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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인사이드] 美 할리우드서 시작된 “나도 당했다”… 침묵의 벽 허물다

입력 : 2017-12-17 08:00:00 수정 : 2017-12-15 21:4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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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 거물 ‘와인스타인’의 몰락

배우 앤젤리나 졸리·귀네스 펠트로…
이름없는 인턴부터 주연급 배우까지
10여년 전 피해사실 용기내서 고백
성추문 의혹이 미국 사회를 덮치고 있다. 지난 10월 초 할리우드에서 ‘내부자의 용기’를 배경으로 폭로된 추문은 정치권과 언론계, 영화계를 가리지 않고 미국 곳곳에 메스를 가했다. 급기야 일부 여성은 방송 출연과 기자회견을 통해 백악관에도 성추문 당사자가 거주하고 있다며 본격적인 싸움을 예고했다. 여성들의 고백이 늘면서 성공 가도를 달렸던 일부 거물은 쫓기듯 자리에서 물러났다. 12일(현지시간) 치러진 앨라배마주 상원의원 보궐선거에서는 공화당 후보가 성추문 의혹 끝에 ‘텃밭’에서 낙선하는 이변이 발생했다. 많은 여성이 성폭력 추방 캠페인 ‘미투’(나도 당했어) 운동의 확산에 참여한 때문이다. 권력지도가 잉태한 잘못된 문화를 추방하는 혁신적인 사회문화적 운동은 그렇게 미국과 세계를 달궜다.

◆2017년 추문의 발화지역, 할리우드… 추문은 권력 있는 곳에서

미 여성계는 앞으로 영화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과 그의 추문을 폭로한 뉴욕타임스(NYT)의 이름을 되새기게 될 것이다. 지난 10월 초 NYT의 와인스타인 성추문 폭로를 계기로 관련 이슈가 사회문제로 대두된 때문이다. 와인스타인은 피해 여성들의 숱한 폭로가 이어지면서 거물 영화제작사에서 ‘성추행 괴물’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이름 없는 인턴 직원에서 유명 배우까지 30년 넘게 여성들에게 못할 짓을 한 그는 ‘적폐 인물’이 됐다. 와인스타인의 몰락엔 자신의 피해 사실을 적극 고백한 배우 앤젤리나 졸리와 귀네스 펠트로 등도 영향을 미쳤다. 이들은 피해를 본 지 10년이 훨씬 지난 거물의 ‘성적 갑질’을 폭로하면서 여성들의 동참을 이끌어냈다. 결국 와인스타인은 자신의 이름을 내걸어 공동 설립한 회사에서마저 해고되며 영화업계에서 사실상 퇴출됐다. 파장은 권력을 지닌 남성들에게도 향했다. 이들은 제발이 저린 듯 가해 사실을 고백하기도 했다. 로이 프라이스 전 아마존 스튜디오 임원, 제임스 토백 감독, 영화제작자 브렛 래트너, 배우 케빈 스파이시, 배우 제러미 파이븐, 배우 더스틴 호프먼 등 할리우드의 영화계 거물들이 성추문 한복판으로 소환됐다.

할리우드가 영화계 추문으로 뜨거워지는 동안 뉴욕은 방송·미디업계의 추문으로 몸살을 앓았다. USA투데이는 최근 ‘뉴욕에서 통하면 세계에서 통한다’는 팝송 가사를 인용해 성공을 위해 피해사실을 감춘 언론계의 여성 종사자들이 침묵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11월 말 해고된 NBC방송의 간판 앵커 맷 라우어를 비롯해 올해 뉴욕의 ‘미디어 철옹성’을 떠난 이들은 한 손으로 꼽기 어려울 정도이다. 20년 넘게 NBC의 간판 아침 프로그램 ‘투데이’를 진행한 유명 방송인이었던 라우어는 2001년 그의 사무실에서 억지로 성관계를 가졌다고 주장한 동료 여직원의 폭로로 퇴출됐다. 수치심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뒤늦게 피해사실을 폭로한 여직원의 주장에 NBC는 추가 조사를 통해 신고 접수 34시간 이내에 라우어를 파면했다. NBC는 라우어 이외에도 섭외 담당 부사장 맷 지머맨과 정치평론가 마크 핼퍼린을 해고했다. CBS방송에서도 아침 뉴스 프로그램 ‘디스 모닝’을 진행했던 앵커 찰리 로즈가 성추문으로 방송사를 떠났다.

언론계의 성추문 폭로 행렬은 케이블채널 폭스뉴스에서 먼저 시작됐다. ‘비판 언론’의 추문을 맹비난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보수매체인 폭스뉴스의 성추문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심지어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을 두둔하기까지 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지난 4월 폭스뉴스에서 공식 퇴출된 간판 앵커 빌 오라일리이다. 보수적 성향의 그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시사 프로그램 ‘오라일리 팩터’ 진행자로 여론 지형 형성에 막강한 영향을 끼쳤던 인물이다. 하지만 최소 15년 동안 5명이 넘는 여성을 상대로 각종 성폭력을 저지른 혐의로 방송계의 ‘절대권력’에서 물러나야 했다. 폭스뉴스에서는 로저 에일스 회장도 성추문 의혹으로 사퇴했다. 공영 라디오 NPR와 지역방송인 ‘미네소타 라디오’(MPR)에서도 폭로돼 유명 방송인이 해고됐다.

신문업계는 그나마 덜했지만 성추문 보도를 주도한 NYT도 파문은 비켜가지 못했다. NYT의 백악관 출입기자인 글렌 트러시가 성희롱 의혹으로 직무가 정지됐다. 성추문 문제를 비판적으로 보도했던 언론계는 의혹이 불거지면 그나마 속전속결로 당사자의 사임을 받거나 계약을 해임하며 적극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보기술(IT)업계과 학계에서도 성추문 폭로가 이어졌다. 실리콘밸리의 IT업계와 대학가에서도 오래전부터 성차별 행위와 성추문 의혹이 불거졌지만 이들 업계는 수동적인 대응으로 일관하면서 네티즌들의 반발을 샀다.

◆권력의 정점 워싱턴은 또 다른 추문의 소굴… 백악관은 안전할까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이들의 주무대인 워싱턴 정치권도 성추문 폭로 파고를 비켜가지 못했다. 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권력관계를 이용해 인턴과 보좌관을 상대로 욕망을 발산해 온 게 잇따라 폭로되고 있다. 가해 의원 일부는 자리를 내려놓아야 했다. 여직원을 상대로 성추행을 했다는 의혹에 휩싸인 민주당 앨 프랭컨 상원의원과 같은 당 존 코니어스 하원의원, 공화당 트렌트 프랭크스 하원의원이 잇달아 의원직 사퇴를 선언했다. 선거철이 아닌 때에 특정 이슈와 관련해 의원 3명 이상 사임 의사를 밝힌 것은 흔치 않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들의 사임엔 민주당과 공화당 지도부를 포함한 동료 의원들의 압박도 영향을 미쳤다.

미투 캠페인 형식을 빌린 성추문 폭로는 권력의 정점인 트럼프 대통령으로도 향했다. 지난 대선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성추행을 폭로했던 제시카 리즈, 레이철 크룩스, 사만사 홀비 등 여성 3명은 최근 방송 출연과 기자회견을 통해 이야기를 쏟아냈다. 이들은 영화제작사 브레이브뉴필름스의 ‘여성 16명과 도널드 트럼프’라는 다큐멘터리 홍보를 겸한 기자회견과 MSNBC방송에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당한 피해를 고백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성추문 의혹이 드러난 ‘가짜언론’을 향해 비판 목소리를 높였지만 자신에 대한 성추문 폭로에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러나 자신에게 씌워진 성추행 의혹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타격을 입은 것은 없다.

정작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타격은 다른 곳에서 발견됐다. 성추문 관련 타격이 있다면 지난 12일 앨라배마주 상원의원 보궐선거에서 공화당 로이 무어 후보가 성추문 의혹 속에 패배한 것이다. 무어는 공화당 ‘텃밭’에서 무난한 승리를 기대했지만 젊은 시절 저지른 성추행 사실이 워싱턴포스트(WP)에서 폭로되면서 1개월 만에 급전 추락했다. 무어의 낙선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완고한 고집이 꺾일지도 관심사다. 앨라배마주에서 이변이 발생한 것은 공화당 지도부까지 나서 후보 교체를 요구했던 무어를 막판에 강력히 지지한 트럼프 대통령의 무모한 고집도 한몫했기 때문이다.

미투 운동 확산으로 미 의회가 성폭력 입법 강화를 모색하는 등 파장이 일고 있다. 정치 지형도를 바꿀 정도로 강한 흐름을 타는 미투 캠페인을 사회변혁 운동으로 평가하는 분석도 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미투 운동을 전개한 불특정 다수의 여성들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고, ‘침묵을 깬 사람들’로 규정했다. 여성들의 행동이 미국 사회에 만연한 잘못된 문화를 가장 빠른 속도로 바꾸는 힘을 제공했다고 평가한 것이다. 하지만 많은 피해 여성들이 침묵 속에 고통받고 있는 상황은 여전하다는 게 CNN 등 미 언론의 진단이다.

워싱턴=박종현 특파원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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