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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자 보는 사회의 삐딱한 시선… 또 한번 고통 주다

입력 : 2017-12-30 03:00:00 수정 : 2017-12-29 18:5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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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줄라 미국 북서부에 위치한 도시 미줄라는 몬태나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다. 인구 7만명의 이 도시에서 학생 수가 1만5000명에 달하는 몬태나대학교는 도시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친다. 몬태나대의 미식축구팀인 ‘그리즐리’는 미줄라 사람들의 자부심이다. 팬들은 자신들을 ‘그리즈 네이션’, 미줄라를 ‘그리즐리블’이라고 부를 정도다.

하지만 2010∼2012년 발생한 강간 스캔들로 팀의 명성은 흔들린다. 모두 ‘지인에 의한 강간’이나 ‘데이트 강간’ 등이다. 

미줄라/존 크라카우어 지음/전미영 옮김/원더박스/2만원
미국의 산악가이자 논픽션 작가인 존 크라카우어가 펴낸 ‘미줄라’는 그리즐리팀 선수들이 연루된 성폭력 사건을 조명한 책이다. 책은 미국에서 성폭행 피해여성의 80% 이상이 신고하지 않는다는 통계를 들며 ‘왜 많은 피해여성이 신고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대학생 앨리슨 휴거트는 그리즐리팀 소속이자 초등학교 때부터 친남매처럼 지낸 보 도널드슨에게 강간을 당한다. 휴거트는 도널드슨의 사과와 상담 치료를 받겠다는 약속을 믿고 신고하지 않았지만, 1년이 지나도록 도널드슨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주위에 거짓말까지 한다. 뒤늦게 휴거트의 신고로 체포된 도널드슨은 유죄를 인정하는 대신 형량을 협상하는 유죄협상에 나선다.

책은 강간 현장 당시의 상황부터 재판 과정, 그 이후의 일까지 당사자와 주변인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생생하게 재구성한다. 이 과정에서 강간 사건을 대하는 사회의 시선과 사법 시스템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검찰은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주변 사람들은 피해자를 비난한다. 유명한 그리즐리 선수와 자고 싶어하는 여자들이 줄을 선 만큼 강간할 이유가 없고 오히려 피해자가 거짓말을 하며 세상의 관심을 끌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가해자 측은 촉망받는 스타 선수의 ‘앞날’을 망치지 않기 위해 피해자에게 관대함을 요구하기도 한다. 피해자는 이런 사회적 시선에 다시 한 번 고통을 겪는다.

‘지인에 의한 강간’을 바라보는 사회의 태도는 성폭행 재판에 배심원으로 참여했던 여성의 말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솔직히 나는 사람들이 지인에 의한 강간에 관해 너무 모른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강간에 관한 구태의연한 관념이 지배적이었어요. 그런 사람들의 생각은 딱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어요. 덤불 속에 숨어 있던 낯선 사람이 갑자기 덮친다. 여성이 죽을 힘을 다해 저항하면 강간은 불가능하다.”

책은 강간 당시 상황까지 자세히 묘사하면서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육성 그대로 전한다. “강간범들은 피해자의 침묵을 이용해 책임에서 벗어난다. 자기 이야기를 밝히면서 그런 침묵을 깨는 것만으로도 피해자들은 강간범에게 강한 일격을 날릴 수 있다. (중략) 그들이 느끼지 않아도 될 수치심은 대개 고립 속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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