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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에 흰 눈이 소복이 쌓였다. 필자가 자란 시골 고향마을의 골목길엔 감나무가 가득했다. 당시에는 종이가 귀했던 터라 감나무 잎사귀를 접어 딱지치기를 했고, 주렁주렁 감꽃 목걸이를 하고 다니다가 출출해지면 텁텁하고 달착지근한 감을 주전부리 삼아 먹곤 했다.

감나무는 감과(科)의 갈잎큰키나무로 다른 과실나무처럼 접붙이기를 하는데 바탕나무로 검질기고 드센 고욤나무를 쓴다. 그런데 감은 제 아무리 임금님께 진상하던 감의 종자를 심어도 떫은 돌감이 열린다. 해서 좋은 감의 여린 가지를 떠와 접을 붙여야 제대로 된 감이 열린다.

감꽃은 왕관모양의 네 장 꽃잎이 모인 통꽃이다. 감나무 잎은 차로 마시며, 익지 않은 떫은 감은 타닌질이 많고 색소가 풍부해 염색의 염료로 사용하는데 이 염료로 물들인 옷이 바로 갈옷(감옷)이다. 갈옷은 땀을 많이 흘려도 몸에 달라붙지 않고 통기성과 흡수성이 좋아 여름에 제격이다. 감은 혈압 강하 효과가 있는 만니톨을 함유하고 있으며, 황색 베타크립토잔틴은 암 예방 성분으로 알려져 있고, 타닌은 고혈압과 뇌졸중을 억제하며 혈중 지질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데 도움을 준다.

우리 속담에 ‘생감도 떨어지고 익은 감도 떨어진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죽는 데 순서가 없어 늙은이만 죽는 것이 아니라 젊은 사람도 죽는다는 뜻으로 쓰인다.

예전에 감나무는 한 해에 많이 결실이 되면, 그 다음해에는 결실량이 아주 적은 현상이 교대로 반복되는 ‘해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거름을 잔뜩 주는 바람에 해거리가 없어졌다.

감은 토마토처럼 카로티노이드의 일종인 짙은 주황색 라이코펜 색소가 들어 있어 특유의 노란 감빛을 낸다. 감나무 하면 떠오르는 한 장면은 아마 감나무 위에 앉아 홍시를 먹는 까치가 아닐까. 나뭇가지에 매달린 홍시를 보며 가을의 정취를 느낀 것도 잠시 추운 겨울 먹을 것이 없는 새를 위해 남겨둔 ‘까치 밥 홍시’를 보니 함께 나누는 마음과 배려의 깊은 뜻을 떠올리게 된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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