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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기후 차이와 예술의 특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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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2-15 20:58:20 수정 : 2017-12-15 20:5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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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풍경화에 자주 등장하는 하늘
우리 산수화에 잘 없는 이유는
인간은 변화가 적은 대상보다는
큰 대상에 더 주목하기 때문일 것
칼바람이 매서운 강추위의 계절이다. 그런데 움츠러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맹추위 위의 하늘은 푸르기만 하다. 새파랗게 질린 듯한 푸른 하늘을 보면서 신기하게도 문득 영국 풍경화가들이 자주 묘사하는 하늘이 우리의 산수화에는 그리 자주 등장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왜일까’ 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영국 풍경화가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조슈아 레이놀즈나 토머스 게인즈버러의 풍경화를 보면 우리 한국 사람에게는 낯설게 다가오는 점이 있다. 전체 화폭에서 다른 풍경을 압도하며 묘사되는 하늘이다. 우리 산수화나 풍경화에서 하늘의 묘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고, 주로 산이나 들이 묘사되는데 그럼 왜 이런 다름이 존재할까.

전인한 서울시립대 교수·영문학
아마도 인간이 상대적으로 변화가 적은 대상보다는 변화의 빈도, 폭, 깊이가 큰 대상에 주목하기 때문일 것이다. 영국인에게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하늘의 변화무쌍함이 주목과 묘사의 대상이 되는 것이고, 우리에게는 계절에 따라 서서히, 그리고 깊게 변하는 산과 들이 있기에 이것들이 우리 삶의 변화와 풍경의 변화를 연관시키는 작품에서 주목과 묘사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주목하고 묘사하는 대상이 서로 다른 것이다. 그렇기에 영국의 레이놀즈나 게인즈버러의 풍경화는 화폭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하늘이 공백이 아니라 의미 표현의 주 매체가 되는 것이고, 반면 우리 산수화는 하늘은 배면의 지위에 머무르게 된다. 이러한 깨달음은 기후의 차이에 따른 예술의 차이를 실감하게 한다.

이러한 차이가 미술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영국 낭만주의 시에서 갑작스러운 폭풍우나 느닷없는 석양의 출몰 같은 기후의 급변은 시인의 삶에 대한 깊은 명상과 깨달음의 촉발제로 작동한다. 그러나 영국 낭만주의 시에서 등장하는 급변하는 날씨와 이에 의해 촉발된 시인의 깨달음은 우리 시에서 주목하게 되는 전개의 패턴은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 시의 성취가 영국 낭만주의 시에 비해 못하다고 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실내 공연의 전통이 빈약하다고 한탄할 필요도 없다. 영국이 셰익스피어로 대표되는 연극예술을 꽃피운 것은 영국이라는 변화무쌍한 기후를 가진 곳에서는 비바람으로부터 관객을 보호해줄 극장이라는 특정 공연 공간이 필요했던 것이고, 그에 따라 주어진 조건을 최대한 활용한 예술 형태가 발전했던 것뿐이다. 봄과 가을 갑작스러운 기후의 변화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우리에게는 공연할 수 있는 좋은 날씨의 야외라는 조건이 주어진 것이고, 그 조건에 맞춰 우리 나름의 공연예술을 발전시킨 것이다. 실내와 야외는 명확히 다른 공연의 조건이고 보면, 다른 조건에서 다른 결과물이 나오는 것은 ‘콩 심은 데 콩’ 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하겠다.

그렇기에 정치·사회·경제적 맥락뿐만 아니라 기후적 맥락도 포함되는, 서로 다른 맥락에서 태어나고 발전한 예술의 성취를 비교하는 것이란 불가능하며 옳지도 않다. 그렇지만 이러한 예술의 특수성에 기대어 우리 예술을 다른 사람에게 이해시키기 위한 노력을 등한시하는 것은 안 된다. 우리와 전혀 다른 맥락에서 태동된 셰익스피어의 드라마와 게인즈버러의 풍경화가 우리의 가슴에 공명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은 예술에는 특수성뿐만 아니라 보편성도 있기 때문이고, 이 보편성은 셰익스피어와 게인즈버러를 우리 것으로 전유하는 노력뿐만 아니라 우리 것을 남에게 알리고, 남들이 우리 것을 전유하게끔 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당위성을 지적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술은 관점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그 차이를 교섭하고 뛰어넘을 수 있는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뛰어난 소통의 언어이다. 그렇다면 그 언어를 잘 터득하고 충분히 활용해야 하는 것은 선조가 남겨준 훌륭한 언어를 물려받은 후손의 의무가 아닐까?

전인한 서울시립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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