로지 중(中)만 생각하면 전국시대 자막처럼 ‘융통성 없는 중’이 되지 않을지 어찌 알겠는가.”

홍대용의 대답, “함양 공부가 없으면 치지도 정밀하지 못하옵니다. 학문과 사업은 반드시 함양을 근본으로 삼아야 하옵니다.”

함양은 퇴계 이황이 으뜸으로 꼽은 수양 덕목이며, 치지는 ‘대학’의 격물치지(格物致知)를 이르는 말이다. 자막은 융통성 없기로 소문난 노나라 사람이다. 홍대용은 대단한 선비였다. 청 연경에 갔을 때에는 절강성 선비들이 나이 어린 그를 형으로 모실 정도였으니. 정조는 더 대단하다. 조선 역사에서 이런 대화를 나눌 세자는 몇이나 될까. ‘호학(好學) 군주’ 정조의 싹은 달랐다.

정조의 탕평은 어땠을까. 노론 벽파의 우두머리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임금의 편지)에 일말이 드러난다.

정조 21년, 1797년 1월17일 이명연 상소 관련 어찰. “말이 과한 것은 내가 듣기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기에 그러한 것인가. 그렇다면 말이 옳은지 여부를 떠나 축하할 일이지 어찌 탄식할 일인가.”

7월6일 어찰. “작은 고을이라고 충의롭고 신의 있는 선비가 어찌 없겠는가. 문벌의 고하와 색목(色目·당파)의 동서(東西)를 따지지 말고 오직 인망으로써 뽑으라.”

12월19일 어찰. “경상도에서는 남인을 거두어 쓰는 것이 어떠한가. 초사인(初仕人·처음 관직에 나선 사람)은 시패(時牌)와 벽패(僻牌)를 섞어 쓰고….” 시패는 노론 시파, 벽패는 노론 벽파를 이르는 말이다. 정약용은 남인이었다.

훌륭한 인재를 두루 뽑아, 열심히 듣고, 세도를 조정하는 정치. 그것이 정조 탕평이다.

문재인 대통령. 7∼8개월 전 탕평 구호는 요란했다. “대탕평 인사를 하겠다”, “정조대왕처럼 할 것”이라고 했다. 국무총리 후보자를 지명한 뒤에는 “탕평 인사의 신호탄”이라고 했다.

지금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캠코더 인사’. 청와대 비서진 인사는 그렇다 치고, 내각 인사, 공공기관장 인사, 심지어 해외공관장 인사에서도 이 말은 어김없이 따라붙는다. 병역 면탈·부동산 투기·세금 탈루·위장 전입·논문 표절자는 뽑지 않겠다던 5대 인사원칙. 온데간데없다. 인사청문회에 선 인사치고 이에 해당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도덕성? 과거 정부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전문성? 논공행상이 판을 친다.

생각은 얕고 말은 가볍다. 대통령의 생각이 그런 걸까, 주변 인물의 생각이 그런 걸까.

요란한 적폐 청산 구호. 사회 곳곳에 쌓인 적폐가 하나둘이 아니건만 검찰이 칼을 대는 적폐는 하나같이 과거 정부의 먼지를 털고 족쇄를 채우는 일이다. 적폐? 작명 솜씨가 돋보인다. 원망을 씻어 차별을 두지 않는 탕평에 가까운 정치일까. 거리가 멀다.

나라는 위태롭다. 적대 세력은 사방에 들끓는다. 어찌해야 할까. 힘을 모아야 한다. 힘은 탕평으로 모으는 것이 아니던가. 탕평을 외치면서 행동은 당파 우두머리처럼 한다면 국민은 무엇에 의지해 힘을 모으겠는가. 이런 식이라면 탕평을 입에 올리지 않는 편이 낫겠다.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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