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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노숙인 밴드가 소아조로증 아이를 위해 준비한 특별한 '크리스마스 선물'

입력 : 2017-12-24 13:00:00 수정 : 2017-12-23 18:3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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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 소아조로증 환자 홍원기(12)군을 위해 공연한 노숙인 출신 '봄날밴드' / 5년만에 밝혀진 이들의 인연…

지난 19일 오후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공연을 가진 노숙인 출신 봄날밴드(왼쪽), 오른쪽 사진은 소아조로증 환자 홍원기(12)군과 아버지 홍성원 목사(오른쪽).

“감사는 감사를 낳는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지난 19일 오후 노숙인 출신으로 이뤄진 ‘봄날 밴드’가 소아조로증 환자 홍원기(12)군에게 특별한 선물을 주기 위해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 공연장에 모였다. 김애란 작가의 ‘두근두근 내 인생’으로 알려진 소아조로증은 일반인보다 신체노화가 약 7배나 빨리 진행되는 희귀질환으로 12살 홍군의 신체나이는 65세다. 현재로선 별다른 치료법이 없지만 아버지 홍성원 목사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며 아들을 위한 기적을 찾아다니고 있다.

노숙인 지원 잡지 빅이슈를 판매하며 하루하루 자활을 꿈꾸고 있는 봄날밴드가 어떤 연유로 홍군을 돕겠다며 이 같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게 됐을까?
 
노숙인 출신 '봄날밴드'. 왼쪽부터 예비사회적기업 드림트리 객원멤버 주현경(37·건반), 서명진(45·베이스), 이동진(49·보컬,기타), 구영훈(51·드럼). 출처=달팽이 소원

인연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2012년 봄날밴드 매니저인 달팽이 소원 윤건(61) 대표는 노숙인 자립지원단체 ‘거리의 천사’에서 총무 일을 맡아 봉사를 하다 노숙인 밴드 결성을 결심했다. 윤 대표는 노숙인과 자주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때마다 답답함을 느꼈다고 한다. 사회가 노숙인 각자의 상황을 모른 채 일방적으로 자활을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노숙인 각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자립을 시켜주고 싶다“며 밴드 멤버 모집에 나섰다.

윤 대표는 “노숙인들이 록 밴드를 합니다”라고 주변에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뒤 한 중고악기상에게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그는 “지인에게 노숙인이 밴드를 만든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오래 하실 겁니까?”라는 질문을 건넸다. 윤 대표는 “당연히 오래할 겁니다!”라며 대답했고 악기상은 베이스, 기타, 키보드 등 악기를 무료로 보내줬다. 그 악기와 함께 봄날밴드는 탄생했다. 그리고 현재까지 70회 넘게 공연하러 다니는 ‘노숙인 대표 밴드’로 거듭났다.

그리고 5년이 지난 몇 달 전...당시 악기상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악기상은 “우리나라 소아조로증 환자 중 원기라는 아이가 있는데 혹시 후원 콘서트를 해줄 수 있나”며 조심스레 입을 뗐다. 이어 “나에게 노숙인 밴드 결성소식을 알려줬던 이가 원기군의 아버지 홍 목사였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이 말을 들은 윤 대표는 “그 악기들 덕에 봄날밴드가 결성될 수 있었고 노숙인들이 희망을 찾을 수 있었다”며 ‘감사는 감사를 낳는다’는 주제로 드림트리 빌리지, 빅이슈, 수림문화재단, 브라보컴의 후원을 받아 원기군을 응원하는 이번 콘서트를 기획했다.

지난 19일 오후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공연을 가진 노숙인 출신 봄날밴드. 이날 하림 작곡, 박검관(민들레문학상 수상) 작사의 '활보(노숙)'란 노래를 불렀다.

봄날밴드는 노숙인 출신 이동진(49·보컬,기타), 서명진(45·베이스), 구영훈(51·드럼)으로 구성돼 있다. 여기에 예비사회적기업 드림트리빌리지의 주현경(37)씨가 건반을 맡았다.

이들은 이날 밴드 활동을 통해 길거리에서 희망을 볼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씨는 “고시원 방 안에서 나오는 것조차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밴드를 하며 갈 곳이 생겼고 시간을 쪼개 힘들게 연습하다 보니 오늘 공연까지 선보일 수 있게 됐다”며 관객에게 감사를 전했다. 이어 “지난해 서울시에서 주최한 시민액션밴드 페스타에서 봄날밴드가 입상했다”면서 “아마추어 밴드 13팀 중 3팀만 뽑아 걱정했는데 기적이 일어났다”고 벅찬 마음을 드러냈다.

구씨는 “아버지와 시작한 사업이 IMF 외환위기로 어려워지고, 교통사고로 아내까지 잃자 좌절감에 거리로 나와 노숙을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다 그는 봄날밴드에 합류해 드럼을 배우기 시작했고 누이와 조카가 자신의 공연에 찾아오는 모습을 보며 가족의 소중함까지 깨닫게 됐다. 베이스 서씨는 노숙을 하며 대인기피증을 앓을 정도로 사람을 피해 다녔지만 밴드를 하면서 이를 극복했다. 전주에 계신 서씨의 부모님이 이날 공연을 보기 위해 먼 길을 찾아와 관객에게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윤 대표는 “노숙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며 “가족 등 의지할 사람이 없어져 삶에 대한 손을 놓아 버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봄날밴드는 밴드활동을 통해 ‘음악’이라는 삶의 목표 하나를 얻었고 의지할 가족을 되찾았다.

봄날밴드는 이날 원기 군을 위해 직접 작사·작곡한 <넌 나의 선물>을 부르며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비록 원기군은 추운 날씨로 혈관이 약해져 자리에 함께할 수 없었지만 아버지 홍 목사가 찾아와 감사인사를 전했다.

홍 목사는 “노숙인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봉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들 마음속에 외로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마침 밴드를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동료에게 그 이야기를 전한 건데 이렇게 멋진 밴드가 돼 있어 놀랍다”고 감사를 전했다. 이날 봄날밴드는 공연 후원금 147만 6000원을 모두 원기 가족에게 전달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영상=서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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