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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가 ‘사람이냐’고 물으면 / 인간이 증명해야 하는 현실 / 황금개띠의 무술년 새해 맞아 / ‘인간의 조건’에 묻고 답해 보라 인간이란 무엇인가. 예전엔 몇몇 철학자들이 던진 질문을 기계가 대신하는 세상이 도래했다. 사람들은 거의 눈치채지 못하고 있지만 이미 우리는 그런 환경 속에 살고 있다.

캡차(CAPTCHA)라는 정보통신 용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Completely Automated Public Turing test to tell Computers and Humans Apart’에서 앞글자를 따온 말이다. ‘사람과 컴퓨터를 판별하기 위한 자동 테스트’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컴퓨터 자판을 치는 사용자가 사람인지 기계인지 구분해주는 보안 기술이다.

사람과 컴퓨터를 구별하는 이유는 악의적 프로그램인 ‘봇(Bot)’을 차단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봇이 웹페이지에 침투하면 스팸 메시지를 대량으로 발송하거나 숫자와 문자를 임의로 입력해 비밀번호를 알아낼 수도 있다. 이런 나쁜 침입자를 방어하기 위해 사람만 풀고 컴퓨터는 못 푸는 문제를 내는 것이다. 찌그러진 문자, 왜곡된 숫자 등을 해독하게 해서 맞히면 사람으로 인정해주는 식이다.

컴퓨터의 인지 능력이 향상되다 보니 둘의 차이를 분간하는 일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인공지능(AI)의 발달로 머잖아 인간과 기계가 서로 사랑을 나누고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시대가 등장할 것이라고 한다. 기계는 사람을 닮아가고 사람의 심성은 쇳덩이처럼 변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양자의 간극이 좁아지면서 기계와 구별되는 ‘인간의 조건’이 과연 존재하는지, 회의를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단언컨대 사람은 기계와는 확연히 다르다. 인간에게는 고유한 존재의 조건이 있다. 믿음, 소망, 사랑, 양심, 희생, 용서, 참회와 같은 인간의 품성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기계도 사랑을 나눌 수는 있다. 하지만 AI의 섹스는 알고리즘에 따른 기계적인 반응이지, 인간의 정서적 교감과는 구분된다. 다툼과 화해로 여물어가는 사랑의 과정은 절대 따라할 수 없다. 기계는 과거의 데이터를 기억장치에 저장할 수는 있으나 애잔한 추억을 가슴에 품을 순 없다. 당연히 인간처럼 새해의 벅찬 희망을 꿈꿀 수도 없다.

배연국 논설실장
얼마 전에 발생한 서울 전농중학교 학생들의 선행은 인간과 기계를 판별하는 좋은 사례가 아닐까 싶다. 영하 11도의 최강 한파가 몰아친 11일 아침에 답십리시장에서 할아버지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때 등굣길의 중학생 셋이 발길을 멈추었다. 한 학생은 다가가 쓰러진 할아버지를 자신의 무릎 위에 눕힌 채 두 팔로 감싸 안았다. 옆에 있던 다른 학생은 패딩을 벗어 할아버지의 몸을 덮었다. 학생들은 할아버지가 의식을 회복하자 근처 집까지 업어서 모셔드렸다. 학생 중 한 명은 그날 기말고사가 있었지만 곤경에 처한 이웃을 외면하지 않았다고 한다.

고도의 지능을 가진 AI라면 어린 학생보다 더 능숙하게 구조할 수 있었겠으나 대처 방식은 달랐을 것이다. 속도와 성능 면에서 탁월했을지라도 거기엔 없는 것이 있다. 섭씨 36.5도의 체온이다. 프로그램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AI는 아무리 진화해도 할아버지를 가슴으로 따뜻이 끌어안을 수 없다.

황금개띠의 무술년 새해가 밝아온다. 개에게는 오덕(五德)의 품성이 있다고 한다. 오로지 주인만 따르는 ‘의리’에선 세상에 따를 자가 없다. 자기 몸을 낮추는 ‘겸손’, 주인의 눈빛까지 살피는 ‘공감’, 온몸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사랑’의 능력은 또 어떤가. 주인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희생’의 덕목까지 겸비하고 있다. 이런 개의 품성만 실천해도 ‘개만도 못한 사람’, 아니 ‘기계만도 못한 사람’이라는 소리는 듣지 않을 것이다.

일찍이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대낮에 등불을 들고 “어디 사람이 없소?”라며 아테네 거리를 돌아다녔다. 2천여년이 흐른 오늘, 우리는 컴퓨터로부터 “당신은 사람이오?”라는 질문을 받고 있다. 만물의 영장을 자처하는 인간이 자기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세상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기계문명 속에 기계적인 존재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스스로 인간인지를 묻고 답해야 한다. 당신은 지금 어떤 답을 준비하고 있는가.

배연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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