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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청심청담] 3류 국가로 급전직하한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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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2-18 21:55:15 수정 : 2017-12-18 21:5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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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성리학 위선적 명분주의와
사회주의 계급투쟁적 민중주의
결합은 ‘최악의 사상적 결혼’
이대로 사회혼란 지속땐 역사후진
성리학(性理學)의 가장 큰 약점은 무엇일까.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질서 속에서 삶의 의식주와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업신여기고 천민 혹은 중인 취급을 한 데에 있다. 농업사회였다고 하지만 결국 사회의 중산층을 이루고 있던 양민(농민)마저도 스스로 자영할 수 없게 되자 조선은 망하고 말았다. 일본의 침략 이전에 이미 망했던 것이다.

이런 성리학체제를 가지고 산업혁명의 물결을 타기에는 여러모로 역부족이었는데도 조선의 실학자와 개혁군주였던 정조(正祖)마저도 성리학체계를 금과옥조로 여겼던 게 조선이었고, 말기에는 양반 아닌 백성이 없을 정도로 ‘양반천지’였으니 결국 나라는 껍데기뿐인 나라가 돼갔다. 성리학에 세뇌된 조선의 양반들은 중국이 아편전쟁(1840년)으로 망한 지 오래됐는데도 소중화(小中華)를 주장하면서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끌어안고 섬으로, 벽지로 들어가 공부하는 데에 힘을 소진했다. 

박정진 평화연구소장 문화평론가
한국의 사대모화(慕華)사상은 18세기에 조선의 최고의 선비로 통했고, 북학파의 영수였던 연암 박지원(朴趾源·1737∼1805)마저도 망한 명나라를 우리나라(조선) 임금의 임금(我君之君)으로 칭할 정도였으니 다른 사람은 물어볼 것도 없다. 조선은 한마디로 중국 요순우탕문무(堯舜禹湯文武) ‘존왕(尊王)사상’이라는 신화체계 속에 갇혀 산 사회였다. 그러니 중국이 망하니 조선이 따라 망할 수밖에 없었다.

성리학을 배운 사람치고 결국 중국에 사대하지 않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사서삼경을 열심히 읽다 보면 결국 중화사상에 빠지게 되고, 중국의 문덕(文德·문치의 덕스러움)을 추앙하는 소국주의(小國主義)에 만족하게 된다. 그 하이라이트가 구한말의 ‘소중화’ 사상이었다.

성리학의 내용이 나쁠 까닭이 없다. 공자의 사상이 왜 나쁘겠는가. 문제는 성리학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있다. 중국은 성리학을 만들어서 자신의 주체사상을 정립함으로써 스스로 정체성을 찾는 데 성공한 반면 성리학을 배운 조선은 되레 자신의 정체성을 중국에서 찾으니 중화사상에 빠지는 수밖에 없었다. 입으로는 공맹(孔孟)의 인의(仁義)와 ‘문덕’을 외치면서도 실제로 생활에서는 문덕을 베풀지 않았다는 데에 조선의 위선이 있다. 남의 사상이나 철학을 단순히 배우는(기억하는) 것에 만족하면 결국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남의 삶을 사는 데 그치게 된다. 그래서 성리학이든, 민주주의든 외래문물은 체득해 다시 자신의 땅에서 새롭게 싹을 틔우지 않으면 오히려 문화종속에 빠지게 된다.

한국문화가 오늘날 주체성이 없는 이유는 바로 외래 선진문물을 배우면 그것이 저절로 선진문화에 참여하는 것이 되고, 남의 것이 내 것이 되는 줄 착각하는 데에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자체가 이미 오랫동안 사대·종속상태에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이 된다. 과학기술분야는 선진기술을 배우는 자체가 바로 기술의 향상을 이루는 것이지만(기초과학은 제외) 인문학은 그렇지 못하다. 인문학의 기술주의는 바로 문화종속으로 들어가는 길에 다름 아니다. 실사구시(實事求是)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북학파의 실학’은 청조(淸朝)의 멸망과 함께 서양에서 직접 과학과 철학을 배워 토착화에 성공한 일본에 비해서는 근대화·산업화의 실패를 태생적으로 안고 있었다.

오늘의 서구기독교와 인문학은 마치 조선조의 성리학의 자리를 대체한 느낌이 든다. 서구에서 유학한 사람은 하나같이 서구를 숭배하고 전도사가 되는 데에 만족한다. 그것을 먼저 배운 것만으로 사회적 지위와 명예, 그리고 돈까지도 차지하면서 거드름을 피운다. 나라를 망하게 한 조선후기의 선비들과 무엇이 다른가. 스스로 고민하고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인문학은 ‘외래인문학의 노예들’에 불과하다. 중국에 사대주의를 하다가 망했고, 일제식민지시대의 질곡을 거쳤고, 지금은 산업화에 성공했지만 아직도 우리나라에 주인 될 만한 세력이 없다.

성리학의 산업 무시와 공리공론과 당쟁의 무기력함과 단절하고 산업사회로 나아가도록 우리 민족을 독려한 것이 1960년대부터 시작된 경제개발과 산업화와 과학입국이었고, 그러한 ‘한국판 산업혁명’에 성공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우리의 정신문화는 아직 ‘우리의 인문학’ ‘우리의 덕치(德治)’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의 민중민주주의의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자유민주주의는 우리가 달성해야 할 ‘새로운 고지’가 됐다.

오늘날 좌파우파(가짜 좌파우파)를 합친 얼치기지식인들은 결국 실사구시를 못한 조선조의 성리학자들과 같다. 만약 사대성리학의 위선적 명분주의와 사회주의의 계급투쟁적 민중주의가 결합하면 이보다 ‘최악의 사상적 결혼’은 없을 것이다. 만약 이대로 사회적 혼란과 비생산을 지속한다면 뼈아픈 역사후진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가 여러 가지 점에서 위기에 몰리고, 최근 문재인 대통령 방중과 관련해 ‘국빈방문’에 어울리지 않는 여러 사태의 발생은 한국이 몇 달 사이에 3류국가로 전락한 처지를 확인케 한다. 명성황후 시해에 이은 구한말 상황의 재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서울올림픽 때의 국력상승무드와는 다른 국력하강의 국제적 처지를 느끼게 된다.

박정진 평화연구소장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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