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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은 민주주의 작동 장치 / 개헌이 시대적 과제인데 / 정치권은 당리당략만 따져 / 개헌 의지 실종 징후 두드러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조다. 1948년 제정된 헌법이 9차례 개정됐지만 1972년 유신헌법 외엔 모든 헌법 조문이 이 구절로 시작한다. 1년 전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합창하면서 잘 알려졌다. 당시 헌정질서가 위기에 처했을 때 많은 이들이 헌법을 들춰봤다. 국민으로부터 나온 권력이 어디로 가느냐에 대한 의문을 풀려는 것이었다. 헌법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레 개헌 논의로 이어졌다. 현행 헌법이 만들어진 지 30년이 지났다. 1987년 민주항쟁 때 이뤄진 개헌은 독재체제를 종식시키기 위한 대통령 직선제 도입이 최우선 과제였다. 이제 시대에 뒤떨어진 헌법을 고치자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된다.

그렇다면 헌법이 왜 중요한가. 미국 법철학자 로널드 드워킨은 저서 ‘민주주의는 가능한가’에서 공적 관심을 이끌어낼 만한 논쟁이 이뤄지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그 가치를 실현할 수 없다고 했다. “헌법이 있기 때문에 논쟁이 가능하다. 헌법은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논쟁을 법적·정치적 원칙이라는 절제된 언어로 표현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미국 정치학자 로버트 달은 ‘미국 헌법과 민주주의’에서 “민주 시민에게 유일하고도 정당한 헌법이란 민주적 목적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제정된 헌법”이라고 했다. 헌법은 민주주의를 작동시키는 기본장치인 것이다.

개헌은 시대적 과제다. 우리나라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국가적 합의를 도출할 때다. 개헌 논의는 이미 오래전에 시작됐다. 헌정위기 재발을 막자는 취지에서 지난 1월 국회 개헌특위가 구성됐다. 5월 대선을 앞두고 각 당 후보들은 모두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실시하겠다고 공약했다. 심지어 자유한국당은 국민의당, 바른정당과 함께 개헌 단일안을 만들어 대선과 동시에 개헌 국민투표를 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도 했다.

박완규 수석논설위원
지금 정치권의 개헌 논의는 실망스럽다.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입장이 판이한 탓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꾸고 기본권과 지방분권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한국당은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외치를 맡고, 국회에서 선출된 총리가 내치를 맡는 이원정부제를 원한다. 개헌특위는 여기에 막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지난 6일 열린 개헌특위 회의록을 보면 정부형태 토론에서 입장 차이만 확인했다. 오죽하면 회의에 참석한 이상수 자문위원이 “국회의원들이 헌법 개정의 중요성을 제대로 느끼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을까.

개헌 일정에 대한 이견까지 불거졌다. 한국당은 지방선거와 동시에 실시하는 ‘곁다리 국민투표’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 지방선거에 불리하니 이제 와서 연기하자는 말이다. 민주당은 개헌 일정 합의를 전제로 개헌특위 활동시한을 연장하자는 입장이고, 한국당은 개헌특위를 연장하되 개헌 시기를 내년 말까지로 늦추자고 한다. 개헌특위 연장안이 이번 임시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지 않으면 개헌특위 활동은 이달 말로 종료된다. 국회 논의가 지지부진하니 대통령이 개헌안을 마련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그것을 토대로 개헌 논의를 할 수 있겠지만, 국회 개헌저지선(100석)을 넘는 116석을 보유한 한국당의 협조 없이는 개헌이 불가능하다.

이대로 가다간 개헌은 또다시 요원한 과제로 남게 된다. 정치권에서 개헌의 유·불리를 따지는 소리만 요란하고 정작 헌법에 어떻게 시대정신을 반영할지에 대한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전에도 그러다가 개헌 논의를 접곤 했다. 이번에는 정권 초기에 개헌을 추진해 기대가 컸지만 정치권은 개헌 합의를 이끌어낼 능력이 없는 것 같다. 정치학자 강원택이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서 “눈앞의 이익에 민감하고 자파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따지는 현역 정치인들에게만 국가의 장기적 변화를 위한 제도 개선을 맡길 수 없다”고 한 이유다. 개헌은 국정의 틀을 바꾸는 것인 만큼 정파적 이해관계를 훌쩍 뛰어넘어야 가능한 일이다.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는 개헌 의지가 실종된 징후이고, 개헌이 물 건너갔다는 신호음이다. 정치권은 헌법을 바꾸지 않기로 마음먹은 듯하다.

박완규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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