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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선] 김상조 공정위원장의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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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2-14 21:06:35 수정 : 2017-12-14 23:4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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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인사 전문가다. 삼성그룹에서만 20년 가까이 인사 관련 업무를 맡으며, ‘관리의 삼성’ 이미지 구축에 핵심 역할을 했다.

2014년 인사혁신처장으로 발탁된 그는 공직사회를 대상으로 다양한 실험을 시도했다. ‘철밥통’, ‘무사안일’ 등 공무원 집단에 만연한 구태를 깨기 위함이었다. 민간-공공 인사교류제도가 대표적이다. 공무원이 1∼2년간 민간 기업에서 일하는 제도로, 공직사회의 폐쇄적 조직문화를 바꾸고 경쟁력도 강화하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 제도는 2년 만에 사실상 용도 폐기됐다. 제대로 된 ‘설계’가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부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인원을 할당하다 보니 ‘끌려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사후 관리도 안 됐다. 지원자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민간 기업으로 ‘교류’한 공정거래위원회 한 공무원은 복귀 후 사건 조사과에서 배제됐다. 지시를 따랐다가 외려 피해를 본 꼴이다.

이 전 처장은 2016년 공직을 떠나며 “미생으로 왔다가 한 집을 만들고, 나머지 한 집은 ‘빅’(무승부)을 만든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절반의 성공, 또는 절반의 실패라는 말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재벌개혁 전문가다. 김 위원장이 2004년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발언권을 달라며 소리치는 모습은 재벌개혁 운동의 상징처럼 따라다닌다.

지난 6월 공정거래위원장에 발탁된 그는 재벌개혁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다. 제도권 밖에서 외치는 대신 칼자루를 쥔 부처의 수장으로 대기업 CEO를 불러 모은다.

김 위원장은 공정위 내부적으로도 다양한 실험을 시도 중이다. 신뢰회복을 통해 재벌개혁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김상조식 로비스트법’이 대표적이다. 로비스트법은 공정위 OB(퇴직자)뿐 아니라 로펌, 대기업 소속 변호사 회계사 등을 사전 등록하고 이들과 접촉한 직원들은 면담 내용을 상세 보고하는 게 핵심이다.

안용성 경제부 차장
하지만 이 제도는 시작도 전에 삐걱대고 있다. 인사 교류제와 마찬가지로 ‘설계’가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년 초 공정위 훈령으로 제정될 예정인 ‘로비스트법’은 얼마 전 내부 의견수렴 과정을 마쳤다. 직원들은 불만을 쏟아냈다. “카카오톡, 문자메시지를 어느 선까지 어떻게 보고를 해야 하나.” “알고 지내는 사이에 전화통화 한번 보고 안 했다고 징계받는 건가.” 그러잖아도 “과로사할 지경”이라는 직원들에게 또 다른 업무부담만 준다는 비판도 있다

무엇보다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있다. 김 위원장식 표현을 빌리자면, “나쁜 짓은 고위직이 하는데, 욕은 아래 직원이 먹는” 셈이다. 삼성물산 500만주 주식 매각 결정, 가습기 살균제, CJ E&M 등 최근 국민 신뢰를 떨어뜨린 사건은 모두 고위직과 연관돼 있었다. 청와대, 국회 등의 부당한 압력을 대비하기 위한 장치도 없다.

제도적 하자도 예견된다. 로비스트법에는 “위반 시 징계 등 조치한다”는 표현이 포함된다. 징계 사유가 명확하게 규정된 국가공무원법과 상충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제대로 설계되지 않은 ‘로비스트법’은 보여주기 식에 그칠 뿐이다. “일단 시행하고 보자”는 제도는 누더기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김 위원장의 실험이 ‘미생’이 아닌 ‘완생’으로 끝나려면 우선 충분한 시간을 갖고 내부 비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안용성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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