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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종교, 이대론 안돼”… 개혁 움직임 꿈틀

입력 : 2018-01-02 20:36:02 수정 : 2018-01-02 20:3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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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개신교·천주교 개혁 추진위 발족 / “대다수 대중이 고통 속에 있음에도 / 안아주지도 길을 밝혀 주지도 못해” / “성직자·수행자들 타락 임계점 넘어 / 교인들 교회만 가면 똑똑한 바보 돼” / 부자세습·뒷거래·타종교 비방 비판
국내 원효 탄신 1400주년, 루터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해 ‘불교, 개신교, 천주교 종교개혁선언 추진위원회’를 결성하는 등 개혁운동에 나섰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2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불교 개신교 천주교 종교개혁선언 추진위원회’ 발족식 모습이다.
가톨릭뉴스 제공
종교개혁을 위한 행동이 태동하고 있다. 지난 한 해 국내 기독교계에선 500년 전 마르틴 루터의 목숨을 건 행동을 본받으려는 시도가 있었다. 아직 주류 교단과 목회자들이 외면하고 있어, 본궤도에 오르기까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움직임들이 서서히 표면으로 드러나고 있다. 종교개혁 활동가들은 “결국 종교개혁이란 도화선을 어떻게 이끌어내는가에 달려 있다”고 했다.

지난달 2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불교 개신교 천주교 종교개혁선언 추진위원회(추진위)’가 발족했다. 추진위는 원효 탄신 1400주년, 루터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해 종교개혁을 선포하는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추진위는 선언문에서 “대다수 대중이 고통 속에 있음에도 종교는 따뜻이 안아주지도, 길을 밝히지도 못하고 있으며, 성직자와 수행자들의 타락은 이미 종교를 유지할 임계점을 넘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각기 믿음은 다르지만 한목소리로 한국 종교의 개혁을 천명한다”고 밝혔다. 선언문에는 각 종단이 작성한 5가지의 실천사항이 담겼다. 추진위는 조만간 ‘불교·개신교·천주교 종교개혁 추진 공동연대’로 전환해 행동체제로 개편한다.

이 자리에 나온 소장 목회자들은 “앞서 1998년 소장파 목회자들이 중심이 된 ‘한국교회 개혁 선언’이 있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도 개혁은 실천에 옮겨지지 못했다”고 한탄하면서 실천적 행동으로 이어지길 촉구했다. 현재 뜻있는 기독교 목회자들과 사찰 주지 스님들은 간간이 모임을 이어오면서 행동에 옮길 준비를 하고 있다.

이런 행동들은 위기 의식에 따른 것이다. 국내 일부 종교집단의 행태는 종교에 대한 신뢰를 전체적으로 추락시키고 있다. 수천, 수만명 신도들을 거느린 어마어마한 규모의 초대형 교회는 대표적 사례다. 교회의 부자 세습도 이미 고착되었다. 수십억원 은사금이 나오는 교회에 가려는 목회자들의 뒷거래는 가관이다. 강단에서 타 종교를 비방하는 행위도 다반사다. 그럼에도 신도들은 모르는 체한다.

종교자유정책연구원 대표 류상태 목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특히 기독교인들이 집단 세뇌가 돼있어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다들 원시인이 됐다”고 통박했다. 류 목사는 “교회는 예수님을 정면으로 배반한 집단이다. 전문 분야에서는 똑똑하고 전문성을 발휘하는 교인들은 교회에만 들어가면 바보가 돼 바른말을 못한다. 무엇이 바른 것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종교개혁이란 단지 구호에 그쳤다는 점이 가장 아쉬웠다”며 “개혁에 대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안이나 계획 등 실천이 나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1517년 무렵 독일 비텐베르그 교회 문 앞에 95개조의 반박문을 붙인 장면을 상상한 그림.
교회 관계자들은 지금 종교적 상황이 1517년 무렵과 흡사하다고 해석한다.

당시 교황은 1000여년 가까이 유럽 교회와 정치권력의 정점으로 군림했다. 로마교황청은 추기경직을 사고팔면서 돈과 권력을 추구했다. 돈과 권력을 거머쥔 유럽의 왕가들은 제 입맛에 맞는 교황을 옹립하며 대립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이탈리아 메디치가가 대표적이다. 메디치가는 교황의 우선적 역할을 가문의 생존과 번영에 맞췄다. 교황이 금권정치와 족벌정치의 희생물로 전락한 것이다. 교황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상황에서 로마 교황청은 면벌부를 팔았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건설자금을 마련한다는 명분이었다. 이에 독일의 시골 수도사인 루터는 95개조 반박문을 교회 문에 붙여 가톨릭교회의 타락을 비판했다. 이는 소외된 민중들이 교황을 비판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루터는 소외 계층 불만 폭발의 도화선이 되었다. 루터가 한 일은 인쇄물의 제작 배포였다. 교황청과 논쟁 과정이나 종교 재판에 끌려나온 내용을 담아 민중에게 뿌렸다. 오늘날 개인 SNS를 통해 여론을 이끌어내는 형국과 유사했다. 종교 재판에 불려간 루터는 어눌하고 투박했지만, 그가 펴낸 인쇄물에서는 교황의 모순을 공박하고 믿음을 확신하는 종교개혁가로 그려졌다. 가톨릭의 한 성직자는 “루터는 500년 전 사람이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도 먹힐 수 있는 인물이다. 루터는 일반 민중과 지식인, 성직자의 동참을 이끌어내면서 판을 키웠고 종교개혁이라는 거대한 물결을 만들어냈다”고 평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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