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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취재] '추위·중국·경기' 삼중고에 한숨 쉬는 인력시장

입력 : 2017-12-16 13:00:00 수정 : 2017-12-16 12: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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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X한국…두 갈래로 나뉜 인력시장/영하권 추위에 바람 피할 곳 없이 바깥에서 발만 동동/선택받은 노동자는 절반…건설경기 점점 나빠져

지난 14일 새벽 3시 30분쯤. 건설 일용직 노동자 정모(54)씨가 홀로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 인력시장 거리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서울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9도까지 내려가며 전국이 한파로 얼었던 지난 14일. 한 남자가 이른 새벽 3시 50분쯤 서울 구로구 도림로를 외로이 걸었다. 추운 날씨를 이겨내려 두꺼운 외투, 마스크, 장갑 등으로 무장한 그가 향한 곳은 전국 최대 규모 인력시장이라고 알려진 7호선 남구로역 2번 출구.

매일 인력시장을 찾는 정모(54)씨는 10년간 일명 ‘잡부’라 불리는 일반공 일을 해왔다. 그는 “다른 일을 다 해봤지만 이만큼 벌이가 되지 않았다”며 “저기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봐도 한 달에 80(만원) 벌지 않나”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아직 열지 않은 남구로역 인근 인력사무소 앞에서 발을 동동 굴리며 문을 두드렸다. 정씨는 “추운 겨울엔 일감이 없어 일찍 나오지 않으면 일을 못 얻는다”며 “한 달간 찾아와 절반 일하면 나름 성공한 것”이라고 했다.

새벽 4시가 조금 지나 인력사무소 문이 열렸고 정씨는 준비한 주민등록증을 담당자에게 제출한 뒤 일거리를 기다렸다. 일용직을 원하는 노동자가 인력사무소에 등록해놓으면 일거리가 있을 때마다 담당자는 명단을 호명해 현장으로 데려간다. 대신 사무소는 일을 소개해준 대가로 일당의 10%를 뗀다. 10% 수수료를 떼이지 않는 방법도 있다. 남구로역을 찾아온 건설 현장담당자에게 직접 고용되는 것이다. 남구로역 거리에 서서 봉고차를 기다리는 이들은 대부분 그런 경우다.
 
서울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2번출구 앞.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하나은행 방면은 중국인 노동자가 몰려있고 그 맞은 편은 한국인 노동자가 모여있다.

◆ 중국X한국…두 갈래로 나뉜 인력시장

4시 반쯤 남구로역 일대는 일거리를 구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족히 500명은 넘어 보였다. 남구로역 인력시장은 중국인 일용직 노동자가 모인 지역과 한국인 일용직 노동자가 모인 지역으로 나뉜다. 하나은행이 위치한 거리에는 중국인 노동자가 모여 있고 맞은편 횡단보도를 건너면 한국인 노동자가 모여 있었다. 중국인 노동자들은 한국어를 못 하는 이들이 상당수다. 기자가 다가가 “한국어 할 줄 아세요?”라고 물으면 고개를 저으며 대부분 자리를 피했다.   

중국 위례출신으로 15년 전 한국에 귀화했다는 이모(48)씨는 “올해 들어 중국인들이 정말 많아졌다”고 했다. 이씨는 “여기 모인 중국인 상당수가 비자가 없는 불법체류자거나 여행 비자를 통해 한국을 방문한 이들”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온다”면서 “이들이 인력시장을 메우다 보니 인건비는 오르지 않고 한국인들 설 자리는 점점 줄고 있다”고 토로했다.

중국인은 잡일을 하는 ‘일반공’도 있지만 상당수가 목재를 다루는 ‘목수’일을 하고 있다. 목수는 일반공에 비해 힘들지만 일당이 3~4만원정도 더 높다. 일반공은 대부분 하루 일당 12만원 가량을 받는데 목수는 15~16만원을 받을 수 있다. 이들은 모두 큰 가방을 메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현장에서 쓸 연장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를 위해 중국인 노동자가 모여 있는 거리에는 연장과 장갑 등을 판매하는 상인까지 있었다.

인근 A 인력사무소 관계자는 “이곳에 모인 목수 쪽 일용직 90%가 중국인인데 이들이 좋아서 쓴다기보다 한국인 중에 하려는 사람이 없어서 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60대라고 소개한 그는 “우리 때야 돈 되면 다했지...요즘 젊은 사람들이 막일(건설 일용직 노동)을 누가 하려 하나”면서 “여기 한국인들도 막노동을 잠깐 하는 일로 여기고 힘든 기능공보다 비교적 단순한 잡일과 청소를 하는 ‘일반공’을 하려 한다”고 했다. 이날 남구로역에는 중국인, 한국인이 7대 3 정도로 중국인 노동자가 더 많아 보였다.
 
"이모...손 좀 녹이고 갈게요" 추위를 견디지 못한 박모(46)씨가 난로를 찾아 둥글레차를 나눠주는 좁은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퉁퉁 부은 손을 녹이고 있는 박씨. 

◆ 영하권 추위, 바람 피할 곳 없이 바깥에서 발만 동동

새벽 5시가 되자 칼바람은 한층 더 거세졌다. 두꺼운 패딩 점퍼를 입었지만 2시간 가까이 새벽바람에 서 있으니 온몸이 얼어 버틸 수가 없었다. 서울시는 지난 10일 일용직 노동자들이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쉼터를 인력시장에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날 현장에는 구청 봉사자들이 한국인, 중국인 노동자들에게 둥굴레차를 나눠주는 1인용 작은 천막만 있을 뿐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장소는 보이지 않았다.

한 노동자가 추위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는지 좁은 천막을 비집고 들어왔다. 일반공 노동자인 박모(46)씨는 좁은 천막에 들어오자마자 “이모...손 좀 녹이고 갈게요”라며 호소했다. 천막 안에서 차를 나눠주던 자원봉사자는 당황했지만 차마 밖으로 나가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는 눈치를 보며 퉁퉁 부은 손을 주전자 옆 난로에 대고는 “조금만 녹이고 갈게요”라고 재차 말했다. 자원봉사자는 “날씨가 추워 하루에 750잔 정도의 차가 나간다”고 했다. 일용직 노동자들은 종이컵에 담긴 차를 쥐어 잡고 인근 슈퍼 앞 천막에 서있거나 삼삼오오 쭈그려 앉은 채 가까스로 추위를 이겨내고 있었다.

20년 가까이 건설 일용직 노동자 일을 하고 있다는 김모(58)씨는 “예전에 기다릴 땐 여러 단체에서 먹을 것도 주고 난로도 가져다 놨었는데 지금은 없다”고 푸념했다. 김씨는 “주변 인력사무소에서 구청에 민원을 넣어 어느 순간 다 사라졌다”며 “안으로 들어와 일거리를 소개받으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거리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현장으로 바로 가는 노동자기 때문에 수수료를 내지 않지만 인력사무소 안으로 들어가 일감을 소개받으면 10%의 수수료를 낸다.

구청 관계자는 “과거 인력시장에 설치된 시설들에 일용직 노동자뿐만 아니라 노숙인들이 모여 술판이 벌어지고 시끄럽다는 주민들의 민원이 들어온 건 맞다”며 “인력사무소로부터 민원이 들어왔는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이어 “남구로역 쉼터 설치를 위한 예산이 아직 서울시로부터 배정되지 않았다”며 “내년 1월쯤 예산이 들어오자마자 설치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력시장이 마감되는 6시쯤. 현장으로 향하는 봉고차 앞에 일거리를 얻지 못한 노동자가 앉아있다. 하루를 헛탕 친 그는 멍하니 거리를 바라보고 있다.

◆ 선택받은 자는 절반뿐…건설경기는 점점 안 좋아져

6시 땡 하니 하나은행 쪽 중국인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기능직 이모(53)씨는 “인력시장에서 새벽 6시까지 차에 못 타면 일거리가 없다는 뜻이라며 중국인들은 불법체류자가 많아 단속에 걸릴까봐 시간 맞춰 재빨리 집에 간다”고 설명했다.

인력시장 거리에는 하루를 공친 한국 노동자들이 아쉬움에 쉽사리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경기도 시흥에서 왔다는 박모(50)씨는 남아있는 동료들을 가리키며 “대부분 부천, 안양 등 첫 차 타고 온 사람들”이라며 “요즘에는 추위로 건설경기가 안 좋아 30일 중 열흘만 일하면 괜찮은 수준”이라고 했다. 그는 “경기가 안 좋아도 배우고 해온 게 이거라 쉽게 발을 못 떼게 됐다”면서 담배를 물고 한숨을 내쉬었다. 함께 일거리를 얻지 못한 동료들은 서로 “왜 안가”라고 농담을 건네며 제자리에 머물렀다. 이들은 “가끔 늦게 온 일거리가 있어 6시 이후에 사람들을 데려갈 때가 있다”며 “‘혹시나’ 해서 기다리는데 오늘은 ‘역시나’인 것 같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지난 8일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은 지난달 ‘전문건설업 경기실사지수(SC BSI)’가 전월(73.5)보다 떨어진 62.7로 나타났고 이달에도 53.8로 하락추세를 이어갈 거라 예상했다. 경기실사지수는 기업이 느끼는 체감경기를 나타내는 지표로 100을 기준으로 이보다 낮으면 경기악화를 예상하는 기업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부인력사무소의 김원남 실장은 “지난해보다 건설경기가 더 안 좋아졌다”면서 “30%는 떨어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요즘 인력시장을 찾아온 일용직 중 50% 이상이 헛걸음을 하고 있다”면서 “몇 달 전 300명이 일자리와 연결됐다면 지금은 150명 알선에 그치고 있다”고 전했다.

글·사진=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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