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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화려한 조명 뒤 혼자인 그곳엔 어둠만이 있었다

입력 : 2017-12-21 19:16:54 수정 : 2017-12-22 15: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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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중압감·미래 불안 스트레스 커 / 공인 특성상 ‘마음의 병’ 치료 어려워 / 아이돌들 어린 나이에 고립된채 경쟁 / 기획사 대책 마련·악플 지양문화 필요 ‘천천히 날 갉아먹던 우울은 결국 날 집어삼켰고 난 그걸 이길 수 없었다.’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종현(김종현·27)이 세상을 등지며 남긴 마지막 말이다. 지난 18일 종현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이 알려진 뒤 충격이 가시지 않고 있다. ‘인기와 부를 누리던 아이돌이 왜?’ 하는 안타까움과 함께 우울증에 대한 경종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특히 화려한 연예산업 이면의 그림자를 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예계에서 인기에 따른 고독·스트레스는 동전의 양면처럼 피하기 힘든 덫이 되는 경우가 많다. 아이돌 가수들은 성장기에 극한 경쟁과 불확실한 미래를 견뎌야 해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지난 18일 아이돌 그룹 샤이니 멤버 종현의 비보를 계기로 정서적으로 취약해지기 쉬운 아이돌 가수들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종현의 생전 활동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우울해도 혼자 견뎌… 정신과 치료 생각도 못해”


연예계는 산업 특성상 ‘마음의 감기’인 우울증에 취약하다. 1980년대 댄스 음악 전성기를 이끈 유명 가수 A씨 역시 “자살을 몇 번이나 시도해봤다”고 했다. “인기가 많으면 바빠서 나를 돌볼 시간이 없고, 인기가 없으면 그 또한 나를 힘들게 했다”고 말했다. 사방이 벽 같았지만 홀로 견딜 수밖에 없었다. A씨는 “언제나 팬들을 의식해야 해 몸이나 정신이 아픈 것을 표현할 수도 없었다”며 “혼자 앓고 있어야 할 뿐이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정신과 상담? 생각도 못 한다”며 “매니저는 물론이고 회사에도 이야기할 수 없다. 미친 사람으로 치부받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방송 출연은 고사하고 팬들도 떠난다”고 덧붙였다.

우울증은 누구나 겪는 흔한 질환이다. 우리나라 우울증 환자수는 전체 국민의 1.5%인 약 61만3000명에 달한다. 그러나 A씨 사례처럼, 연예인이 마음의 병을 표출하기는 쉽지 않다. 대중의 시선과 상품화된 이미지를 깨고 ‘우울하다’고 고백하려면 큰 용기가 필요하다. 석정호 강남세브란스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연예인은 우울증이나 정서적 문제에 취약한 그룹”이라며 “굉장히 통제된 생활을 하고 인기에 따라 감정의 폭이 클 수밖에 없는 데다 예체능을 하는 것 자체가 감수성이 예민하다는 의미이기에 정서 관리를 잘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15년차 영화배우 B씨는 ‘인기의 역설’을 언급했다. 화려하게 주목받을수록 역설적으로 잊혀짐에 대한 두려움이 비례해서 커진다는 것. B씨는 “배우는 한 치 앞도 못 보는 직업”이라며 “‘영원히 작품이 안 들어오면 어떡하지, 이러다 잊히는 것 아닌가’ 하는 끊임없는 생각 때문에 정신적 스트레스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심지어 인기 절정에 있는 이들도 외로움·우울함을 느끼더라”며 “무척 밝고 자신감 충만해 보이는 친구도 속 얘기를 해보면 ‘힘들다’고 털어놓는다”고 전했다. 그는 “함께 작업해본 스타들의 90%쯤이 불안, 결핍을 겪는 것 같았다”며 “대중이 좋아하면 붕 뜨듯이 큰 행복을 느끼는 반면 ‘이게 끝난다면’ 하는 부질 없는 상상도 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잊혀짐이나 하락세를 사회적 죽음과 동일시할 경우 중압감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2011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룹 SG워너비 출신 채동하.
◆어릴 때부터 경쟁… 성장기 자아 정체성 확립 어려워


종현의 비보를 계기로 아이돌 가수가 정서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는 산업 구조도 논란이 되고 있다. 아이돌 가수 지망생은 사춘기부터 데뷔를 향한 경쟁에 뛰어든다. 철저한 사생활 통제는 기본이다. 인기를 얻은 후에도 밤샘 녹화 등 1분 1초를 쪼개는 초인적 일정을 감내해야 한다. 사회성과 마음의 근육을 키울 시간을 갖기 힘들다.

대형기획사 출신 아이돌 가수 A씨는 “대형기획사 연습생으로 있다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기획사로 옮겼는데, 가족 같은 분위기가 너무 좋다”며 “규모가 큰 기획사는 ‘가족’이라는 느낌보다 ‘회사’라는 느낌을 자주 받았고, 소속 다른 아이돌과 무한 경쟁을 해야 해서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다”고 전했다.

한국자살예방협회 수석 부회장인 이동우 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아이돌 그룹은 어릴 때부터 훈련 받으면서 친구나 친지 관계가 차단된 채 생활하다 보니 또래 아이들이 가진 서포트 그룹이 취약하다”며 “엄격하게 통제된 생활 속에서 개인 생활이 없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스타이다 보니 문제가 있어도 쉽게 상담받지 못하고 한참 망설일 것”이라며 “(종현도) 아마 오랫동안 망설이다 우울증이 악화된 상태에서 상담받지 않았을까”라고 분석했다.

◆우울증 치료는 장기전…기획사들 인식 전환해야

연예기획사들은 당장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뚜렷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소속 연예인 관리 방안을 논의하고 있지만 마땅한 방안을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획사와 사회 모두 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기획사들이 연예인의 특수성을 고려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어린 친구들이 단절된 상태라는 것을 인지하고 문제를 조기에 해결할 수 있도록 늘 정신건강을 관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 교수는 “특히 악플을 금지하는 문화가 확산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울증을 적극 치료하는 문화도 자리 잡아야 한다. 석 교수는 “2주 이상 상당한 우울감이 지속되면 꼭 약물치료를 고려하라”며 “우울감은 마음이 아니라 뇌질환이기에 약물치료 말고도 뇌 기능을 조절하는 자기장 치료나 비약물적·생물학적 치료도 있다”고 설명했다. 석 교수는 특히 “우울증은 단기간에 치료되지 않기에 효과에 대한 기대가 컸다면 오히려 더 실망하고 포기해버릴 수 있다”며 “우울증 치료는 피트니스를 하듯 꾸준히 단련하는 것으로 최소 3개월은 치료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결국 (서로)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게 정답”이라며 “우리의 경우 연애도 허용하고, 다른 스타의 팬사인회에 가는 등 최대한 자유를 주려 한다. 억압과 강제를 하면 그는 ‘아티스트’가 아니게 되고, 결국 서로 마이너스”라고 밝혔다.

송은아·이복진·김희원 기자 sea@segye.com

※이번 소식으로 정신적 고통이 느껴지거나 우울감이 가중 된다면 자살예방전화 1577-0199, 복지부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도움을 요청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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