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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워졌다 금세 식는 냄비체질 / 일 벌일 순 있어도 마무리 못해 / 건전한 시민의식에 건강한 사회 / 참여로 지속가능한 발전 이뤄야 대통령을 포함해 정치지도자들이 새해 희망과 다짐을 담은 신년사를 내놓았다. 그들은 신년사 작성에 공을 들였겠지만 새해 인사장을 받아든 느낌은 언제나 그렇듯이 예언가들이 새해 벽두에 쏟아내는 국운 전망만큼이나 공허하다. 지도자들의 신년사를 꼼꼼히 읽어본 국민은 또 얼마나 될까.

촛불로 세상이 바뀌고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문재인정부를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있다 해도 전임 정부와는 비교할 수 없다. “이게 나라냐”는 외침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함성이 만들어낸 정부이니 당연히 박근혜정부와 같을 수는 없다. 교수신문이 정한 ‘2017 올해의 사자성어’만 봐도 다르다. ‘사악함을 부수고 바름을 드러낸다’는 뜻의 ‘파사현정(破邪顯正)‘, 교수신문이 2001년부터 뽑은 역대 사자성어 가운데 최고의 ‘감탄사’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얼마만큼이나 실천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기대가 많은 쪽도 있고 실망이 많은 쪽도 있다. 새정부 최고의 슬로건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이다. 그렇게 완벽한 나라는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있을 성싶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런 사회를 만들려는 과정이지 결과가 아니다. 정부 의지에 국민의 힘이 모아진다면 ‘파사현정’의 대장정에 들어선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세계가 알아주는 한강의 기적을 이뤘으나 완성 아닌 미완에 그친 채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그 기적이 자칫 물거품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상대적 박탈·빈곤 같은 불균형이다. 무엇보다 지형이 한쪽으로 너무 기울어져 있다. 소득 상위 10%가 소득 하위 10%의 72배를 번다. 진보는 펄펄 나는데 보수는 진흙탕에서 구르고 있다. 경제는 일류인데 정치는 삼류이다. 이 같은 정의롭지 않은 결과는 불평등한 기회, 불공정한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각자가 앞만 보고 열심히 뛰어봐야 격차만 더 벌어질 뿐이다.

김기홍 논설위원
독일의 현대사는 대한민국만큼이나 구구절절하다. 나치 독재를 겪고 2차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 분단의 아픔까지 맛봤다. 마침내 라인강의 기적과 통일을 이루고, 나아가 과거사를 진심으로 반성하는 대국의 면모까지 갖춘 세계에서 가장 안정적인 국가로 자리 잡았다. 재건과 완성의 비결은 성숙한 민주사회의 역량 강화에 있다. 그들이 전후 복구 과정에서 심혈을 기울인 것은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합리적인 국가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곧 민주적인 시민을 양성하고 정치 참여를 고취시키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국가 예산을 지원받는 정치재단들과 각종 교육원, 노조, 시민단체가 앞장섰고 국민이 적극 호응했다.

우리에게도 민주주의 역량은 있다. 영화 ‘1987’이 재연한 30년 전 격동의 현장은 승리의 찬가로 가득찼지만 회한을 남겼다. 87년의 열정은 기대와 달리 지속가능한 사회진보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리고 30년 뒤 2017년 촛불광장도 뜨거웠지만 촛불시위의 결말을 가늠하기 어렵다. 순식간에 뜨거워졌다 금세 식어버리는 냄비 체질 때문일 수도 있다. 냄비 근성은 일을 저지를 순 있어도 마무리를 짓지는 못한다. 건전한 정신과 건강한 신체가 삶의 질을 높이듯이 성숙한 시민의식이 건강한 사회를 만든다. 갑질이 만연하고, 채용 비리가 횡행하고, 장애학생 엄마가 아이 교육을 위해 무릎을 꿇고, 안전사고와 재난에 허둥대는 것은 사회의 공공성과 신뢰, 참여의식이 결여됐기 때문이다.

집 앞 공용주차장의 주차질서가 눈에 띄게 나아졌다. 차 한 대가 주차장 두 개면을 차지하는 ‘무개념 주차’가 거의 사라졌다. 서로 다른 콘크리트 벽돌 모양으로 표시됐던 주차선이 흰색 페인트로 바뀐 뒤 생긴 변화다. 내가 보기엔 콘크리트 벽돌 무늬만으로도 주차선 구분이 분명했는데도 다른 사람들에겐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구청 입장에선 흰색 선을 그려넣은 것이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넛지 정책이었겠지만 운전자들의 참여가 있기에 주차장 풍경이 달라졌다. 시민의 참여는 우리 삶을 그렇게 조금씩 바꾼다.

김기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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