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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칼럼] 있을 것은 없고, 없을 것은 있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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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2-26 21:25:46 수정 : 2017-12-26 21:2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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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안전규제의 선례가 된 ‘증기선 법’
우린 무엇을 배워 무엇을 고친 것인가
“그 괴상한 배는 아주 빠른 속도로 굉장한 소음을 내면서 너무 가까이 우리 배에 다가왔다. 많은 사람이 갑판 아래로 숨거나 물가로 뛰어들었다.”

무엇이 그리 무서웠을까. 1807년 미국 허드슨강에 처음 등장한 증기선이다. 그 첫인상을 묘사한 당대 기록대로 기존 범선의 승객들은 저마다 기겁해 황급히 피신했다. 숨을 곳을 찾을 경황조차 없었던 나머지 승객들은 무엇을 했을까. 기도를 했다. 저 무시무시한 괴물로부터 구해 달라고.

이승현 편집인
미국 발명가 로버트 풀턴은 그렇게 증기선의 시대를 열었고, 그 증기선은 19세기를 바꿨다. 문명의 힘이다. 운송 비용은 싸졌고 서부 정착의 속도는 빨라졌다. 전국적 시장이 창출됐고 기계제조 분야 발전도 촉진됐다. 하지만 미국 안전규제의 시발점 또한 증기선이란 측면도 간과해선 안 된다.

빛과 그림자는 공존한다. 증기선도 그랬다. 증기선 운항 확산과 더불어 보일러 폭발 사고가 줄을 이었다. 문제를 키운 것은 증기선의 대형화 추세였다. 인명피해 규모도 덩달아 커졌다. 미국 연방의회는 1838년 획기적인 법을 제정했다. ‘증기선 법’이다. 연방판사가 임명한 검사관은 보일러를 1년 2회 점검할 권한을 갖게 됐다. 이것이 왜 획기적인가. ‘미국 기술의 사회사’를 쓴 기술사학자 루스 슈워츠 코완이 명확히 설명한다. “공공 안전을 위해 특정 산업을 규제하는 연방정부 권한을 최초로 확립했다”고. 그렇다. 이 법은 정부의 개인 간섭과 규제를 금기시하던 미국을 변모시켰다. 안전규제의 선례가 된 것이다.

미국은 그래서 안전사회로 직행했을까. 그렇지는 않다. 안전사고는 바퀴벌레다. 완벽 퇴치는 불가능하다. 1904년 뉴욕 이스트 강의 제너럴 슬로컴 호에서 난 대형 화재로 1031명이 목숨을 잃은 불상사도 있다. 당시 소방호스는 모두 썩어 무용지물이었다고 한다. 지금이라고 해서 미국이 안전사회에 접근했을 리도 없다. 하지만 미국은 뼈아픈 경험을 통해 ‘착한 규제’를 차곡차곡 강화했다. 미국에선 불법 주정차를 일삼는 철면피 운전자도 도로 소화전 근처는 피한다. 소방차 전용구역도 넘보지 않는다. 왜? 벌칙이 강력해서다. 선진 사회는 그렇게 전진한다. 적어도 교훈을 얻은 만큼은, 할 수 있는 만큼은 대응 시스템을 조정해 피해를 줄이는 방향으로.

우리 사회는 어떤가. 29명이 생목숨을 잃은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의 21일 화재 참사만 돌아봐도 답은 뻔하다. 한숨만 나오는 것이다. 2층 비상구는 막혀 있었다. 소방차의 현장 진입은 불법 주차 때문에 차질을 빚었다. 건물 외벽은 가연성 외장재였다. 2015년 1월 130여명의 사상자를 낸 의정부 화재를 떠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안전불감증의 재확인이다. 대체 과거의 교훈에서 무엇을 배워 무엇을 고친 것인지 알 길이 없다.

더 기가 찬 것도 있다. ‘악플’ 공방이다. 실로 무분별하다. 한쪽은 분노의 불길이 청와대로 향할까 봐 차단에 나서고, 다른 한쪽은 그쪽으로 가지 않을까 봐 날을 세운다. 3년여 전의 세월호 때와 정반대 구도인 감도 짙다. 이런 난장판이 없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유가족이라고 밝힌 이가 “제천 화재 기사에 악플이 달리지 않도록 블라인드 처리해 달라”고 호소할 정도다. “‘알몸으로 사망 부끄’, 이런 댓글을 보고 너무 우울하다”고 토로한 청원자도 있다. 나도 우울하다. 있어야 할 것은 없고, 없어야 할 것은 있는 흉악망측한 나라 꼴 아닌가. 정상적인 공동체 모습이 이럴 수는 없다.

지금은 애도의 시간이다. 엉뚱하게도 정치 공방을 벌일 호기로 아는 여야부터 크게 반성할 일이다. 청와대도 마찬가지다. 이 와중에 대통령 홍보를 꾀하는 인상이나 줘서야 되겠는가. 고인들 명복을 빌면서 해야 할 일은 자명하다. 진상 규명과 제도적 보완이다. 그래야 뒤늦게나마 국민 희생을 줄이는 방향으로 달려갈 수 있다. 정치권이 앞장서는 대신 파렴치 작태만 되풀이한다면 앞날은 캄캄하다. 장차 발생할 그 어떤 일 앞에서도 기껏해야 악플 공방이나 벌이다 말 것이다. 애꿎은 국민은 갑판 아래로 숨거나 물가로 뛰어들거나, 아니면 기도를 해야 할 테고….

이승현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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